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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김동현(30)씨가 거리에서 만난 ‘멋쟁이 어르신’들 모습.
사진작가 김동현(30)씨가 거리에서 만난 ‘멋쟁이 어르신’들 모습. ⓒ김동현 제공

사진작가 김동현(30)씨의 명함 앞면은 한글자로 가득 차 있다. ‘멋.’ 길거리에서 불쑥 다가오는 김씨를 의심하던 노인들도 이 글자를 보면 어느새 명함에 손을 내밀고 있다. 김씨의 작업 가운데 가장 어려운 ‘섭외’ 단계가 이뤄지기 직전이다.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씨는 국내 유일의 ‘시니어 패션 전문 사진작가’다. 2019년 우연한 계기로 일하게 된 서울 종로구 동묘시장의 한 가게에서 그는 인생을 바칠 존재들을 마주했다. “동묘에 와보니 어르신들 패션이 정말 멋진 거예요. 계속 눈에 들어오는데, 왜 이 사람들을 찍는 작가는 없을까 생각했죠. 결국 제가 하기로 마음먹은 거고요.”

2017년부터 브랜드 옷을 입은 모델들이나 2030 세대들의 길거리 패션을 촬영하던 그는 김씨는 그렇게 몇 개월 동안 장·노년층 패션 사진을 모았다. 그해 말, 작은 전시회도 열 수 있었다. 김씨 사진을 본 현상소 주인이 가게 한쪽에 자리를 내어준 것이다. “참 멋있네요.” 김씨는 전시회를 보던 관람객이 던진 한마디를 잊지 못했다. “사진을 찍은 건 3년째였지만, 그런 반응을 들은 건 처음이었어요. 그 전엔 똑같은 대상을 똑같이 찍었을 뿐이니까요.”

‘나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자 장·노년층 사진 촬영은 취미가 아니라 과제가 됐다. 동묘에서 인사동, 남대문으로 영역을 넓혔다. 200번 거절당하면 10번은 찍을 수 있을 거라는 마음으로 거리로 나섰다. “멋진 어르신을 만나면 한 손에는 명함을, 다른 한 손에는 폰을 들고 제가 그동안 찍은 사진 중 그분이 좋아하실만한 스타일을 띄워놓고 있어요. 조심스레 접근해서 명함을 드리고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하죠. ‘저는 이런 사진을 찍는 사람입니다. 선생님 사진을 찍어 드리고 싶다’고요.” 허락받으면 사진을 찍고 초상권 동의서를 받은 뒤 인화된 사진을 보내주는 것까지가 작업의 완성이다.

사진작가 김동현(30)씨가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카페 ‘아마츄어작업실’에 걸린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작가 김동현(30)씨가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카페 ‘아마츄어작업실’에 걸린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다. ⓒ이주빈 기자

어렵게 촬영을 허락받는 탓에 김씨는 한명 한명의 사연이 생생히 기억난다고 했다. 처음에는 경계하던 이들도 ‘내 멋을 알아주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으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모자부터 바지까지 ‘올블랙’으로 맞추고 빨간색 부츠로 포인트를 준 노인은 “금 한돈이 2400원일 때 청바지 한벌이 3400원이었다며 그걸 사기 위해 조카의 백일 반지를 팔았다”고 했다. 하얀 코트에 ‘장보고’라고 적힌 흰 모자를 맞춘 노인은 남극에서 일하는 아들이 보내준 모자를 쓰고 나왔다고 했다. ‘애쉬핑크’(회색빛이 도는 분홍색)로 머리를 염색한 한 노인은 투병하다가 최근에 회복해 활기 있어 보이는 모습으로 자신을 가꿨다고도 했다.

그가 정기적으로 촬영하는 피사체는 할머니다. 김씨는 대구 서문시장에서 아동복 장사를 하던 할머니 덕분에 김씨는 일찍이 ‘멋을 알던 꼬마’였다. “명절 때는 한복을 입을지 양복을 입을지 고를 수 있을 정도”였다. 고향인 대구에 갈 때마다 김씨는 할머니 사진을 찍는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손자에게 “오늘은 뭐 입으꼬”라고 한단다.

김씨는 시니어 패션을 두고 ‘온전히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요즘 사람들은 옷을 입을 때 다른 사람들이나 인스타그램에 어떻게 올라갈지를 고민하죠. 시니어 패션은 그렇지 않아요. 힘든 시절에도 옷 입기를 즐기며 다양한 시도를 했던 세월의 흐름이 그들에게 고스란히 녹아있죠. 순수하게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거예요.”

김동현씨의 프로젝트.
김동현씨의 프로젝트. ⓒ텀블벅 홈페이지

그렇게 2019년부터 최근까지 6000장이 넘는 사진이 모였다. 그중 400여장을 추려내 사진집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집 ‘멋(MUT: the fashion of Seoul)’은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에서 목표금액을 1000% 넘겨 2225만원을 달성했다. 김씨의 꿈은 한국의 시니어 패션을 전 세계에 알리는 일이다. 책에도 한국어와 영어를 병기했다. “2년 전에 사진을 찍었던 어르신과 최근 통화했어요. 그때 책이 나오면 알려달라고 하셔서 연락드렸더니 사진을 아직도 잘 보관하고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사진집을 빨리 보고 싶다며 즐거워하셨어요.” 김씨의 인스타그램(@mut_jpg)을 보고 사진을 찍어줘서 고맙다며 자녀에게서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다. “부모님의 멋진 모습을 얼마나 사진으로 남겨뒀는지 생각해보라”고 김씨가 말했다.

촬영만으로 생계 유지가 어려워 김씨는 현재 의류 창고에서도 일한다. “일은 힘들지만, 패션과 가까이 있다는 기분이 좋아요. 여기선 언제나 옷감을 만질 수 있으니까요.” 휴일이 되면 김씨는 필름 카메라를 들고 새로운 ‘멋’을 찾아 다시 거리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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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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