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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하게 웃고있는 가수 겸 배우 설리
환하게 웃고있는 가수 겸 배우 설리 ⓒ뉴스1

Attention BOY! 나는 좀 다를 걸,
다른 애들을 다 밀어내고 자리를 잡지
ㅡ 에프엑스 <첫 사랑니> 

 

가수 겸 배우 설리가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0년 봄, SBS 인기가요 MC 발탁 기념 댄스 신고식 무대였다. 큰 키와 무해한 눈웃음으로 아이돌 선배들의 안무를 선보이는 그에게 매료되지 않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날 이후, 오랫동안 설리는 이른바 ‘나의 최애 스타’였다. 주중에 취업의 좁은 문을 열기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주말 저녁이면 TV 속 진리(설리의 본명)를 보는 일이 그저 좋았다.

그룹에서 ‘비주얼’ 담당이던 설리는 어느 순간부터 여성 아이돌에게 요구되는 ‘그저 아름다운 채 가만히 있을 것’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자신과 열애설이 불거진 남자 아이돌과 스스럼없이 지내 공분을 사는가 하면, 입고 싶은대로 입고, 웃고 싶을 때는 실컷 웃었다. 개인 활동을 시작하면서는 ‘낙태죄 폐지’ ‘페미니즘’ 같은 사회적 발언에 앞장서며 자신만의 스피커를 키웠다.

설리가 자유로워질수록 악성 댓글(악플) 수위는 높아졌다. 특히 2014년, 한 힙합 그룹 멤버와의 열애설은 불난 데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14살 많은 남성과의 연애사는 짙은 성적 농담들로 얼룩졌고, ‘설리가 임신해서 병원에 실려왔다더라‘, ‘설리가 약에 취해 비행기에서 난동을 부렸다’와 같은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루머들이 인터넷을 통해 삽시간에 번져갔다.

당시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는 설리 관련 악성 루머에 관해 법적 조치를 진행하기도 했지만, 설리는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나 때문에 전과자 될까 봐” 악플러들을 처벌하지 않고 선처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악성 루머에 시달리며 한때 연예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던 설리는 2015년 에프엑스를 탈퇴한 뒤 개인 SNS를 통해 소통을 이어갔다. 불명예스럽게 팀에서 나와 홀로 선 그가 팬들과 즐겁게 소통하기 위해 마련한 공간이었지만 되레 열광한 것은 악플러와 연예 담당 기자들이었다. 

설리가 한 브랜드 행사장에 참석해 손가락 하트를 그리고 있다.
설리가 한 브랜드 행사장에 참석해 손가락 하트를 그리고 있다. ⓒ뉴스1

 모두 잘 될 거라 내게 말해줘

- 에프엑스 <Stand Up!>

 

″연예 이슈 어뷰징을 위해 연예인 인스타그램 계정만 400개쯤 팔로우하고 매일 접속해가며 확인했다. SNS 피드를 장식한 수많은 연예인 중 설리의 파급력은 막강했었다. 설리가 사진 한 장만 올려도 비슷한 기사 수십개가 쏟아졌다. 언론사에게 설리 인스타그램은 돈이 됐다. 거기에 큰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한 경제지 연예이슈팀에서 일했던 L 씨가 말했다. L 씨는 웬만한 정치 사회 기사 5~6개 쓰는 것보다 설리 SNS 기사 하나가 조회수 및 홈페이지 유입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설리’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게 뜨는 날이면, 효과는 더욱 커졌다. 쏟아지는 기사 가운데 독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더욱 자극적인 제목과 사진이 필요했다.

연예부 기자 J 씨의 생각은 비슷하면서도 좀 달랐다. ”많은 여자 연예인들이 그렇듯이 나쁜 의도로 기사화되는 것이 싫었다면 논란이 될만한 내용을 올리지 않으면 됐다. 가십 기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잘나가는 연예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논란에도 당당하던 설리가 그렇게 쉽게 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겨레가 ‘빅카인즈’를 통해 분석한 결과를 보면, 설리가 에프엑스를 탈퇴하고 개인 활동을 시작한 2015년 8월7일부터 2019년 10월13일까지 그를 다룬 기사는 일간지와 전문지에서만 9238건으로 집계됐다. 연예전문지에서 쓴 기사를 포함하지 않았음에도 1만건에 달했다. 기사 대부분이 ‘설리 연애’ 설리 SNS’ ‘설리 노출’과 같은 몇 시간이 지나면 휘발되는 가십성 기사였다.

그런 기사를 쓴 사람 중에는 나도 있었다. 설리가 에프엑스를 탈퇴했을 때, 날씨가 좋다는 이유로 셀카를 올렸을 때, 연인의 잃어버린 지갑 속에서 다정한 스티커 사진이 발견됐을 때도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기사를 썼다. 

한때 팬으로서 남들만큼 자극적으로 쓰지 않았다는 것으로 용서를 구할 수 있을까. 그 시절, 습관처럼 내뱉던 ″한 번 사는 인생, 설리처럼 살자”는 말에도 은근한 야유와 조롱이 깔려있기는 매한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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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ost shared by 설리가진리 (Sulli) (@jelly_jilli) on Jul 3, 2019 at 1:50am PDT

바람이 장난을 칠 때면
나를 꼭 붙잡아줘야 해
또 날아가 버릴라

ㅡ에프엑스 <종이심장> 

기자님들 저 좀 예뻐해 주세요.

2019년 11월14일, 설리는 스물여섯 나이에 스스로 생을 포기하기 전까지 포털사이트 검색 상위권에서 한 번도 내려온 적이 없었다. 설리는 2017년 구글코리아에서 대통령보다 많이 검색된 인물이었다. 2018년 단독 웹예능 ‘진리상점’에 출연한 설리가 마른 웃음으로 가장 먼저 읍소한 대상은 불특정 다수의 악플러가 아니었다. 자신의 SNS를 일거수일투족 감시하는 기자들이었다.

설리의 죽음은 비단 악성 루머에 시달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중에게 끊임없이 미끼를 던진 언론사와 대놓고 판을 깔아준 IT 플랫폼 사업자가 공모한 결과였다. 설리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서야 IT 기업들은 시스템 개편을 통해 뉴스 댓글을 없애기 시작했다. 카카오가 지난해 10월 포털사이트 최초로 연예뉴스 댓글 서비스를 폐지했고, 이듬해 3월 네이버가, 7월 네이트가 각각 연예뉴스 댓글 창을 닫았다.

국회는 설리 사망 이후 한목소리로 악플 근절을 위한 입법을 약속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실제 인터넷 ‘준실명제’를 도입하고, 플랫폼 사업자에 혐오 표현을 삭제하도록 하는 의무를 부과하는 등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하지만 원 구성이 바뀌면서 법안은 자동 폐기됐고, 새로운 국회에서 악플 근절을 위한 논의는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설리가 생을 마감한 지 꼭 1년이 되는 오늘, 쏟아질 추모 기사들이 100% 순수한 의도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계속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는 여전히 설리의 죽음이 너무 슬프고, 이 슬픔이 절망으로 굳어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김임수 에디터: imsu.kim@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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