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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직업이 행복의 지름길이라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huffpost

그게 행복의 지름길이라 생각했던 때

좋은 직업이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1997년 초등학교에 입학한 나는 ‘꿈이 뭐냐’는 어른들의 질문에 대한 올바른 답변으로 ‘갖고 싶은 직업’을 말해야 칭찬받는 학창 시절을 보냈다. 돌아보면 좋은 성적, 좋은 학교, 좋은 스펙으로 이어지는 삶은 좋은 직업을 향한 달리기였다. 이에 어른이 된다는 건 꿈꾸던 직업을 쟁취하는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했고, ‘꿈이 뭐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당돌하게도 ”좋은 아빠요!”라고 답한 부반장 녀석을 보면서 깔깔거리는 학생이 됐다. 나는 이미 꿈과 직업을 동의어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좋은 직업이 행복의 지름길이라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DONGSEON_KIM via Getty Images


이후의 내 인생에는 직진만 있었다. 새내기 때 쓴 몇 편의 리포트를 교수님께 칭찬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칼럼니스트라는 꿈을 품었고 각종 글쓰기 대회와 관련 대외 활동으로 바쁜 대학 생활을 보냈다. 힘은 들었지만 막연한 결핍감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꿈이 없다”고 말하는 또래 친구들을 안타깝게 여기는 잘난척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칼럼니스트가 진짜 나의 꿈인지,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는 생각하지도 않고, 진로를 결정했다는 것만으로도 우쭐해했다.

우습게도 칼럼니스트는 대학생이 꿈꿀 수 있는 직업과는 거리가 멀었다. 취업 준비 후 기업 면접에 합격하는 과정으로 쟁취할 수 없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렇게나 어설픈 꿈이었지만 당시에는 되돌아볼 생각도 없었다. 이후 칼럼니스트와 가장 비슷해 보이는 전문지 기자가 됐고, 작은 잡지사에서 시작해 중견 기업의 미디어 팀으로 이직했다. 짜릿한 신분 상승의 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믿었다. 그때의 나는 더 높은 연봉이나 명성이 행복을 보장한다고 믿었던 것 같다.

24시간을 ‘이창민 기자’의 자아로 살았다. 이창민 기자는 진취적이고 도전적이라 어려운 일도 거뜬하게 해낼 수 있었다. 밝고 유쾌해서 사람들과 늘 잘 어울리며 소탈하고 긍정적이라서 무시당해도 쉽게 상처받지 않았다. 기자라는 직함이 주는 무게감은 이렇듯 욕심을 부리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내 이름을 기억하게, 내 기사를 읽게 하려고 노력했다. 끊임없이 기삿거리를 찾고, 인맥을 쌓기 위해 모임에 참석했다. 시도 때도 없이 페이스북에 글을 쓰면서 사람들과 소통했다. 사람들은 부지런한 나를 칭찬했다. 그게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에 탈진이 왔다. 억지로 꾸며낸 삶의 방식은 나를 금방 지치게 했다. 퇴근 후 혹은 주말에 휴대폰을 꺼놓고 아무 생각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있을 때가 많았다. 최선을 다해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마음을 치유해야 했다. “주말뿐이면 상관없지” “쉬면 괜찮아지겠지”라는 생각으로 버텼지만 좀처럼 나아지질 않았다.주변에서는 우울증을 걱정했다.

 

좋은 직업이 행복의 지름길이라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Westend61 via Getty Images



직선뿐이었던 경주마 레이스의 끝은 퇴사였다. 그렇게 29살의 나이로 두 번의 퇴사를 경험한 나의 모습은 초라했다. 그저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인데, 좋은 직업을 향해 달리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서른을 목전에 둔 90년대생 중 가장 어른인 내가 내세울 거라곤 시행착오 뿐이었다.

 

어쩌면 헝거게임

영화 <헝거게임>이 떠오른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독재 국가 판엠은 부와 권력을 독식하는 수도 캐피털과 착취당하는 12개 구역으로 나뉜다. 반란 이후 캐피털은 각 구역에서 매년 24명의 소년, 소녀를 추첨으로 뽑아 최후의 일인이 남을 때까지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살인 게임을 개최한다. 시민들을 공포에 몰아넣는 것이 반란을 억제하고 지도자의 권위를 과시하는 효과적인 도구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 게임의 이름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헝거게임(Hunger Game)’이다.

 

 

뽑힌 아이들은 캐피털에 도착하자마자 TV 쇼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삶과 죽음을 오가는 헝거게임 직전, 온 국민에게 자신이 훌륭한 전사임을 증명하는 자리다. 여기서 잘 보이면 후원자들의 눈에 띌 수 있다. 후원자는 누가 우승할지 맞추는 도박사들인데 마음에 드는 아이들에게 생존에 필요한 물품을 보내 준다. 그들의 눈에 들기 위해서는 불합리한 구조에도 의연해야 하고, 어떤 가혹한 상황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면접장과 직장에서의 우리와 비슷하게.

내게 헝거게임은 혹독한 모험 끝에 살아남는 영웅의 이야기로 기억되지 않는다. 참가자 중 단 한 명만 살아남는다는 모순적 상황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본격적으로 게임이 펼쳐지는 후반부에는 김이 팍 샌다. 최후의 1인은 당연히 주인공일 테니까. 이러한 설정은 시시한 것을 넘어 불편할 정도다. 살아남기 위해 싸울 뿐인 다른 참가자들은 주인공의 성공을 막는 장애물이나 악당처럼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가 면접장이나 직장에서 만나는 수많은 경쟁자들처럼 말이다.

그중 가장 마음에 걸리는 인물은 작중 ‘여우얼굴‘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핀치 크로슬리(Finch Crossley)’다. 러닝 타임 내내 거의 주목받지 못해 영화를 봤더라도 기억 못할 수 있지만, 나름 최후의 4인까지 살아남은 빨간 머리 소녀다. 별다른 전투 기술이 없는 그의 생존 전략은 간단하고 단순했다. 지뢰밭을 요리조리 피해 필요한 보급품만 훔쳐서 뒤도 안 돌아보고 냅다 도망가는 것이다. 죽기도 싫지만, 누구를 죽이기도 싫기 때문이다.

그런 그는 남주인공 피타가 채집한 독이 든 딸기를 훔쳐 먹다 허무하게도 죽는다. 아무도 해치지 않고 그저 살고 싶었을 뿐인 그의 죽음은, 누구를 죽이지도 죽임받지도 않고 헝거게임을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남을 밟고 서야 하는 경쟁도 싫고 그렇다고 비겁하게 살기도 싫은, 보잘것없는 정의를 믿으면서도 한없이 나약한 우리들은 어쩌면 이 땅의 핀치 크로슬리가 아닐까.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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