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9일 장중 1만9960원을 기록했던 두산에너빌리티 주가는 올해 2월13일 장중 9만9900원까지 오르며 52주 신고가를 새로 썼다.
가파른 주가 성장세와 비교해 두산에너빌리티의 실적 성장세는 비교적 완만하다. 2025년 두산에너빌리티의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24% 상승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이와 같은 흐름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정부의 원전 정책 변화가 감지되면서 원전이 중장기 성장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금까지 두산에너빌리티는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원전 정책의 기조가 바뀌는 리스크에 노출돼왔다. 그러나 현 정부가 윤석열 정부 때 수립된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을 원래대로 추진하기로 하며 사실상 탈원전이라는 구조적 리스크가 종식된 것으로 판단된다.
여기에 더해 국내 SMR(소형모듈원자로) 생태계 조성 내용을 담은 SMR특별법(소형 모듈 원자로 개발 촉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도 국회를 통과하며 두산에너빌리티 실적이 본격적으로 상승 가도에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두산에너빌리티가 제작한 원자로 ⓒ두산그룹
15일 증권가에 따르면 두산에너빌리티의 중장기 실적은 대내외 원전 수요 증가세에 힘입어 개선될 것으로 분석된다. SK증권은 “트럼프 행정명령 이후 대형원전·SMR 발주가 늘어나며 한국 원전 사업자들이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12차 전기본에서 신규 대형원전 2기 이상 반영될 것으로 보이고 SMR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두산에너빌리티에 우호적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증권사들은 두산에너빌리티의 수익성이 개선될 것이라 예측하고 목표주가를 높여 잡고 있다.
메리츠증권은 13일 두산에너빌리티 목표주가를 11만5천 원으로 높여잡았다. KB증권, 신한증권 역시 목표주가를 각각 11만3100원, 신한증권 15만7천 원으로 상향했다. 세 증권사의 기존 목표주가는 모두 9만5500원이었다.
메리츠증권은 목표 주가를 높여 잡은 이유를 두고 “장기 영업이익 전망치 상향을 가정해 목표주가를 높였다”며 “SMR수주 및 하반기 한미원전 협력이 주요 주가 트리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메리츠증권은 에너빌리티 부문 영업이익이 2026년에 3982억 원으로 전년 대비 31.7% 오르고, 2027년에는 9406억 원으로 136.2%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 11차 전기본·SMR 특별법으로 탈원전 기조 사실상 종식, 두산에너빌 리스크 덜어
두산에너빌리티 호실적을 예상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정부의 11차 전기본 추진 결정이다. '정부의 원전 정책'이라는 두산에너빌리티의 가장 중요한 잠재적 리스크 하나를 덜어냈기 때문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달 11차 전기본에 따라 2037~2038년 도입을 목표로 2.8기가와트(GW) 규모 대형 원전 2기를 건설하고, 2035년 도입을 목표로 0.7기가와트 규모 SMR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까지만 해도 이재명 대통령은 AI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안정적 전력 수급을 강조하면서도 "(추가 원전 건설은) 가능한 부지가 있고 안전성이 담보되면 하겠지만 현실성은 낮다"고 말해 원전 확대에는 회의적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나 지난달 정부 여론조사에서 향후 원전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80%를 넘자 신년 기자회견에서 "필요하다면 안전성 문제를 포함해 검토할 수 있다"고 말하며 실용주의로 전환했다. 에너지믹스의 필요성을 역설한 이재명 정부가 사실상 탈원전 기조에 종지부를 찍은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시각은 SMR 특별법이 1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굳혀졌다. AI·데이터센터 등으로 급증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SMR 도입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SMR 특별법에 따르면 정부는 앞으로 5년마다 'SMR 시스템 개발 기본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SMR 연구·개발 추진 전략, 재원 조달, 생태계 조성 방안 등이 포함된다. 원자력진흥위원회에 SMR 개발 촉진위원회를 설치하고 이를 통해 SMR 관련 주요 사항을 심의·의결할 수 있다. 'SMR 특구'를 마련해 대학·연구소·기관이 협력해 관련 기술을 보다 빠르게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영국 국립원자력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SMR 시장 규모는 2024년 약 60억 달러(8조6640억 원)에서 2035년 4800억 달러(693조 1200억 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원전 업계가 SMR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한다면 상당한 수준의 실적 상승을 이뤄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두산에너빌리티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원전 주기기(원자로, 증기발생기, 터빈 발전기 등)를 제작 및 공급할 수 있는 기업으로 과거에도 원전 신규 건설 때마다 수혜주로 꼽혀왔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06년 신고리원전 3·4호기 APR1400(국내 첫 제3세대 신형원전) 주기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고 2008년에는 신한울원전 1·2호기 주기기 공급을 체결한 바 있다. 2014년에는 약 2조3천억 원 규모의 신고리 원전 5·6호기 주기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고 이듬해에는 주설비공사를 수주하기도 했다.
◆ 두산에너빌, 5년 동안 원전 수주 '0건' 보릿고개 지났다
최근 제기되고 있는 두산에너빌리티를 향한 장밋빛 전망과 대조적으로, 두산에너빌리티의 실적이 보릿고개를 탈출한 지는 몇 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두산에너빌리티 에너빌리티 부문 실적은 2018년 매출 5조7891억 원, 영업이익 2020억 원에서 2019년 매출 5조8614억 원, 영업손실 63억 원으로 수직낙하했다. 설상가상으로 2020년 매출 5조6299억 원, 영업손실 2894억 원으로 수익성이 급감했다. 영업이익이 급감한 데는 문재인 정부 집권 5년 동안 단 한 건의 원전 수주도 올리지 못한 사업 부진과 코로나19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탓이 컸다.
원전 대기근의 시대에서 박지원 당시 두산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 대표이사 회장은 ‘근원 기술 경쟁력’을 개발하며 와신상담했다.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가운데),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이 2025년 8월 25일 미국 워싱턴DC 윌라드 호텔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참석한 미국 기업인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 회장은 2019 두산테크포럼에서 "성장을 위해서는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는 제품 및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 확보가 우선이다"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두산에너빌리티로 2022년부터 SMR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제작기술(로봇, 전자빔용접) 등의 기술을 확보해 납기를 혁신적으로 단축할 계획을 세웠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뉴스케일파워, 엑스-에너지, 테라파워 등 SMR 기술을 선도하는 글로벌 기업과 손잡고 주기기 및 핵심소재 제작을 전담하는 '글로벌 SMR 파운드리' 입지를 다져가는 중이다.
두산에너빌리티 관계자는 “국제에너지기구(IEA)가 2030년까지 전 세계 전력의 약 50%를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이 공급할 것으로 전망한 상황"이라며 “이에 따라 원전 산업의 성장세가 예상되며 이는 두산에너빌리티의 주기기 수주 확대 및 글로벌 시장 진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