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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자신의 만화를 처음 세상에 내놓았을 때, 이런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100억뷰라뇨. 얼마나 많은 건지 감도 안 오네요.” 지난 7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박태준만화회사 사옥에서 만난 박태준 작가가 말했다.

그가 2014년 연재를 시작한 네이버웹툰 ‘외모지상주의’는 지난달 말 조회수 100억뷰를 돌파했다. 국내 웹툰 중 더 많은 조회수를 올린 건 ‘나 혼자만 레벨업’(143억뷰·카카오웹툰)뿐인데, 이는 인기 웹소설을 웹툰으로 옮긴 것이다. 순수 웹툰 창작물로 100억뷰를 넘긴 건 ‘외모지상주의’가 처음이다.

박태준 작가. ⓒ박태준 인스타그램
박태준 작가. ⓒ박태준 인스타그램

지금은 성공한 웹툰 작가의 대명사가 됐지만, 걸어온 길은 결코 평탄치 않았다. 어린 시절 그는 매일 어머니 일터인 창고에 따라갔다. 생계를 책임진 어머니가 출근하고 나면 돌봐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창고 안 작은 방에서 종일 시간을 보내야 했던 그에게 유일한 친구는 만화책이었다. 만화를 보다 지겨우면 그림을 따라 그렸고, 다음 내용을 상상하기도 했다. 만화가의 꿈이 자연스럽게 피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뒤 곧바로 만화가에 도전하고 싶었지만, 대학에 가야 한다는 어머니의 바람으로 상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에 진학했다. 어머니는 학자금 대출 빚을 떠안으셨다. 2000년대 초반 당시 출판만화 시장은 기울었고, 웹툰은 이제 막 움트고 있었다. 만화가로 돈을 벌 자신이 없었다. ‘꿈을 잠시 미루자. 돈부터 번 다음 만화가가 되자.’ 1년 만에 학교를 그만뒀다.

박태준 작가. ⓒ박태준만화회사 제공/한겨레
박태준 작가. ⓒ박태준만화회사 제공/한겨레

온라인 쇼핑몰 사업을 시작했다. 진입 장벽이 낮은 대신 몸을 갈아 넣어야 했다. 동대문 새벽시장에 가서 옷을 떼오고 포장·배송은 물론 피팅모델까지 직접 하느라 밤낮이고 휴일이고 없었다. 뒤통수도 맞고 사기도 당해봤다. 쇼핑몰 홍보를 위해 방송에도 출연했다. 2009년 케이블채널 코미디티브이(TV) 예능 ‘얼짱시대’다. “끼와 재능은 없었지만 어떻게든 열심히 하다 보니 3년이나 했네요. 거기서 사람들이 카메라 켜졌을 때와 꺼졌을 때 달라지고, 유명해지면서 변해가는 걸 보며 느낀 바가 많았죠.” 이런 경험들은 훗날 창작의 밑거름이 됐다.

그렇게 10년을 치열하게 살았다. 그새 웹툰 시장이 제법 커졌다. 네이버웹툰에 아마추어 작가가 만화를 올릴 수 있는 ‘도전만화’ 섹션도 생겼다. 재미 삼아 자신의 쇼핑몰에 조금씩 올리던 만화를 한번 올려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데뷔한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제 만화에 대한 반응과 댓글이 궁금했어요.” 반응이 뜨거웠다. 몇달 뒤 정식 연재로 이어졌다. 30살의 데뷔였다.

100억뷰를 넘긴 ‘외모지상주의’. ⓒ박태준만화회사 제공/한겨레
100억뷰를 넘긴 ‘외모지상주의’. ⓒ박태준만화회사 제공/한겨레

‘외모지상주의’는 가난하고 볼품없는 외모로 괴롭힘을 당하던 고등학생 박형석이 키 크고 잘생긴 또 하나의 몸을 갖게 되면서 겪는 일을 다룬다. 내면은 같아도 외양이 바뀌면 주위 사람들 태도가 180도 달라진다. 여기엔 작가 자신의 경험이 반영됐다. “학창 시절 저는 뭐 하나 내세울 것 없었어요. 집도 가난하고, 왜소한 체격, 짧은 곱슬머리에 두꺼운 안경을 쓰고 구석에서 만화만 그렸죠. 괴롭힘도 당하고 설움도 느꼈어요.”

변화의 계기는 고3 때 찾아왔다. 대학 만화과 진학을 위해 미용·패션 등 기술을 배우는 직업학교에 등록했다. 그러면 기존 학교는 일주일에 하루만 가도 됐기 때문이다. 직업학교에서 일찍 하교하고 미술학원 가서 실기를 배웠다. “직업학교 친구들이 의외로 저를 편견 없이 대해줬어요. 제 외모도 꾸며줬죠. 외모가 바뀌니 주변 사람들 태도가 달라졌어요. 심지어 동네 슈퍼에서도요.”

‘외모지상주의’ 100억뷰 돌파 축전. ⓒ박태준만화회사 제공/한겨레
‘외모지상주의’ 100억뷰 돌파 축전. ⓒ박태준만화회사 제공/한겨레

그는 훗날 외모가 아니라 자존감의 문제였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스스로 당당해야 남들도 저를 존중한다는 걸 알게 됐죠. 내가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는 걸 만화로 전하고 싶었어요. 이제는 너무 장기 연재로 가면서 그 주제는 많이 희석됐지만요.”

그는 지난 9년간 단 한번도 연재를 거른 적이 없다. 심지어 코로나19에 걸렸을 때도 마감을 지켰다. “쇼핑몰 하면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게 몸에 뱄어요. 만화도 마찬가지죠. 만화는 열심히 하는 만큼 반응이 즉시 나오니 얼마나 재밌고 행복한지 몰라요.”

박태준 작가. ⓒ박태준만화회사 제공/한겨레
박태준 작가. ⓒ박태준만화회사 제공/한겨레

2017년 박태준만화회사(법인명 더그림엔터테인먼트)를 만든 것도 그래서다. 다른 작가들과 협업해 더 많은 작품들을 선보이고 싶은 마음에서다. 최근 연재를 시작한 ‘얼짱시대’ 등 그가 스토리를 쓰거나 프로듀싱을 맡은 작품만 10편이 넘는다. 지난해 매출은 150억원에 이르렀다.

“이제 다른 작품 프로듀싱에서 손 떼고 제 작품을 하나 더 하고 싶어요. 내년에 판타지 만화를 연재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박태준은 학원물·폭력물밖에 못하는 작가라는 인식이 강해요. 저는 걸어온 길보다 걸어갈 길이 더 많이 남았다고 생각해요. 그 길을 묵묵히 잘 걸어서 더 좋은 작가로 인정받고 싶어요. 나중엔 글로벌에서도 인정받는 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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