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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에서 피해 사망자들을 추모하는 모습과 전세사기 피해자 집 앞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든 상수도 미납요금 안내서(왼), 전세사기 피해자의 빈소(오). ⓒ뉴스1, 한겨레, 유족 제공 
18일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에서 피해 사망자들을 추모하는 모습과 전세사기 피해자 집 앞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든 상수도 미납요금 안내서(왼), 전세사기 피해자의 빈소(오). ⓒ뉴스1, 한겨레, 유족 제공 

4㎏짜리 무거운 해머에 가족의 미래를 담아 던지던 유망주 육상소녀는 13년 뒤 전세사기 사건에 휘말려 꿈도 인생도 무너져버렸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는 틈틈이 피해구제를 받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던 청년은 결국 전재산 9000만원을 쏟아부은 전셋집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지난 17일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 ㅅ아파트 12층에서 숨진 채 발견된 박아무개(31)씨는 국가대표까지 지낸 엘리트 육상선수였다. 그는 강원도 정선의 중학교에서 원반던지기 선수를 하다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부모와 살던 집을 떠나 고모가 있는 부산으로 전학했다. 운동을 계속하기엔 가정형편이 여의치 않아 운동을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주변 도움으로 기숙사가 있는 체육고에 합격해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해머던지기 선수로 전향한 뒤 기록 향상이 눈부셨다. 1년 만에 전국체전 금메달을 땄고, 출전하는 대회마다 여고부 기록을 경신했다. 박씨는 2009년 부산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처럼 계속 기록을 깨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는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 졸업 후에는 실업팀에 입학해 돈을 벌어 동생을 대학에 꼭 보내고 싶다”고 할 만큼 가족애가 남달랐던 소녀였다.

박씨는 2019년 9월 ‘건축왕’으로 불리는 건축업자 남아무개(61)씨 일당에게 전세보증금 7200만원을 건네고 임대차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박씨의 전세보증금은 2021년 재계약 과정에서 9천만원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집주인 남씨가 집을 살 때 제2금융권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하게 되자, 법원은 이 집에 대해 지난해 3월29일 임의경매 개시 결정을 내렸다. 낙찰이 이뤄지지 않아 퇴거 압박에 시달리진 않았지만, 집이 경매에 넘어가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처지였다. 2021년 재계약 과정에서 보증금을 올려준 탓에 ‘8천만원 이하’로 정해진 전세보증금 최우선 변제 대상에 해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천에서 전세사기 피해자가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된 17일 오후 인천시 미추홀구 희생자 집 들머리에 추모 조화가 놓여 있다. ‘건축왕’이라고 불리는 건축업자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숨진 것은 지난 2월부터 이번이 세번째로, 모두 20~30대 청년들이다. ⓒ연합뉴스
인천에서 전세사기 피해자가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된 17일 오후 인천시 미추홀구 희생자 집 들머리에 추모 조화가 놓여 있다. ‘건축왕’이라고 불리는 건축업자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숨진 것은 지난 2월부터 이번이 세번째로, 모두 20~30대 청년들이다. ⓒ연합뉴스

18일 박씨의 빈소가 마련된 인천 중구 인하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아버지 박무선씨는 “딸이 집 문제로 힘든 것은 알았지만 전세사기에 당했을 줄은 전혀 몰랐다”고 허탈해했다. 박씨는 <한겨레>에 “지난 설에도 만났을 때는 (집 문제가) 잘 해결되고 있다고 했다. 전세사기 기사가 계속 나왔지만 내 딸이 전세사기를 당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가족에게 폐를 끼칠까 염려해 말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박씨는 2010년에는 제16회 광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육상 국가대표로 뽑히기도 했다. 이후 부산시청과 울산시청 등 여러 곳에서 선수생활을 했는데, 인천에 온 것도 인천에서 마지막 선수인생을 보낸 뒤 제2의 인생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아버지 박씨는 “딸이 인천에서 선수로 뛰면서 애견 관련 일 자격증을 준비했다. 작년 말까지 선수생활을 했고, 올해는 애견 자격증을 따서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면서 아르바이트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박씨는 선수생활을 그만둔 뒤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면서 생활고를 겪은 것으로 보인다. 전날 찾아간 박씨 집 현관 앞 종량제 쓰레기봉투에는 “수도요금이 체납입니다. 120번 확인 후 납부하세요. 미납 시 단수합니다”라는 손글씨가 적힌 상수도 요금 독촉장이 버려져 있었다.

이날 빈소에는 고인과 함께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는 회원들이 찾아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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