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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아 브라운의 「빅히스토리」라는 책에서는 지구의 나이를 하루라 가정했을 때, 인류가 출현한 시간은 자정이 다 된 시간인 11시 58분이라고 나온다. 지구의 역사 속 인류는 이제 겨우 2분을 살아온 것. 그럼에도 인류는 2분이라는 짧은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많은 영향력을 줄 수 있었던 이유는 인간이 가진 뇌가 뛰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진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인류가 지금과 같은 문화를 가지기 전엔 다른 맹수들에 비해 약한 존재였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상대적으로 약하다 보니 어떤 상황에서건 빠르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래서인지 아직도 인류는 진지하게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게 반응하는 것들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
빠른 것은 나쁜 게 아니라 '위험한 것'

인류는 필연적으로 빠름과 떼어낼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으니, 빠른 것이 당연하고 좋은 것일까? 빨리만 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일까? 물론, 빠르게 처리하는 것도 좋지만 빨리하다가 훗날 크게 쓰일 것을 놓쳐버리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나는 예전부터 빠른 것이 나쁘다기보다는 '위험한 것'이란 말을 많이 해 왔는데, 그 이유는 운동선수들의 예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선 투수가 시속 150킬로미터 이상의 공을 던지는 경우가 드물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150킬로미터 이상을 던지는 투수가 자주 나오는데, 그 차이는 무엇일까? 미국 메이저리그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야구 리그를 가지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야구를 가장 잘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그곳에서 지켜야 하는 룰 중엔 어린 선수들에 대한 룰도 있다.

출처 : MLB 'Pitch Smart | Guidelines | MLB.com'
출처 : MLB 'Pitch Smart | Guidelines | MLB.com'

~12세 'Avoid throwing pitches other than fastballs and change-ups'
~13세 'Players can begin using breaking pitches after developing consistent fastball and change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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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메이저리그 MLB 사이트에 나와 있는 가이드 내용이다. 미국에서의 나이는 우리보다 한 살 정도 어리게 표시되므로, 실제론 13세 전까지 변화구를 던지지 못하게 되어있는 것 같다. 13세 이후라 하더라도 속구와 체인지업을 제대로 던질 수 있을 때 시도하라는 내용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좀 다르다.

박태웅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의 인터뷰를 인용하면, 우리나라에선 11살에 커브, 12살부터 슬라이더를 배우기 시작해 커브는 13세(23.7%), 슬라이더는 15세(21.5%), 싱커는 16세(25.0%)에 가장 많은 선수가 던지기 시작한다고 한다. 대구 북구 유소년팀의 홍순천 감독은 한국 투수들이 리틀야구에선 세계 최강이다가 성인이 되면 미국, 일본 선수들에 뒤지는 이유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릴 때부터 변화구와 같은 기술을 빨리 사용해 상대를 제압한다. 그러나 기술로 접근하면 본능적으로 하는 동작이 사라진다. 무리하니 부상도 온다. 150㎞ 이상 던지려면 기본적 운동능력이 필요하다. 야구뿐만 아니라 육상, 수영, 배드민턴, 요가와 같은 다양한 종목으로 반응속도, 근력, 시각 능력을 키워야 한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마음껏 뛰어놀아야 한다. 지도자는 재미있게 끌고 가는 게 중요하다." (출처: 아이뉴스24 '[박태웅 칼럼] A.I.시대의 교육')

빠른 것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 위험해 보인다. 시속 150킬로미터 이상의 공을 던지기 위해선 어릴 때 너무 많은 기술을 빨리 배우기보다는 천천히 가더라도 기본기를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일도 이와 같다. 지금 당장은 온갖 기술을 발휘하는 선수들을 보면 부럽고 빨리 따라 하고 싶겠지만, 그것은 자칫 앞으로의 가능성을 죽여버리는 행동이 될 수 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하나씩 하나씩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고교학점제 시행, 핵심은 선택하는 능력

지금의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할 땐 우리나라 모든 고등학생은 '고교학점제'를 시행하는 대상이 된다. (2023년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된다고 함) 특정한 지역이나 특정 고등학교에서만 이뤄지는 교육방식이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제도 자체가 바뀌는 것이다. 이런 교육제도는 정권이 바뀐다고 바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기에 찬찬히 살펴보고 준비해야 한다.

고교학점제가 되며 달라지는 것 중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일단, 예전처럼 학교만 잘 나가면 졸업하던 일은 이제 불가능해진다. F 학점을 받으면 다시 수강해야 졸업할 수 있는 대학교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고교학점제에선 공통과목 외엔 스스로 선택해서 들어야 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배우면 자신에게 도움이 될지 알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지금 당장 고등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 이것을 물어보면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동안 우리 교육에선 아이들이 선택하는 건 낯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선택을 잘한다는 것은 어떤 것을 만났을 때 잘 판단한다는 의미이다. 잘 판단하려면 그것에 대한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다면 다양한 교과목 중 자신에게 필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고교학점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다양한 경험이다.

 

기사와 무관한 자료 사진 / 출처 gettyimagesbank
기사와 무관한 자료 사진 / 출처 gettyimagesbank

 

조금 느리더라도 기본을 다지는 초등교육

세계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가장 호불호 없이 어느 곳이건 가기만 해도 즐거운 시기는 언제일까? 성인이 되었을 때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어른이 되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이 있어서 그곳으로 여행 가길 원할 테니까 말이다. 호불호 없이 여행 갈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는 어릴 때이다. 우리나라 학제에서 가장 적기를 찾자면 초등학교 시기일 것이다.

​어릴 때부터 좋고 싫음이 분명한 것은 효율성 면에선 좋을 수 있겠다. 하지만 자신이 경험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들을 해 본 후 나중에 좋고 싫음을 나누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도움이 된다. 전문적인 것 하나에 깊이 그리고 빨리 들어가지 않고, 비록 남들이 공식을 외워서 문제를 빨리 풀어낼 때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머리 싸매고 공부할 수 있는 시기는 초등학생 때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보낸 시기가 있어야 앞으로 무엇을 만나건, 자신이 왜 좋은지, 왜 싫은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초등의 시기에는 다양한 여행지를 따라다니며 그곳의 장단점을 경험하면 좋다.  무엇인가 빠르게 배우고 특성화시키기 전에 천천히 생각하고 다양하게 경험하는 시기를 보내야 한다. 대부분의 부모님이 아이들 학업에 대해 많이 걱정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초등의 시기에 조금이라도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기다려주는 것이 좋다. 어른이 아이들에게 천천히 그리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줄 수 있는 유일한 시기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무엇이건 조급하게 서둔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자연의 섭리에 알맞을 때를 기다릴 줄 아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를 기다리는 마음도 이와 같아 아이가 지금 꽃을 피우지 않는다고 닦달하고 보챈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아이가 보내야 할 시간, 아이로서 경험해야 할 시간을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기다리지 못하고 재촉하기만 한다면 아이는 영원히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꽃을 피우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이경원 초등교사] 현직 초등학교 교사. <교사의 탄생>, <학급의 탄생>, <교육과정 콘서트>, <프로젝트 수업, 교육과정을 말하다> 등을 집필했다. EBS <다큐프라임> 및 KBS1 라디오 <교육을 말하다> 등에 출연, 활발한 교사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스쿨잼  naverschoo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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