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연애 프로그램인가? 아니면 연애 사업 취업 프로그램인가? 연애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은 성공적인 커플 매칭을 위해 지원 서류를 내고, 제작진 면접을 보고, 합숙 면접까지 거친다. 물론 애초부터 특별 채용된 출연자들도 있지만.
헤어진 연인이 모이는 '환승연애'부터 결혼을 간절히 원하는 솔로 남녀들이 나오는 '나는 솔로'까지. 그야말로 연애 프로그램의 춘추전국시대다. 연애 프로그램에 과몰입하다보면, 결혼과 연애에 누구보다 진심인 사람들을 마주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서 연애와 결혼의 문제는 이러한 감정들로부터 상당히 동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연애 또는 결혼을 선택하지 않았다
12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도심이 보이고 있다. ⓒ뉴스1
연애에 관심 없거나 혹은 거부하거나. 대한민국 청년 10명 중 6명은 현재 연애를 하고 있지 않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만 19~34세 비혼 청년 1,04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2년 제1차 저출산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65.5%는 현재 연애하고 있지 않다고 응답했다. 이들 중 70.4%는 자발적으로 비연애를 선택했다. 비연애의 주된 이유는 '연애할 여유가 없어서(남성 65.8%, 여성 51.4%)'였다.
비연애 청년 5명 중 1명은 앞으로도 연애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청년관점의 '젠더갈등' 진단과 포용국가를 위한 정책적 대응 방안 연구에 따르면, 비혼 청년 21.4%은 향후 연애 의향이 없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로는 "돈, 시간, 감정적 소모가 크다"가 가장 응답률이 높았다.
결혼 자료사진(좌),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포스터(우) ⓒ픽사베이/MBC
한 결혼정보회사가 25세 이상 39세 이하의 미혼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데이트 비용을 조사한 결과, 하루 데이트의 평균 지출 비용은 7만 9,600원이다. 신혼부부 평균 결혼 비용만 2억 8,739만 원이다. 국토교통부가 국토연구원에 의뢰해 전국 5만 1,0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2021년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에 있는 집을 사려면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무려 14년간 모아야 한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의 '2022 통계로 본 1인가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1년 1인가구는 전체 가구의 33.4%인 716만 6,000 가구로 나타났다. 1인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늘어나 2050년 39.6%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이러한 숫자들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건, 혼자 살기에도 이 사회가 벅차다는 이야기. 대학원생인 정 모 씨(29)는 "불안한 사회에서 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내 시간과 에너지를 연애보다 내가 하는 일에 쏟을 수밖에 없다"며 "일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쉴 때는 사람들을 만나기보다 혼자 쉬고 싶다"고 말했다.
연애·결혼 시장에 뛰어들기 전에 필요한 스펙
취업을 준비하듯, 연애와 결혼에도 경제적으로 준비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팍팍한 현실과 달리 연애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의 스펙은 '넘사벽'이다. 연예인과 같은 외모와 '핫바디'를 뽐내고 20대에 외제차를 끌고 다니며 남다른 경제력을 자랑한다.
특히 과거엔 방송에서 연애 횟수와 경험을 숨겼다면, 연애 프로그램에서는 이제 헤어진 연인까지 과감하게 공개한다. 이해수 고려대학교 미디어학교육연구단 연구교수는 "'환승연애'를 2030 세대가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것 또한 연애 경험이 그 사람의 '매력 있음'과 '능력 있음'의 지표가 되기 때문"이라며 "마치 완벽한 사회적 자본과 물질적 기반이 충족되지 못한 이들에겐 연애의 기회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연애 프로그램에서는 결혼이 간절한 사람들이 대부분 나오는데, 현실에서 결혼하는 사람의 수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 건수는 19만 3,000건으로 전년 대비 9.8% 줄어들며 역대 최저 수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결혼정보회사들은 가입자와 매출액이 증가해 호황이라는 점이다. 이제 더이상 상대방의 조건을 잘 모르고 연애나 결혼을 하기 힘들어진 시대다. 그래서 '사람 보는 눈이 높아졌다'는 말은 성공적인 연애·결혼을 위해서 믿을 만한 신원 정보와 탄탄한 경제력이 필요하다는 방증이 아닐까.
연애를 전시하다
나는 솔로 포스터(좌), 환승연애 포스터(우) ⓒENA, SBS Plus/티빙
연애 프로그램은 첫 화는 첫인상만으로 인기 투표를 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출연자 간에 비교 경쟁을 부추긴다. 또한, 데이트에 선택받지 못해 홀로 숙소에 남거나, 커플에 매칭에 성공하지 못할 때 출연자들은 마치 불합격 통보를 받은 듯이 눈물을 흘리며 좌절한다.
제작진의 상황 연출과 논란을 유도하는 '악마의 편집'은 출연자들의 극적인 감정과 행동 변화를 만들어낸다. 조 모 씨(28) 씨는 "연애 프로그램은 보통 남녀를 한곳에 몰아넣는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극적인 감정이나 캐릭터성을 끄집어낸다"며 "현실과는 많이 다른 연애 판타지를 그려낸다"고 지적했다
또한, 연애 프로그램에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SNS 상에서 데이트 현장 목격담이 실시간으로 알려지거나, 프로그램 종영 후에도 나의 연애를 제3자로부터 검열받을 수도 있다. 출연자들이 자신들의 평판 점수를 지나치게 의식해 자신의 연애가 SNS에서 전시될 확률이 높다.
이해수 연구교수는 "제한된 공간 내 성공적인 관계 맺기라는 단일한 목표를 향할 때, 나의 매력 자본에 서열이 매겨질 때, 카메라 밖 대중들의 시선과 반응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일 때, 출연진들의 매력 경쟁은 나다움을 찾는 노력에서 비껴간다"고 말했다. 이는 자신의 어떠한 사람인지 다시금 확인하고, 내면을 성장시키기보다,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외적 경쟁에 몰두하게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결국 연애 프로그램 과몰입 사회에서 '나는 솔로'를 자처하는 건, 이 치열한 연애·결혼 시장에서 나의 미래를 저당 잡히며 경쟁하고 싶지 않고 싶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잠자던 연애 세포를 깨웠던 '단짠 단짠' 연애 프로그램의 몰입 끝에 현실의 씁쓸한 맛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