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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환대 프로젝트, ‘맡겨놓은 카페’ ⓒGetty 
청소년을 위한 환대 프로젝트, ‘맡겨놓은 카페’ ⓒGetty 

“청소년을 위한 환대 프로젝트 ‘맡겨놓은 카페’가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강원도 춘천의 상징은 닭갈비와 막국수다. 하지만 최근에 하나가 더 생겼다. 커피다. 춘천시가 해마다 9월이면 ‘춘천커피도시페스타’를 연 게 영향을 줬다. 지난해 7월엔 새 도시브랜드로 ‘커피도시 춘천’을 선포했다.

커피가 춘천의 새로운 대표상품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구봉산과 소양댐, 공지천, 서면 등 지역 곳곳에 성업 중인 카페들의 공이 컸다. 커피점 수만 700곳이 넘는다. 산업적 기반이 닦여 있다는 얘기다. 1968년 대한민국 최초의 로스터리 커피숍으로 문을 연 ‘이디오피아 집’도 춘천 공지천변에 있다.

 

'청소년을 위한 맡겨놓은 카페'의 시작

'청소년을 위한 맡겨놓은 카페' 팻말. ⓒ'청소년을 위한 맡겨놓은 카페' 홈페이지
'청소년을 위한 맡겨놓은 카페' 팻말. ⓒ'청소년을 위한 맡겨놓은 카페' 홈페이지

지역 곳곳에 실핏줄처럼 퍼져 있는 카페 공간을 활용해 청소년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이 지난 7월15일 시작됐다. 이 사업엔 ‘청소년을 위한 맡겨놓은 카페’라는 특이한 이름이 붙었다. 14살 이상 19살 이하의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동네 가까이 있는 ‘맡겨놓은 카페’를 방문해 적립된 음료를 무료로 마실 수 있게 하는 게 이 사업의 뼈대다.

아이디어를 얻은 곳은 ‘카페 소스페소’라는 이탈리아의 나눔 운동이다. 소스페소는 ‘미정’, ‘미루다’ 등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로, 커피가 생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이탈리아에서 가난한 익명의 사람들을 위해 커피 한잔 값을 더 계산해 마음을 나누는 움직임을 가리킨다. ‘청소년’과 ‘카페 소스페소’가 결합해 ‘청소년을 위한 맡겨놓은 카페’가 탄생한 것이다.

춘천시 출자·출연 기관인 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의 윤요왕(50) 센터장이 처음으로 제안했고, 이례적으로 지역에 있는 문화재단과 사회혁신센터, 협동조합지원센터, 지속가능발전협의회, 먹거리통합지원센터 등 5개 기관도 특별전담조직 ‘사이사이’까지 만들면서 한마음으로 힘을 보탰다.

 

동네 카페가 청소년 아지트로 

카페 전경. ⓒ'청소년을 위한 맡겨놓은 카페' 홈페이지
카페 전경. ⓒ'청소년을 위한 맡겨놓은 카페' 홈페이지

윤요왕 센터장은 <한겨레>와 만나 “청소년에게 진짜로 필요한 것이 뭔지를 알아보기 위해 직접 만났더니 대부분이 용돈이 넉넉하지 않아 공원이나 지하상가 등을 배회하며 시간을 보낸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이들에게 좀 더 안정적이고, 편안한 공간을 확보해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봤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실제 카페는 추위·더위와 상관없이 쾌적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청소년들이 사는 집이나 학교와도 가까이에 있어 접근성도 좋다. 그러니 일부러 공부하러 카페를 찾는 청소년들이 적지 않다.

유현희 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 마을공동체팀장은 “이 사업의 핵심은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이 청소년에게 보내는 선한 마음에 있다”고 했다. 어른들은 카페 음료 한잔 주는 것부터 시작해 편하게 아이들에게 접근하고, 청소년 입장에서도 나를 위해 한잔의 음료를 맡겨놓은 어른들의 선한 마음을 느끼면서 어른이 된 뒤 청소년을 위한 기부 활동에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어른들과 청소년 사이에 보이지 않는 비대면 연결고리 같은 것이 생기고, 이것이 쌓이고 확장되면 훨씬 감동적인 춘천이 될 수 있으리란 게 유 센터장의 생각이다.

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는 이 사업이 지속되면 점차 카페 단골이 된 청소년도 생기고, 카페 주인과 친밀감이 형성되는 등 카페가 지역 청소년을 위한 쉼과 돌봄의 공간, 일명 ‘아지트’가 되고 나중에는 청소년들이 겪는 고민과 힘든 일까지 소통하는 순기능까지 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기대도 갖고 있다.

입간판을 놔둔 모습. ⓒ'청소년을 위한 맡겨놓은 카페' 홈페이지
입간판을 놔둔 모습. ⓒ'청소년을 위한 맡겨놓은 카페' 홈페이지

특이한 점은 이 사업에는 단 한 푼의 예산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사업에 참여하는 카페에도 예산 지원은 없다. 나정수 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 주민자치팀 지원관은 “지원기관들은 누리집을 만들고 홍보를 대신 하는 등의 활동은 하지만 직접 음료를 사서 청소년들에게 나눠준다거나 이 사업에 동참한다고 카페에 예산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손쉽게 시에서 예산을 받아 청소년에게 ‘공짜 음료’를 나눠주는 사업이 아니란 얘기다. 나 지원관은 “그렇게 되면 시장이 바뀌거나 예산이 삭감되면 더는 지속할 수 없는 일회성 사업이 되고 만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어지고 있다. ⓒ'청소년을 위한 맡겨놓은 카페' 홈페이지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어지고 있다. ⓒ'청소년을 위한 맡겨놓은 카페' 홈페이지

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는 ‘청소년을 위한 맡겨놓은 카페’가 청소년들이 익명성이 보장되면서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데 최우선 가치를 두고 사업을 기획했다. 윤요왕 센터장은 “지금까지의 청소년 사업은 먼저 건물부터 만든 다음 그 공간에 오라는 식이었다. 어마어마한 예산을 투입해 건물을 만들어놨는데, 막상 가보면 분위기도 어색하고 프로그램도 딱딱하다”며 “접근법이 달라야 한다”고 했다.

실제 이곳의 이용 방법은 생각보다 쉽고, 제약도 없다. 청소년이면 누구나 원하는 카페에 방문해 누군가 맡겨놓은 음료를 주문하면 된다. 이름을 알려줘야 한다거나 학생증으로 신분을 증명할 필요도 없다. 학교 밖 청소년도 당연히 이용할 수 있다. 무료 음료를 즐기는 대신 교육 프로그램을 들어야 한다든지 등의 의무조항도 없다. 카페마다 맡겨놓은 음료의 수가 다른데, 카페 누리집에 들어가 미리 확인할 수 있다.

 

시민·청소년·소상공인 모두 웃음꽃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이 사업에 동참한 카페들은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아닌 개인 카페다. 카페들은 기부받을 때 미리 음료를 판 효과를 거둘 수 있고, 실제 관심이 있는 시민과 학생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매출도 늘고 있다고 한다.

교동에 있는 유봉여중·고 인근에서 ‘카페희랑’을 운영 중인 김영수(36)씨는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대형 프랜차이즈 음료만 즐기던 청소년들이 이 사업을 계기로 지역의 특색 있는 카페를 찾고 있어 매출이 늘고 있다. 청소년은 ‘시끄럽다’는 편견을 가질지 모르지만 대부분 공부하러 많이 온다. 무상급식과 같이 가정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뿐 아니라 모든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라 청소년들이 좀 더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청소년을 위한 맡겨놓은 카페' 선포식. ⓒ'청소년을 위한 맡겨놓은 카페' 홈페이지
'청소년을 위한 맡겨놓은 카페' 선포식. ⓒ'청소년을 위한 맡겨놓은 카페' 홈페이지

대대적인 홍보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시작한 지 불과 3개월여 만에 28개 카페가 동참을 결정했으며, 시민들의 기부도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1242잔의 음료가 적립됐고 이 가운데 506잔이 소비됐다. 전남 순천과 전북 전주, 부산 등에서 사업에 대한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학생들이 직접 작성한 이용 후기. ⓒ'청소년을 위한 맡겨놓은 카페' 홈페이지
학생들이 직접 작성한 이용 후기. ⓒ'청소년을 위한 맡겨놓은 카페' 홈페이지

청소년들 반응은 폭발적이다. “따뜻한 마음 기부 정말 감사드립니다. 맛있게 먹고 알찬 하루 보내겠습니다.” “덕분에 아이스크림 잘 먹고 가요. 너무 더웠는데 진짜 시원해졌습니다. 덕분에 힘을 얻고 가요. 이 힘으로 학업도 화이팅 하겠습니다.”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받고 지칠 때도 잦았는데 이런 활동이 있는 것과 기부해주신 음료 덕에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고 스트레스도 사라졌습니다.” “힘내서 저도 좋은 어른이 되겠습니다.” “이 초코라떼 한잔으로 앞으로 수능 잘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카페희랑에 아이들이 붙여놓고 간 메모다.

학생들이 직접 작성한 이용 후기. ⓒ'청소년을 위한 맡겨놓은 카페' 홈페이지
학생들이 직접 작성한 이용 후기. ⓒ'청소년을 위한 맡겨놓은 카페' 홈페이지

석사동에서 독서실을 운영 중인 송학준(40)씨는 “직업 특성상 청소년을 많이 접하고 관심도 많은데 이들이 여가 시간에 갈 곳이 정말 없다. 단골 카페에서 이런 일을 한다고 해서 기부했는데, 나중에 청소년들이 무척이나 좋아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뿌듯했다. 작은 정성이지만 앞으로도 기부를 계속할 계획”이라며 활짝 웃었다.

윤요왕 센터장은 “시작은 몇몇 기관들이 했지만, 장기적으로 이 사업이 성공해 일상의 문화로 정착할지는 참여 시민과 청소년에게 달려 있다. 우리의 경험이 쌓이고 공유돼 전국 각지로 퍼졌으면 좋겠다. 사업을 진행하며 터득한 비법을 100% 공개할 뜻이 있으니, 언제든 연락만 주시라”고 했다.

한겨레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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