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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잉’. 휴대폰 진동이 짧게 울렸다. 할인 쿠폰이 며칠 안 남은 애플리케이션 알림이겠거니 했다. 액정을 보고 나서야 “와, 대박!”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누가 보면 로또라도 당첨된 것처럼 입을 틀어막고 폴짝폴짝 뛰었다.

’OO, 뭐 하고 있어요? 주말 동안 가족들이랑 좋은 시간 보내고 우리 또 월요일부터 힘내서 한 주를 보냅시다’

″우와, 진짜 오네?!”

내 광대를 승천시킨 것은 그룹 ‘엔씨티(NCT)’의 정우가 보낸 메시지. 정우는 나의 ‘최애돌(최고로 애정하는 아이돌)’이다.  

어찌된 거냐고? 나는 정우의 전화번호를 모른다. 정우도 내 번호를 모른다. 난 그저 한 달에 4500원을 내고 ‘리슨‘이라는 앱의 ‘디어 유 버블(버블)’을 이용했을 뿐이다.

‘리슨’은 SM엔터테인먼트에서 운영하는 팬 커뮤니티 앱이다. ‘리슨’의 유료서비스인 ‘버블’은 ‘최애와 나만의 프라이빗 메시지’를 표방하며 지난 2월부터 운영됐다. ‘버블’이 도통 웃을 일 없던 나를 펄쩍! 뛰게 했다.

'디어 유 버블'(버블)의 실제 알림 모습
'디어 유 버블'(버블)의 실제 알림 모습 ⓒLEE SO YOON

‘버블’이 뭐길래?  “아이돌과 1:1 ‘카톡’하는 기분” 

‘버블’을 이용하면 SM 소속 아티스트가 직접 작성하는 메시지를 수신할 수 있다. 팬들은 모바일 메신저 형식을 딴 채팅방을 통해 메시지를 받는데, 개인 채팅방이기 때문에 팬과 아티스트가 1:1로 소통하는 느낌을 준다.

‘카톡’처럼 아티스트의 이름을 바꿀 수도, 답장을 보낼 수도 있다. ‘나’의 닉네임도 설정할 수 있다. 내가 닉네임을 설정하면, 아티스트가 보내는 메시지 중 ‘주어’ 부분은 그 닉네임으로 대체된다. 이를테면, “소윤(내가 설정한 닉네임), 밥은 먹었어요?”식으로 메시지가 온다. 마치 나에게만 보낸 ‘카톡’ 같다.  

아티스트는 ‘버블’로 소소한 일과를 알려줄 뿐 아니라, 셀카, 음성 메시지, 동영상 등 다양한 콘텐츠를 보내준다. 어디에도 공개되지 않은 이 ‘콘텐츠’는 오직 해당 아티스트에게 4500원 구독료를 지불한 사람만 받을 수 있다.

모바일 메신저 형식을 따온 실제 '버블' 채팅창 캡처
모바일 메신저 형식을 따온 실제 '버블' 채팅창 캡처 ⓒLEE SO YOON
자신이 구독할 아티스트를 직접 선택할 수 있다. 1인권 4500원, 2인권 8000원, 3인권 11500원으로 많이 구독할 수록 할인이 된다.
자신이 구독할 아티스트를 직접 선택할 수 있다. 1인권 4500원, 2인권 8000원, 3인권 11500원으로 많이 구독할 수록 할인이 된다. ⓒLEE SO YOON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소통’을 유료로 제공하는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쌍방향 소통’을 원하는 팬들의 욕구와 일상을 궁금해하는 팬심을 활용했다.

SM엔터테인먼트뿐 아니다. 그룹 ‘아이즈원’의 소속사 오프더레코드도 지난해 1월 일본 걸그룹 ‘AKB48’의 서비스를 모방해 아티스트의 사소한 일상을 메일로 보내주는 서비스를 출시했다. 이른바 ‘아이즈원 프라이빗 메일’(메일)이다.

‘메일’ 구독료는 한 달에 멤버당 4500원. 멤버 12명을 모두 구독하려면 매달 39000원을 지불해야한다. 

  

팬들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이유 

왜 돈을 내면서까지 이런 메시지를 ‘구독’할까?

‘호기심’에 버블을 구독한 지 51일째라는 해루씨의 말을 들어보자. “좋아하는 아티스트한테서 메시지를 받으면 기분이 어떨지 궁금했어요. 가장 큰 장점은 아티스트의 미공개 사진이나 동영상을 받아볼 수 있다는 거예요” 

엔씨티(NCT) 팬인 해루씨가 이야기하는 ‘버블’의 장점은 명확했다.

“아무래도 아티스트가 자신의 일상을 공유해주고 안부를 물어주니까, 아티스트와의 내적 친밀감을 쌓을 수 있어요. NCT 멤버 ‘도영’은 노래 추천, 노래 연습 영상, 셀카 듀스(경연 프로그램 ‘프로듀스’에서 따온 명칭), 직접 만든 요리 사진 등 다양한 콘텐츠가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어요.”   

아이즈원 프라이빗 메일 홈페이지 캡처
아이즈원 프라이빗 메일 홈페이지 캡처 ⓒIZ*ONE

‘아이즈원 프라이빗 메일’이 출시되자마자 구독을 시작한 ‘wizone’씨 얘기도 들었다. 그가 1년 7개월 동안 받은 메일은 6,000통이 넘는다.

‘wizone’씨에게 ‘메일’은 아이돌이 활동하지 않는 시기에 팬들의 허전함을 달래주는 콘텐츠였다. 다음은 ‘wizone’씨의 설명이다.

“아이돌은 공백기가 생기기 마련이에요. 한국에서 앨범을 내고 음악 방송, 예능 등에 2~3주 동안 출연하다 활동을 종료하면 컴백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죠.

아이돌은 항상 바쁘지만 정작 팬들은 그들이 뭘 하고 있나 모르는 경우가 많고, 이게 허전함의 원인이 되기도 해요. 인스타그램, 트위터, 공식 카페, V앱 등도 있지만 허전한 마음을 채우기엔 부족해요. 

메일은 달라요. 활동기든 공백기든 거의 날마다 오거든요. ‘아, 멤버들이 최소한 어디서 뭘 하고 있구나’ 알게 되니 공백기에도 허전함이 메꿔지는 거 같아요.” 

‘버블’을 이용하는 블로거 A씨는 버블이 기존 SNS와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글을 쓰는 인스타, 트위터와 달리 버블은 컨셉이 ‘프라이빗 메시지’잖아요? 아티스트가 제 이름을 불러주기도 하니 좀 더 특별하게 느껴질 수밖에요!”

 

한 달에 4500원, ‘친밀함’을 돈주고 사다니?

아이돌에 관심 없는 이들은 뜨악한 반응이다. “한 달 구독료가 한 명당 4500원이면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더 먹겠다”, “뭘 그렇게 돈을 쓰냐”는 것이다.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는 팬들도 단점으로 ‘가격’을 꼽았다. 커피 한 잔 값에 ‘최애’의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면 기꺼이 지불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구독료가 부담되는 학생 팬끼리는 구독 멤버에게 받은 메시지나 메일 등을 서로 공유하기도 한다.

매달 지출이 생기는 것이 부담스러워 한 번만 돈을 내면 계속 사용할 수 있는 제도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처음 구독 서비스가 도입된다고 했을 때는 팬들의 여론도 좋지 않았다.

“아이돌 특유의 소비 유도, 소위 ‘덕후들’ 돈 빨아먹기가 아니냐는 반응도 꽤 있었어요. 한 달에 12인 39,000원이 부담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거든요. 그래서 초기에는 ‘한 달 39,000원을 아끼면 나중에는 OLED TV를 살 수 있다’면서 부정적인 여론도 있었어요.”

그러나 ‘wizone’씨는 막상 써보니 ‘4500원’의 가치가 꽤 컸다고 한다.

 “한 달에 39000원을 30일로 나누면 하루에 1300원 정도예요. 하루에 버스나 지하철 한 번, 과자 한 개, 음료수 한 병을 아껴서, 이런 (다양한) 메일을 받을 수 있다면 가격이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들더라고요.”

메시지를 보내는 횟수는 아티스트의 재량으로, 수신된 메시지의 빈도에 따라 가격은 비싸게 느껴지기도 하고 저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버블’ 구독자 A씨는 “제가 구독한 멤버는 사진도 많이 보내주고 메시지도 자주 해주는 편이라 4500원이어도 좋더라고요. 하지만 아무래도 ‘한 달에 몇 번 꼭 보내야한다’ 같은 조항이 없다 보니 구독해놓은 아티스트가 메시지를 적게 보내면 가격이 좀 부담스러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친밀한 소통 위해 ‘답장’ 기능 생겼지만, ‘성희롱’ 등 부작용도

지난 4월 SM엔터테인먼트는 ‘버블’에 답장 기능을 추가했다. 아티스트가 메시지를 보낼 때 팬은 3번 답장할 수 있는 기능이다. 글자 수는 30자로 제한된다. 팬들은 제한된 글자 수 안에서 하고 싶은 말을 가득 채워보낸다. 아티스트가 팬이 보낸 메시지에 개별로 답장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메시지를 모두 읽을 순 있다.  

‘버블’ 이용자들은 ‘답장’ 기능이 악용되지 않도록 더욱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최근 이 기능을 악용한 사례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확산됐다. 그룹 레드벨벳 멤버가 “너무 덥다”는 메시지를 보내자 “더우면 벗어라”, “야한 사진 올려줄 거냐”고 답장하는 등 성희롱 사건이 벌어져 논란에 휩싸였다. 

SM엔터테인먼트 측은 ‘버블’에서 답장을 작성할 때 음란한 부호·문언 및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부호·문언 등을 포함하면, 이용 제재 및 관련 법률에 의해 처벌을 받는다고 공지했다. 

온라인으로 진행된 유료 콘서트 ‘비욘드 라이브’
온라인으로 진행된 유료 콘서트 ‘비욘드 라이브’ ⓒSM 엔터테인먼트

‘구독’서비스, ‘온텍트 콘텐츠’로 나아가다 

‘버블’과 ‘프라이빗 메일’이 인기를 끄는 데는 코로나19 영향도 있다. 코로나19로 아이돌을 직접 만날 수 없다 보니 그들의 일상을 공유하는 ‘버블’과 ‘프라이빗 메일’이 팬들에게는 아주 적절한 ‘온텍트(온라인의 ‘온’과 비대면을 뜻하는 ‘언택트’가 합쳐진 개념)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는 분석이다.  

아이돌 그룹은 보통 팬미팅·팬사인회·공연 같은 대면 행사를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 그러나 올해 초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아이돌과 팬들이 직접 만나는 행사는 전면 취소됐고, 콘서트마저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비대면’ 콘텐츠로 새로운 수익 창출의 장을 열었다. 직접 보지 못하는 만큼 ‘친밀한 소통’에 더 중점을 맞추고, 정보기술(IT)을 접목해 ‘유료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지난 7월 21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개최한 랜선 포럼 ‘코로나19 이후, 콘텐츠를 말하다’에서 CJ ENM 김현수 국장은 언택트(비대면) 시대에서의 생존 전략을 이야기하며 “차별화된 콘셉트와 아이템으로 ‘언택트’만이 가능한 대체 불가능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강조했다. 

지친 현실을 잠시 잊게 해주는 ‘팬심 저격’ 서비스. 성희롱 같은 부작용이나 유료콘텐츠라는 한계를 딛고 “어머, 이건 지불해야 해!”라며 기꺼이 구독할 수 있는 서비스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기대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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