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한글을 떼기도 전에 '입학시험'을 치르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유명 영어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시험을 준비하고, 점수에 따라 합격과 불합격이 갈리거나 수준별 반에 배정되기 때문이다.
유아 사교육에 '4세 고시', '7세 고시'라는 말까지 생겼다. 다음 달부터 취학 전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선발 경쟁에 제동이 걸린다.
레벨 테스트를 받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AI 합성 이미지
정부는 22일 국무회의를 열어 유아를 모집하거나 수준별로 반을 편성하기 위한 시험·평가를 금지하는 내용의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이 심의·의결됐다고 교육부는 밝혔다. 개정 시행령은 다음 달 1일부터 시행된다.
이름만 '레벨 테스트' 아니면 된다? 그것도 금지
이번 규제는 '레벨 테스트'라는 이름의 시험지만 없애는 게 아니다. 필기시험은 물론 구술·실기·면접시험도 금지된다. 외부에서 치른 특정 능력시험의 결과를 제출하도록 한 뒤 이를 입학이나 분반에 활용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핵심은 시험의 '이름'이 아니라 '목적'이다. 아이의 능력을 평가해 학원에서 받을지를 결정하거나, 수준을 서열화해 반을 나누는 것이 목적이라면 금지 대상에 포함된다. 학원과 교습소는 물론 개인과외 교습자에게도 적용된다.
학원에 들어가려고 또 학원을 다녔다
정부가 아예 시험을 금지하고 나선 배경에는 유아 사교육 시장의 기형적인 경쟁이 있다. 원하는 학원에 들어가려면 레벨 테스트를 통과해야 하고, 그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다시 별도의 학원이나 과외를 찾았다. 학교 입학시험도 아닌 '학원 입학시험'을 위해 또 다른 사교육을 받는 셈이다.
숫자로 보면 유아 사교육 시장은 이미 상당한 규모로 커졌다. 교육부와 국가데이터처가 2025년 3월13일 발표한 '2024년 유아 사교육비 시험조사'를 보면, 2024년 7~9월 석 달간 6세 미만 유아의 사교육비 총액은 8154억 원이었다. 사교육에 참여한 유아 1명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33만2천 원이었다.
나이가 올라갈수록 사교육 참여율도 가파르게 높아졌다. 2세 이하는 24.6%였지만 3세는 50.3%, 4세는 68.9%, 5세는 81.2%에 달했다. 5세 유아 10명 중 8명 이상이 사교육을 받은 셈이다.
유아 대상 영어학원도 늘었다. 교육부가 지난 4월1일 발표한 '아동 발달권 보호를 위한 영유아 사교육 대응 방안'을 보면, 전국 유아 대상 영어학원은 2019년 615곳에서 2025년 814곳으로 6년 만에 32% 증가했다. 2024년 기준 유아 대상 반일제 영어학원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154만5천 원에 달했다.
'시험지'보다 문제는 아이들을 줄 세우는 것
정부가 문제 삼은 것은 돈만이 아니다. 교육부는 지난 4월 발표한 '영유아 사교육 대응 방안'에서 시험을 통한 비교·서열화와 장시간 주입식 수업을 문제로 지적했다.
유아기는 인지 능력뿐 아니라 정서와 사회성, 자아개념 등이 형성되는 시기다. 이 시기부터 반복적으로 평가받고 성취 수준에 따라 비교되는 경험이 이어지면 과도한 학습 부담과 스트레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시험은 안 되지만 '진단'은 된다
학원이 아이의 수준을 파악하는 모든 행위가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학원이나 교습소에 등록하거나 개인과외를 시작한 이후, 아이에게 필요한 교육을 파악하기 위한 진단은 가능하다.
단, 시험지를 주고 점수를 매기는 방식은 안 된다. 관찰이나 면담 방식으로 진행해야 하며 보호자의 사전 동의도 받아야 한다.
몰래 시험 보면 최대 300만 원
규정에 어긋나는 '유아 입학시험'을 치르면 이를 실시한 학원설립·운영자나 교습자, 개인과외교습자에게 과태료가 부과된다. 유아를 모집하거나 수준별로 배정하기 위한 시험·평가를 실시하면 1회 적발 시 100만 원, 2회 200만 원, 3회 이상 300만 원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신고포상금 제도도 생긴다. 금지된 모집·분반 시험이나 평가를 실시한 사실을 신고한 사람에게 예산 범위에서 포상금을 지급할 수 있다.
유아 대상 개인과외와 교습소 관리도 강화된다. 다음 달 1일부터 유아도 학원법상 과외교습 대상에 포함된다. 이에 따라 유아를 가르치는 개인과외교습자와 교습소는 관할 교육청에 신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