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다 사람이 직접 할 수 있는, 해야만 하는 일이 점점 없어지고, 사람의 존재 가치마저 떨어질까 두렵기도 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의 손 끝을 필요로 하고 우대하는 곳이 있으니 럭셔리 브랜드다.
럭셔리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요소의 하나는 ‘희소성’이다. 대량생산으로 찍어내는 제품을 고급스럽다고 여기는 소비자는 별로 없다. 특히 하이 주얼리, 하이엔드 워치, 오트 쿠튀르 등의 제작에서 사람의 손은 필수적이다.
리차드 밀의 장인이 정교하게 시계를 조립하는 모습. ⓒ리차드 밀
하이 주얼리는 진귀한 원석을 일일이 세팅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다. 숙련된 장인의 솜씨가 희귀한 원석만큼 중요하다. 어느 브랜드가 얼마나 많은 수의 장인을 보유하고 있는지가 브랜드의 규모와 실력을 증명하는 지표로도 쓰인다.
고급 맞춤복인 오트 쿠튀르도 마찬가지다. 디자이너의 창의력이 극대화된 디자인과 장식을 구현하는 일은 장인의 몫이다. 드레스 전체를 깃털로 장식하거나, 손으로 짠 레이스로 장식한 스커트, 진주 등의 보석을 알알이 박은 재킷 등, 기계로는 완벽하게 실현하지 못할 섬세한 작업이 장인의 손에서 완성된다.
샤넬은 장인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파악하고 파리 근교에 ‘Le 19M’이라는 대규모 공방 단지를 만들어 장인과 공방을 지원하고 있다. 이곳에 깃털, 레이스, 가죽, 신발, 모자 등의 장인 공방이 모여서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특이한 것은 이곳에 모인 장인들이 반드시 샤넬의 것만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샤넬의 대인배 정신은 그만큼 럭셔리 브랜드에 장인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IWC 샤프하우젠에서는 유인 우주 비행에 사용할 수 있는 시계를 소개하고, 리차드 밀은 항공우주 산업에 사용되는 5등급의 티타늄 소재를 사용할 정도로 앞선 기술을 대표하는 하이엔드 워치 분야이지만 이 모든 것을 결합하여 제품화하는 것은 경험이 풍부한 장인들이다.
눈에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의 정교한 몇백 개의 부품을 오차 없이 조합하는 일은 수십 년의 내공을 가진 장인이 아니라면 어려운 작업이다. 하이엔드 시계 산업을 지탱하는 장인에 대한 수요는 꾸준하지만 요즘은 인력난에 시달린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와 소비자들의 우려를 낳고 있다.
AI가 질주하는 시대에도 장인의 역할이 점점 귀해지는 현상은 ‘희소성’과 ‘정성’이라는 럭셔리 브랜드의 본질에 대한 지속적인 열망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