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기업의 보안 책임과 규제 이슈를 넘어 한국의 사법주권과 미국의 통상 논리가 충돌하는 두 나라 사이 현안으로 파괴력을 키우고 있다.
미국 의회에 이어 백악관까지 한국 정부의 쿠팡 조사와 규제를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이라고 공개 비판하자, 한국 정부와 노동·시민사회는 "정당한 법 집행에 대한 내정간섭"이라며 맞섰다. 두 나라의 입장이 전면 충돌하는 양상이다.
쿠팡 사태가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사건의 본질을 떠나 사법주권과 디지털 통상의 갈등으로 확장되며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이다.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과징금 등 법적 제재와 기업 책임 문제를 넘어, 한국의 사법주권을 둘러싼 한미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연합뉴스
백악관은 현지시각으로 2일 한 매체(뉴시스)에 보낸 서면 논평에서 "행정부는 한국 정부의 미국 기술기업에 대한 차별적 표적화에 깊이 우려하고 있다"며 "어떤 합리적 기준으로 보더라도 쿠팡은 이재명 정부에 의해 표적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디지털 서비스에 대한 시장 접근을 제한하는 것을 포함해 불공정 무역 관행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행정부가 쿠팡 문제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쿠팡 문제는 미 의회를 중심으로 제기됐지만, 백악관이 직접 한국 정부를 겨냥해 '차별'을 언급하면서 사안의 파장이 한층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미국 하원 법제사법위원회는 현지시각으로 지난 1일 '경쟁 차단: 한국의 미국 소유 기업에 대한 차별적 공격' 보고서를 통해 한국 정부가 쿠팡 등 미국 기업을 차별적으로 조사·규제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지난해 개인정보 유출 사건 당시 국가정보원과 쿠팡이 230차례 이상 통화했고 개인정보 회수 과정에서 국정원이 개입했다고 주장했으며, 약 6247억원 규모의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과징금도 과도한 제재라고 비판했다.
다만 보고서는 해롤드 로저스 쿠팡 한국법인 임시대표의 증언과 쿠팡 제출 자료를 중심으로 작성됐으며 한국 정부의 반론은 포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한국 정부는 즉각 반박에 나섰다. 국가정보원도 보고서 내용이 허위라며 쿠팡 측에 어떤 지시나 명령, 강요를 한 사실이 없다는 점을 재차 설명했다.
정부 반박에 이어 노동계와 시민사회도 공개 대응에 나섰다. 노동·종교·소상공인·시민단체 등 135개 단체가 참여하는 '안전한 쿠팡 만들기 공동행동'은 3일 서울 미국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 하원 보고서 폐기와 미국의 내정간섭 중단을 촉구했다.
이들은 미국 의회가 쿠팡 측 주장만 반영한 편향된 보고서를 내놨으며, 한국의 개인정보 보호와 기업 규제를 외교·통상 문제로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도 앞선 2일 성명을 내고 미국 하원 보고서를 "쿠팡이 제출한 자료를 그대로 받아 적은 변호 의견서"라고 비판했다.
노조는 "한국 정부가 쿠팡을 조사한 것은 미국 기업이어서가 아니라 개인정보 유출과 증거인멸, 업무방해 등 혐의에 대한 정당한 법 집행"이라며 미국 의회의 문제 제기를 "사법주권 침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