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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새벽길에서 하나의 청춘이 스러졌다. 지난 5일 광주 광산구 월계동에서 집으로 향하던 여고생(17)이 일면식도 없던 24세 남성 장모씨가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었다.

사건 직후 익숙한 말이 다시 등장했다. 그건 바로 '묻지마 범죄'다. 

[허프 생각] 광주 고교생 피살 사건, '묻지마 범죄'는 없다 : 위험 신호가 있었고 막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5월7일 여고생 흉기 살인사건이 발생한 광주 광산구 월계동 추모 현장에서 행정복지센터 직원들이 주변을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는 이제 이 표현이 얼마나 쉽게 사건의 본질을 가려왔는지 직시해야 한다. 묻지마 범죄란 없다. 다만 우리가 이유를 묻지 않았거나 가해자가 사전에 보낸 위험 신호를 사회가 읽어내지 못했을 뿐이다.

가해자 장씨는 경찰 조사에서 "사는 게 재미없었다", "죽을 때 누구라도 데려가려 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언뜻 보면 충동적이고 우발적인 범행처럼 들리지만 실제 범행과정은 치밀했다.

그는 범행 전 흉기 두 자루를 차량에 챙겨 다녔다. 범행 이후에는 피 묻은 옷을 세탁했고, 통신기기를 차단한 채 도보와 택시를 번갈아 이용하며 도주하기도 했다. 누구든 그의 범행 대상에 포착되는 순간, 피해자가 될 수 있었던 사실상 사전에 준비된 계획 범죄였다.

[허프 생각] 광주 고교생 피살 사건, '묻지마 범죄'는 없다 : 위험 신호가 있었고 막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경찰이 5월5일 오전 광주 광산구 월계동 한 도로에서 살인 혐의 등을 받는 20대 피의자 장모씨를 긴급체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위험 징후는 이미 존재했다. 경찰은 장씨가 범행 이틀 전 스토킹 신고를 당한 사실을 확인했다. 피해자는 그의 아르바이트 동료였던 20대 여성이다. 이미 타인을 향한 집착과 위협의 신호가 드러났고, 흉기를 소지한 정황까지 있었다. 이 경고는 결국 참극을 막지 못했다. 사건 이후에야 우리는 가해자의 분노와 고립, 폭력성을 해석하려 든다. 정작 범행 이전에는 누구도 그 위험을 제대로 차단하지 못했으면서 말이다. 

이번 사건은 한 개인의 일탈로만 설명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상동기 범죄'라는 이름 아래 설명되지 않는 분노와 폭력을 묶어두는 순간, 사회는 책임에서 한 발 물러날지도 모른다. 범죄는 갑자기 하늘에서 뚝하고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외면하고 무시한 반복된 폭력 신호, 혐오, 관계단절 등 속에서 서서히 자라난다.

우리 사회는 이미 여러 차례 경고를 받아왔다. 2016년 강남역 사건은 여성 혐오 범죄의 위험성을 각인시켰고, 2023년 신림역과 서현역 피살 사건은 일상의 공간이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냈다. 이번 광주 고교생 피살 사건은 가장 평범해야 할 귀갓길조차 불안의 공간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사건 이후 반복되는 풍경은 씁쓸하다. 경찰의 가해자 신상공개 결정이 14일로 미뤄지자, 온라인에는 가해자로 추정되는 인물의 신상이 급속히 퍼졌다. 잔혹한 범죄의 본질보다 가해자의 외모를 품평하거나 가족사를 들춰내는 반응들이 뒤따랐다.

자극적 이야기에 대한 소비가 반복되는 사이, 정작 우리가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들은 점점 흐려진다. 왜 위험 신호는 사전에 포착되지 못했는가. 왜 스토킹 전력과 흉기 소지 정황은 더 적극적인 대응으로 이어지지 못했는가.

[허프 생각] 광주 고교생 피살 사건, '묻지마 범죄'는 없다 : 위험 신호가 있었고 막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5월6일 오후 광주 광산구 월계동 한 보행자도로에 국화가 놓여 있다. 이곳에서는 전날인 5월4일 깊은 밤 장모(24)씨가 휘두른 흉기에 여고생과 남고생이 찔려 숨지거나 다쳤다. ⓒ연합뉴스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장면도 있다. 사건 현장에서 “살려달라”는 비명을 듣고 망설임 없이 달려간 남학생이다. 그는 범인을 막으려다 흉기에 찔려 다쳤다. 피해자를 끝내 구하지 못했다는 아픔과 거리 한복판에서 직접 범죄를 겪은 공포 속에서 그는 지금도 깊은 고통을 겪고 있다.

[허프 생각] 광주 고교생 피살 사건, '묻지마 범죄'는 없다 : 위험 신호가 있었고 막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광주경신여고 교지편집부 매향은 5월5일 '모든 청춘에 부처 호소합니다'라는 제목의 성명문을 발표했다. ⓒ광주경신여고 교지편집부 매향

사건 이후 광주의 고등학교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릴레이 성명문을 발표하며 분노했다. 이들은 이번 사건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 언제든 우리 자신의 일이 될 수 있는 불안한 현실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심신미약이나 우발적이라는 핑계가 통하지 않도록 법정 최고형을 내려달라는 호소는 엄벌 요구를 넘어선다. 더 이상 누구도 설명되지 않는 폭력 앞에 희생되지 않게 해달라는 강력한 요구였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묻지마’라는 말 뒤에 숨어서는 안 된다. 범죄를 단순한 충동이나 개인의 비정상성으로 치부하는 순간, 사회는 이를 막을 수 없는 비극으로만 여기며 끝내 해답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허프 생각] 광주 고교생 피살 사건, '묻지마 범죄'는 없다 : 위험 신호가 있었고 막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5월7일 여고생 흉기 살인사건이 발생한 광주 광산구 월계동 추모 현장에 걸린 노란 리본에 애도 메시지가 적혀있다. ⓒ연합뉴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범행 이전에 드러나는 미묘한 위험 신호를 포착하고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스토킹과 폭력의 전조를 더욱 민감하게 감지하고, 위험 인물을 조기에 분리하고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언젠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더 이상 이유를 묻지 않아도 되는 안전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이와 별도로, 온라인에서는 피해 고교생한테도 악성 댓글과 지역 혐오가 쏟아졌다. 우리는 지금 타인의 고통마저 혐오와 조롱의 대상으로 소비하는 혐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타인의 생명을 구하려 한 용기 앞에서조차 누군가는 혐오와 조롱을 멈추지 않는다.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는 결국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일 뿐이다. 피해자에게도 돌을 던지는, 삐뚤어진 혐오에 대한 다른 차원의 대책과 고민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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