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 호세인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가 미국과 핵협상을 진행하면서 미국-이란 전쟁에 구체적으로 대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글로벌 공급망에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이란 주변 해역에 긴장감이 감돌면서 세계 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알리 호세인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를 재편집한 것.
23일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외신보도를 종합하면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미국 및 이스라엘의 공습에 대비해 자신의 사망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방어계획을 소수 측근에게 전달하면서 즉각적 의사결정권까지 부여한 것으로 파악된다.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자신의 최측근 알리 라리자니를 최고국가안보회의 수장으로 임명하면서 비상 의사결정체계를 새로 수립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라리자니는 베테랑 정치인이자 전 이란혁명수비대 사령관 출신으로 파악된다. 라리자니는 성직자는 아니어서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후계 지명을 했다기보다는 ‘전시 위기관리자’ 역할을 부여한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스라엘 일간지 예루살렘포스트는 "라리자니는 권력의 핵심이지만, 이란 최고지도자의 자격요건인 고위 시아파 성직자의 지위는 갖추지 못했다"며 "이런 이유로 종교적 자격을 갖춘 하산 로하니 전 대통령이 유력한 최고지도자 후계자로 거론된다"고 바라봤다.
해외 언론과 군사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이란 지도부의 일련의 조치는 미국과 핵협상 타결을 추구하기 보다는 '체제 생존'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신호라고 분석하고 있다.
대니 시트리노위츠 전 이스라엘 국방군(IDF) 이란분석부장은 뉴스위크와 나눈 인터뷰에서 "이란은 미국과 전쟁 가능성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군사시설을 더욱 강화하고 분산하는 작업을 통해 중복성을 높여 특정 시스템이 타격을 받더라도 전체 구조가 작동하도록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란과 미국 사이 갈등이 장기전으로 치달을 경우, 국제유가뿐 아니라 다른 에너지 공급망과 해상운송 비용이 모두 급등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란 주변의 핵심 해역인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석유화물의 약 20%가 운송되는 핵심통로로 하루에 2천만 배럴의 원유가 통과한다. 이란과 미국이 군사적으로 충돌할 경우 이 해역을 활용하던 석유 운반선의 운송에는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우회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국제유가는 오르게 될 공산이 크다. 더구나 카타르는 액화천연가스(LNG)를 하루 100억 입방피트를 수출하고 있는데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전력가격이 연쇄적으로 치솟을 수 있다. 카타르는 호르무즈를 제외하면 우회로를 찾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최근 내놓은 분석보고서에서 "미국이 이란의 유전이나 정제시설을 직접 타격할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길 수 있다"며 "게다가 카타르의 LNG수출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막힐 경우 글로벌 에너지 비용을 크게 높일 수 있어 정책입안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 것이다"고 분석했다.
앞서 이란은 올해 2월 호르무즈에서 실사격 훈련을 단행하면서 해협을 봉쇄한 바 있어 이런 우려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이란의 호르무즈 봉쇄 당시 전쟁위험보험료(war risk premium)가 치솟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미국과 전쟁이 발생할 경우 해상운임도 함께 올라갈 수 있다.
글로벌 해운기구 빔코(BIMCO)의 야코프 라르센 최고안전보안책임자는 아랍에미리트(UAE) 일간지 '더 내셔널'과 나눈 인터뷰에서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시작되면 이란 주변해역을 항행하는 선박들 가운데 일부는 해당 지역에서 발을 빼게 될 것이다"며 "그렇게 되면 수요공급의 역학관계에 따라 운임이 오르게 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해운선사들은 아라비아 만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프리카 희망봉을 우회할 경우 운임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취지로 읽힌다. 결국 미국과 이란의 전쟁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중동을 경유하는 에너지 및 원자재에 의존하는 아시아 제조업 공급망도 직격탄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