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당뇨병이 적은 이유가 밝혀졌다. ‘저산소’라는 특이 환경에서 포도당이 빠르게 소모되는 이유와 경로가 미국 연구진에 의해 구체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산소가 적은 환경에선 혈액 속의 적혈구가 '포도당 흡착기'로 돌변해 최대 3배까지 혈당 흡수력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다.
정상 산소 상태(Normoxia)와 저산소 상태(Hypoxia)의 적혈구 비교저산소 환경에 놓인 생쥐는 적혈구 수가 유의미하게 증가하고, 각 적혈구가 정상 산소 환경에서 형성된 적혈구보다 더 많은 포도당을 흡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Cell Metabolism, Isha H. Jain et al.
22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SCF)·글래드스턴 연구소 이샤 H.자인 교수팀은 과학 저널 셀 메타볼리즘(Cell Metabolism)에 실린 생쥐 모델 실험을 통해 저산소 환경에서 적혈구가 혈류 속 포도당을 빠르게 흡수하는 현상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산소가 적은 환경에서 적혈구가 '포도당 스펀지'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고지대에 사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당뇨병에 적게 걸릴 가능성이 실험으로 확인된 것이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 결과를 활용해 새로운 당뇨병 치료법이 개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연구팀은 저산소 상태에 놓인 생쥐의 신진대사에 주목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적혈구가 혈류에서 포도당을 흡수하도록 대사 전환이 일어난 점이었다.
고지대의 적혈구는 정상적인 산소 환경에서 만들어진 적혈구보다 더 많은 포도당을 흡수해 포도당 흡수력이 약 3배 높아졌다. 연구팀은 이런 변화가 조직 전반에 산소를 더 효율적으로 전달하고 혈당을 안정화하는 효과를 냈다고 말했다.
연구에 따르면, 저산소 상태에 진입하기만 해도 생쥐의 포도당 내성이 급격하게 개선된다. 또 그 효과가 정상적인 산소 환경으로 돌아간 뒤에도 수주간 지속된다. 저산소 환경 속 생쥐의 절대적인 적혈구 수도 유의미하게 증가했다고 연구진은 덧붙였다.
이 현상의 메커니즘도 밝혀졌다. 산소가 부족해지면 적혈구가 포도당을 사용해 신체 조직에 산소 공급을 돕는 분자를 생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 메커니즘을 당뇨병 치료에 활용할 수 있을지 실험해봤다. 그 과정에서 저산소 상태를 모사하는 약물 하이폭시스탯(HypoxyStat)을 당뇨병 생쥐 모델에 투여한 결과, 고혈당이 완전히 정상화됐다. 효과가 기존 약물보다 더 우수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자인 교수는 “이 연구는 하이폭시스탯을 미토콘드리아 질환 외의 분야에 적용한 최초 사례 중 하나”라며 “이 연구는 적혈구를 포도당 흡수원으로 활용함으로써 당뇨병 치료를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체내 혈중 산소 농도가 낮은 저산소 상태(hypoxia)가 건강과 대사에 미치는 영향을 수년간 연구해왔다.
산소 농도가 낮은 고지대에 사는 사람들이 해수면 근처 등 저지대에 사는 사람들보다 당뇨병에 적게 걸린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원인은 수수께끼였다.
연구팀은 이전 연구에서 저산소 지대의 공기를 들이마신 생쥐의 혈당 수치가 정상보다 크게 낮아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영상 기법을 사용해 포도당이 어디로 가는지 추적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하지만 주요 장기들이 포도당을 흡수하는 정도로는 포도당이 빠르게 소모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이후 ‘깜깜이 흡수원’이 적혈구라는 가설을 세우고 저산소 환경 속 생쥐를 이용해 다양한 실험을 했다.
자인 교수는 “산소 변화에 대해 인체 전체가 어떻게 적응하는지, 그리고 이런 기전을 다양한 질환 치료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