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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새해 벽두부터 여의도 증권가가 '발행어음 오픈런'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키움증권과 하나증권, 신한투자증권 등 후발 주자들이 내놓은 특판 상품이 연일 '완판 행진'을 기록하며 시중 유동성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증권사 가운데 자기자본 기준 상위권을 다투는 삼성증권과 메리츠증권은 금융당국의 문턱을 넘지 못해 이 화려한 '돈 잔치'의 구경꾼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박종문 삼성증권 대표이사 사장(왼쪽)과 김종민 메리츠증권 각자대표이사(IB부문) 사장. 
박종문 삼성증권 대표이사 사장(왼쪽)과 김종민 메리츠증권 각자대표이사(IB부문) 사장.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발행어음 시장이 기존 4개 회사(미래에셋·한국투자·NH투자·KB) 체제에서 3개 회사(키움, 하나, 신한투자증권)가 추가되면서 시장의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 

◆ 키움·하나·신한투자증권의 파죽지세, 유동성 블랙홀 된 발행어음

발행어음 사업의 후발 주자로 나선 증권사들의 기세가 매섭다. 가장 먼저 포문을 연 키움증권은 지난해 말 출시한 '키움 발행어음' 3천억 원어치를 출시 1주일 만에 완판시켰다.

하나증권 역시 올해 1월9일 첫 번째 발행어음 상품(3천억 원 규모)을 출시 1주일만에 완판시키고 연간 2조 원 발행을 목표로 공격적 확장에 나섰으며, 가장 늦게 합류한 신한투자증권도 출시 1.5일 만에 500억 원 규모의 특판 상품을 완판시켰다.

은행 예·적금 금리가 정체된 상황에서 연 3~4%대의 수익률과 수시입출금이라는 장점이 부각되면서 고객들의 자금이 은행에서 발행어음으로 대거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증권사는 발행어음을 통해 확보한 수조 원 단위의 자금(실탄)을 바탕으로 기업금융(IB) 등 고수익 사업에 투자하며 수익성을 극대화할 채비를 마쳤다. 특히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모험자본 공급’에의 의지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 자본은 충분한데 '신뢰'가 발목, 기약 없는 삼성증권과 메리츠증권

경쟁사들이 축포를 터뜨리는 동안 삼성증권과 메리츠증권은 속만 태우고 있다.

삼성증권은 7조6천억 원에 이르는 막강한 자기자본을 보유한 곳이다. 발행어음 사업 인가를 위한 외형적 요건은 이미 오래 전에 충족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제재 리스크가 발목을 잡았다.

금융감독원은 2025년 4월 삼성증권의 거점점포 VIP 불건전 영업에 대한 검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PB들의 증빙서류 관리 소홀과 불완전 판매 정황 등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제재 수위다. 금융위원회 의결에서 기관경고가 확정되면 1년 동안 금융당국의 인가가 필요한 신사업에 진출할 수 없다. 삼성증권의 발행어음 사업 인가가 계속 지연되고 있는 이유다.

메리츠증권의 상황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메리츠증권은 2025년 7월 발행어음 인가를 신청했지만, 최종 승인 도장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화전기·이화그룹 사태 등 잇따른 사법 리스크가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메리츠증권 임직원들이 미공개 중요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사들여 시세차익을 얻었다는 의혹과 관련해 본사를 압수수색하는 등 강도 높은 수사를 이어가고 있기도 하다.

금융당국이 '시장 신뢰'와 '자본시장 질서 확립'을 최우선 기조로 내세우고 있는 만큼, 사법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되기 전까지는 인가를 내주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금융당국의 입장이 제재는 엄정하게 하되 발행어음 사업 등 인가와 관련해서는 유연하게 대처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은 위안거리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해 9월 발행어음 인가를 신청한 증권사들의 내부통제 이슈 및 사법리스크 등을 고려해 발행어음 심사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금융위원회에 보고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제재는 엄정하게 하되 발행어음 인가는 정책적으로 넓게 판단할 수 있다”며 “(9월 보고는) 원칙에 대한 것이지 발행어음 정책에 차질을 빚으려는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 계속 지나가는 발행어음 '골든 타임'

업계에서는 인가 지연이 단순한 매출 손실을 넘어 구조적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핵심은 조달 비용과 발행 규모다.

발행어음 인가를 받은 7개 증권사는 자체 신용을 바탕으로 연 3~4%대의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해 수익률 6~8% 이상의 IB 프로젝트에 투자할 수 있다. 반면 인가를 받지 못한 삼성증권과 메리츠증권은 회사채나 기업어음(CP) 등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시장성 자금 조달에 의존해야 한다. 

같은 프로젝트에 투자하더라도 조달 비용이 높아 마진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발행어음사업의 발행 규모 역시 압도적이다. 발행어음은 자기자본의 2배까지 발행할 수 있다. 적게는 수 조 원에서 많게는 수십조 원 규모의 저리 조달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2025년 12월 기준 국내 발행어음 시장의 조달 규모는 50조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발행어음 사업의 ‘흥행’이 언제까지 갈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

현재 발행어음으로 유입되는 자금의 상당수는 은행 예금에 머물던 유동성이다. 금리 인하 사이클과 증시 호황 속에서, 투자자들이 은행 예금보다 높은 약정 수익을 제공하면서도 유동성이 확보되는 발행어음으로 이동한 '머니무브'의 결과다.

그러나 이러한 기조가 상시적일 수는 없다. 향후 정부의 정책전환으로 시중 유동성이 줄어들거나, 은행 금리가 발행어음 수익률을 추격한다면 자금 유입은 급격히 둔화될 수밖에 없다. 은행들이 소위 ‘예대마진’으로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발행어음의 흥행으로 머니무브가 계속 이어진다면 은행들이 예금 이자율 인상을 검토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기도 하다. 

발행어음 인가를 받은 증권사 사이의 경쟁, 여기에 예금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은행과 경쟁까지 심화된다면 발행어음의 조달 난이도가 높아지면서 조달 규모는 줄어들고, 조달 비용은 높아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인가 지연의 페널티는 단순히 조달 규모의 격차에 그치지 않는다. 조달 이후의 '운용 리스크'가 더 큰 문제다.

현행법상 조달 자금의 50% 이상을 기업금융에, 10% 이상을 모험자본에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 우량 기업투자처가 한정된 상황에서 후발 주자들은 자칫 자산 건전성이 낮은 기업이나 고위험 프로젝트에 자금을 집행해야 하는 '역선택'의 기로에 설 수 있다.

결국 골든타임을 놓친 증권사는 선점효과를 빼앗겨 자금 조달 비용이 높아질 수 있고, 이렇게 모은 자금을 위험한 곳에 투자해야 하는 이중고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미 7개 회사가 시장을 선점해 자금을 쓸어 담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과 메리츠가 뒤늦게 인가를 받더라도 가져갈 수 있는 파이의 크기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라며 “시장이 고착화되기 전에 최대한 선점효과를 누리기 위한 ‘골든 타임’이 흘러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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