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가 전기자동차 시장 업황 악화에 따른 실적 부진에도 시장에서 꾸준한 관심을 이어가고 있다. 삼성SDI의 기업가치가 여전하다고 평가받는 데는 최주선 대표이사 사장이 핵심으로 꼽는 ‘기술 경쟁력’이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최 사장은 단기적으로는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배터리를 앞세우는 한편 중장기적으로는 ‘꿈의 배터리’로 여겨지는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주선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 ⓒ삼성SDI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삼성SDI가 장중 52주 신고가인 38만5500원을 기록하는 등 38만45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직전 거래일보다 무려 18.67%(6만500원) 급등한 것이다.
전날에는 삼성SDI뿐 아니라 이차전지 관련 주식들도 일제히 주가 상승 대열에 합류했다. 다만 다른 관련주가 주로 5% 안팎에서 주가 상승이 이뤄진 반면 삼성SDI의 오름폭이 훨씬 컸다.
시장에서는 이차전지 주식이 급등한 이유를 로봇 산업의 장밋빛 전망에 따른 기대감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삼성SDI가 로봇 산업과 함께 성장할 구체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주가에 대폭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로봇이 제조기업 공장을 누비는 ‘피지컬 AI’ 시대가 가까워지면서 인공지능(AI)이라는 로봇의 ‘뇌’뿐 아니라 동력이 될 ‘엔진’인 배터리를 향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특히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인 CES 2026에서 현대자동차그룹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전 세계적 주목을 받은 가운데 삼성SDI는 이미 현대차그룹의 로봇과 접점을 구축한 상황이다.
삼성SDI는 지난해 2월부터 현대차·기아와 함께 로봇에 최적화하고 에너지 밀도를 개선한 전용 고성능 배터리 개발에서 협력하고 있다. 아직 구조가 복잡하고 비정형적인 로봇에는 아직 전용 배터리가 부재해 원하는 출력을 내지 못하는 한계를 안고 있다. 삼성SDI는 현대차그룹과 이런 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로봇 전용 배터리의 대표 모델을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삼성SDI는 올해 들어 코스피 전반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승 랠리, 전날 로봇과 연계된 기대감을 제외하더라도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최근 1년 동안 삼성SDI 주가 흐름을 보면 종가 기준으로 지난해 11월 초 33만4500원 고점에서 업계의 우려가 커진 연말 27만 원으로 하락 폭을 방어했다. 지난해 연말 인공지능(AI), 및 반도체, 방산 등과 비교되면 전기차 및 배터리 업계의 수요 부진 우려가 극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전기자동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현상이 ‘일시적’을 넘어서면서 삼성SDI는 이익창출력이 크게 저하했는데 이를 고려하면 더 주가 방어가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SDI는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12조9095억 원, 영업손실 1조7272억 원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매출도 22% 하락한 것이지만 영업손실의 폭이 직전 2년 영업이익 합(1조9088억 원)에 육박하는 수치다.
올해도 유럽과 미국 등 주요 전기차 시장의 지지부진한 성장에 맞물려 흑자전환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현재 삼성SDI의 올해 연결기준 영업손실 전망치는 2862억 원이다. 영업손실 규모는 1조5천억 원가량 줄이지만 여전히 적자는 유지되는 것이다.
삼성SDI가 부진한 실적에도 시장의 꾸준한 관심을 받는 이유로는 단연 기술력에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SDI는 전기차 시장이 본격적으로 개화한 2020년대 초반 경쟁업체들이 공격적으로 설비투자에 나설 때에도 상대적으로 보수적 외형성장 기조를 보여왔다. 당시에도 안전성 측면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 각형배터리 중심 기술 고도화와 차세대 배터리 개발에 공을 들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부터 삼성SDI를 이끄는 최주선 대표이사 사장의 존재도 기술력이 한층 강화할 것이란 기대 요소로 여겨진다. 엔지니어 출신으로 그룹의 주요 계열사를 두루 거친 기술전문가로 평가된다.
최 사장은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나와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에서 전자공학 석사·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을 거쳐 2004년부터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에서 D램설계팀장, D램개발실장, DS부문 미주총괄 등을 지낸 뒤 삼성SDI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삼성디스플레이에서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최 사장은 올해도 ‘삼성만의 초격차’ 기술력을 가장 중요한 지향점으로 내세웠다. 최 사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우리가 맞닥뜨린 상황은 간단치 않지만 기술 경쟁력을 갖추고 나아간다면 긍정적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술이 희망’이라는 신념을 갖고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사장의 시선은 전기차 캐즘에 대응하는 ESS용 배터리 확장과 차세대 제품으로 꼽히는 전고체 배터리에 가 있고 이 두 분야에서도 기술력을 핵심 경쟁력을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삼성SDI는 안전성을 최우선에 둔 ESS용 배터리를 강점으로 하고 있다.
삼성SDI는 기본적으로 내구성이 뛰어난 각형 배터리 폼팩터에 자체적으로 개발한 열확산방지(No TP) 및 함침식소화기술(EDI)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삼성SDI의 No TP는 특정 배터리 셀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인접 셀로 열이 전파하는 것을 방지하는 독자 기술이다. 열전파 예측 프로그램을 활용해 셀과 셀 사이에 최적의 안전 소재를 채택하고 동시에 지정된 경로로 가스를 배출하는 구조(가스방출구)로 이뤄진 것이다.
EDI도 삼성SDI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기술이다. 열폭주가 발생하면 배터리 모듈 안에서 소화 약제를 직접 분사해 열 확산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No TP와 EDI 등 안전성을 높일 수 있는 기술은 삼성SDI가 지난해까지 대한민국 기술대상에서 ESS용 배터리를 앞세워 2년 연속 수상한 배경이 됐다.
최 사장은 ESS용 배터리 기술력을 앞세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제2차 ESS 중앙계약시장 입찰 경쟁에서도 긍정적 결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앞서 1차 ESS 중앙계약시장 입찰에서 삼성SDI가 경쟁업체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보다 비싼 삼원계(NCA) 제품을 제안하고도 76%라는 높은 채택률을 보인 데는 국내 생산이라는 장점과 함께 안전성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게다가 2차 입찰은 안전성 평가 비중이 더욱 높아지기도 했다.
전고체 배터리는 삼성SDI의 기술력을 한층 더 상징적으로 보여줄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고체 배터리는 기존 리튬이온 제품에 사용하는 액체 전해질 대신에 고체 전해질을 사용하는 것으로 아직까지 상용화가 이뤄지지 못한 ‘꿈의 배터리’로 불린다. 가연성 액체 성격의 유기 용매로 이뤄진 액체 전해질이 사라지고 고체 전해질로 구성된다. ‘탈 수 있는 연료’가 사라진 셈으로 안전성이 획기적으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높은 에너지밀도 구현이 가능해 전기차에 탑재하면 동일한 용량의 리튬이온배터리보다 가벼우면서 주행거리를 크게 늘릴 수 있다.
'No TP'는 특정 배터리 셀(Cell)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인접 셀로 열이 전파되는 것을 방지하는 기술이다. 독자 개발한 열전파 예측 프로그램을 활용해 셀과 셀 사이에 최적의 안전 소재를 선정하는 동시에 지정된 경로로 가스를 배출시키는 가스방출구 벤트(Vent)를 설계해 안전성을 극대화했다.
삼성SDI는 2023년 국내 기업 최초로 전고체 배터리 시험(파일럿) 설비를 구축한데 이어 가장 이른 2027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에너지 밀도가 기존 제품보다 40% 이상 높은 리터당 900Wh(와트시) 목표로 용량을 늘리고 있으며 지난해 10월 BMW와 실증에 나서는 등 여러 고객사에 샘플을 공급하고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SDI의 기술력 확보 노력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삼성SDI의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은 2023년 5.0%, 2024년 7.8%에서 지난해 3분기 누적 11.7%까지 확대됐다. 이익창출력이 저하된 상황에서도 연구개발비중을 꾸준히 높여오는 셈이다.
삼성SDI 관계자는 “셀 대형화를 통해 매년 용량을 증가해 왔고 제조기술과 공급망 수립 등으로 전고체 배터리 양산을 위한 과제들을 해결하고 있다”며 “전기차뿐 아니라 높은 에너지밀도를 요구하는 로봇 등 신규 시장에서도 전고체 배터리를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돼 양산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