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없는 방식의 앤솔로지이다. 창작 전문 교육기관 수강생의 습작 가운데 우수 작품을 선발해 1:1 코칭 강습비와 함께 단행본 기회를 줬다. 강호의 ‘합평 낭인’들―알고 보니 고수인―에게 출간행 특별 열차를 편성했달까. 소설 셋, 시 셋, 이름하여 ‘셋셋 2024’이다. 지난해 하반기 기획으로 이 가운데 한 명이 2024년 신춘문예 등단했다. 하지만 이 성적보다 중요한 건, 강사로 참여한 하성란 작가의 말마따나 배우는 자도 가르치는 자도 “계속 쓰겠다는 각오를 매일 할 수 있었다”는 사실, 무엇보다 “읽고 쓰는 일. 이 단순함이 우리를 바꾼다”는 사실 아닐까.
책 '셋셋 2024'. ⓒ한겨레 출판
송지영의 ‘마땅하고 옳은 일’은 요양보호사 강선숙의 대사에서 나온 제목이다. 유명 식당을 운영하다 섬망을 앓는 최 노인, 예의 바른 그의 며느리는 선숙이 돌보았던 파킨슨병 엄마와 “지속적으로 상하면서도 끊어지지 않는 그 끈질긴 목숨을 섬뜩”해했던 자신을 상기시킨다. 급기야 코로나 감염을 ‘기도’하며 엄마 앞에서 마스크를 벗었던 선숙. 돌봄의 이면에서 배태되는 죄질과 죄의식을 긴장감 있게 상징화한 작품.
그밖에 글쓰기로의 도피와 구원을 살핀 ‘재채기’(성수진), 어근버근 그러나 등지지 않는 연인 사이를 풍경화 속 인물들마냥 여럿 감췄다 풀어내는 ‘기다리는 마음’(정회웅)이 소설 쪽을 채운다. 하 작가와 함께 김현영·서유미 소설가가 가르치고 평가했다.
수업듣는 수강생들.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시 3편씩 전체 9편을 상재한 이들은 이열매, 이지혜, 황해담씨다. 김기리·김근·김선오 시인이 강사이자 평가자였다. 여기서도 시를, 글을, 길을 멈추지 않는 마음의 자락들이 있다. “관둬야 할까 봐/ 내가 말하자/ 너는 답장을 보내왔다/ 수목원에 가보라고/ 길을 만들며 내려가는 너의 메시지//…// 사람 없는 극장에서/ 영화제는 없고/ 이제 다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났다/ 끝난 줄 모르게/ 포스터를 계속 붙여두었다고//…// 끝나가는 시간을 기록한 영화는 끝나지 않는다고 해//…” “무언가 실패한 자리에서 시작된다”(김근)고 설명된 이지혜씨의 시 ‘날짜를 떼어내 모퉁이에 심었다’ 일부다. 이 작품을 아울러 긴 호흡의 시를 특징으로 하는 이씨는 202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등단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여기 작품들을 ‘날것’이라 부르면 될까. 안 될 일이다, 대신 ‘만날 것’이라 이르면 어떨까. 작가 박상영, 장류진, 천선란, 김현, 정대건, 김기태 등이 이 기관을 수강생으로 다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