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사건이 영화로 제작됐다는 것은 그만한 드라마가 보증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고 기사를 작성하는 입장에서 진부한 표현을 쓰고 싶진 않지만, <리바운드>를 감상하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가 맞구나’ 였다. 그 정도로 전개는 극적이고, 각 인물에 대한 서사 또한 넘쳐 흐른다. 그래서 설득하고 싶다. ‘스포츠 영화에 흔히 나오는 진부한 전개’일 거라며 영화에 별 기대를 걸지 않는 예비 관객들에게, 영화를 보고 나면 그 누구도 고등학생 선수들과 새내기 코치의 뜨거웠던 시절을 ‘이미 차고 넘치는 이야기’라는 말로 폄하할 수 없을 거라고.
영화 ‘리바운드’ 스틸컷. ⓒ(주)바른손이앤에이
<슬램덩크> 얘기를 꺼낼 수밖에 없겠다. 물론 농구부 고등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 그리고 <리바운드>가 지난 1월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배턴을 이어받는다는 점에서(<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아이맥스 개봉일은 4월 5일로 <리바운드> 개봉일과 겹치기도 한다) 두 영화의 공통점과 대치점은 이미 선명하다. 하지만 <리바운드>를 보고 <슬램덩크>가 떠올랐던 건 앞선 이유가 아닌, 지난 달 만난 선배가 전한 감상 때문이다. “겨우 고등학생밖에 안 된 애들이 국제 대회처럼 큰 경기도 아닌데 모든 걸 걸고 최선을 다한 다는 게 멋지잖아.” <리바운드> 속 인물들을 보고 불현듯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그들이 보낸 전국중·고교농구대회에서의 8일은 서로의 ‘영광의 시대’를 스스로 만들어냈기에 더욱 뜨거웠다.
영화 ‘리바운드’ 스틸컷. ⓒ(주)바른손이앤에이
‘리바운드’란 ‘슈팅한 볼이 골인되지 않고 튕겨 나오는 일’을 뜻한다. 튕겨 나온 공을 잡는 쪽이 공격하던 측이라면 팀에게 다시 공격할 기회가, 수비 측이라면 역습할 기회가 생긴다는 점에서 리바운드는 누구에게나 다시 생긴 찬스인 셈. 농구선수 출신 공익근무요원 코치 강양현(안재홍)부터 발목 부상으로 농구의 꿈을 접은 규혁(정진운), 촉망받는 선수였지만 키가 자라지 않아 슬럼프에 빠진 기범(이신영) 등, 실화 기반의 영화가 아니었다면 미리 제목을 정하고 줄거리를 짰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리바운드> 속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다시 한 번 힘차게 도약한다.
선수는 단 6명, 그마저도 쇄골 부상으로 경기 출전을 못 하게 된 진욱(안지호)대신 투입된 재윤(김민)은 본선 경험도 없고 실력도 부족한 ‘깍두기’로, 교체선수 없이 5명이 전 경기를 소화해야 했던 상황이다. 상대 팀엔 수십 명의 선수들이 체력을 분배해가며 전략적으로 싸우는데,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최약체 팀이 과연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까?
영화 ‘리바운드’ 스틸컷. ⓒ(주)바른손이앤에이
영화 ‘리바운드’ 스틸컷. ⓒ(주)바른손이앤에이
영화 ‘리바운드’ 스틸컷. ⓒ(주)바른손이앤에이
물론 초반 전개가 다소 진부할 수 있지만 장항준 감독은 특유의 위트와 감각으로 관객도 모르는 사이 작품에 몰입하게 한다. ‘매운 맛’을 넘어 ‘마라 맛’이라고 일컫는 자극적인 설정이 범람하는 콘텐츠 시장 속, 장항준은 MSG 대신 정통 휴머니즘을 택했다. 그렇다고 억지로 눈물샘을 자극하지도 않는다. 그저 선수와 관중들의 시선을 담백하게 따라갈 뿐. 관객에게 카타르시스와 희열을 주는 것은 짜인 각본이 아닌 서툴지만 뜨거운 선수들의 진심 그 자체였고, 장항준은 이를 전달하는데 성공했다.
영화 ‘리바운드’ 스틸컷. ⓒ(주)바른손이앤에이
영화 ‘리바운드’ 스틸컷. ⓒ(주)바른손이앤에이
마지막 경기의 하프타임, 강양현 코치는 지친 선수들을 다그치거나 ‘할 수 있다’는 허울만 좋은 구시대적 말로 위로하는 대신 “농구는 끝나도 인생은 계속된다”는 말을 건넨다. 그래, 농구는 끝나도 인생은 계속된다. 이 경기가 끝나고 농구 대신 다른 진로를 택해도 늦지 않은 18, 19살이다. 먼 훗날 돌아봤을 때 ‘그 땐 그랬지’라며 가볍게 회상하고 넘어갈 수도 있을 텐데 패배가 예견된, 몸까지 망가질 수 있는 상황에서 왜 저렇게 열심이지?
장항준 감독은 대사나 장면 대신 BGM으로 그 답을 대신한다. 다음은 마지막 경기 후반전 입장 장면에 삽입된 펀(FUN.)의 ‘위 아 영(We are Young)’ 가사 중 일부다.
“오늘 밤, 우린 젊잖아/ 그러니 이 세상에 불을 지펴보자/ 우린 태양보다 더 밝게 빛날 수 있어(Tonight, We are young/ So let's set the world on fire/ We can burn brighter than the sun)”
“만약 네가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들면/ 내가 오늘 밤 집에 데려다 줄게(So if by the time the bar closes/ and you feel like falling down/ I'll carry you home tonight)”
영화 ‘리바운드’ 스틸컷. ⓒ(주)바른손이앤에이
영화 ‘리바운드’ 스틸컷. ⓒ(주)바른손이앤에이
어려서, 아무리 실패가 예견되었다고 해도 겁내지 않고 도전했던 시절은 누구에게나 있었다. 그 옆엔 같은 꿈을 꾸는 친구와 동료들이 있어 가능했다. 열정, 젊음, 꿈. 진부한 말이라지만 이 단어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그대로 모두의 마음을 관통한다. 아무리 상처투성이 뿐이었던 시절이라 할지라도 맞잡은 손에 가슴은 뛰었다. 농구를 전혀 모른다 해도 <리바운드>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이유다.
영화 ‘리바운드’ 스틸컷. ⓒ(주)바른손이앤에이
*장항준 감독은 극중 인물들에 실제 선수들의 이름을 사용했다. 영화의 말미엔 농구가 끝나고 계속해서 인생을 살아간 일곱 인물들의 이야기가 짧게 나온다. 강양현은 현재 3X3 남자농구 국가대표팀과 조선대학교 농구부의 감독을 맡고 있다. 발목 부상으로 농구의 꿈을 이어나가지 못한 배규혁과 허재윤을 제외한 천기범, 홍순규, 정진욱, 정강호는 각각 프로 선수로 데뷔했으나 현재 천기범을 제외하고 모두 은퇴했다.
영화에서 배규혁과 함께 메인 플레이어 역할을 했던 천기범은 영화가 한창 제작중이던 2022년 음주운전으로 소속팀 KBL에 징계를 받으며 국내 리그에서 은퇴, 현재 일본 B2리그 후쿠시마 파이어본즈에서 활동 중이다.
장항준 감독은 <리바운드> 개봉을 앞두고 매체들과의 인터뷰에서 "(음주운전 징계 등을 접하고) 당시 작품을 준비하던 스태프들이 '멘붕'이 왔던 것은 사실이나, 모든 영화가 그 한 편을 만드는 과정에서 수많은 위기들을 거친다. 그걸 오랜 시간 지켜봐오며 정신적인 맷집이 생겼고, 그래서 계속 꿋꿋이 준비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마음을 다 잡을 수 있었던 건 <리바운드>에서는 누구 한 명이 주인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리바운드>는 한때 선수였으나 농구를 포기한 25살 청년이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6명의 소년과 꿈을 향해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라고 판단했다." 장 감독은 이렇게 덧붙였다.
끝으로 2012년 대한농구협회장기에 출전한 부산중앙고 선수들의 이야기가 실린 당시 기사를 첨부한다. *경기 결과에 대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영화 감상 후 읽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