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일공이자 타일 강사로 활발하게 일하고 있는 이서희(38) 씨는 중학생 때부터 26살까지 10년 동안 '마샬아츠'라는 종목에서 활동한 운동선수였다. 잦은 부상 등의 이유로 오랜 기간 이어온 운동을 그만둔 그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우연히 타일 일로도 돈 벌 수 있단 사실을 깨닫는다. 이를 인지한 순간 이 씨는 지체 없이 타일공 업계에 뛰어들었다.
어느덧 8년 차 타일공이 된 그는 현재까지도 일주일에 몇 번이고 시공하러 현장에 나선다. 최근 호주 타일(호주에서의 타일 시공 방식, 환경, 작업 순서 등을 포괄한 용어) 강의까지 전담하며 더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 씨는 허프포스트코리아와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60살까지 타일공으로 일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타일공 이서희 씨. ⓒ이서희 씨 제공
이서희 씨가 처음 타일 일을 시작한 건 한국이 아닌 호주에서다. 운동을 접은 뒤 좌절감을 느낀 그는 '운동보다 힘든 일을 찾으면 다시 운동한다'라는 생각으로 업무 강도가 높다고 소문난 일(물류 센터 등)을 찾아다녔다. 이 시기에 그가 경험한 직업군은 무려 20가지 정도. "정신 차려보니 이것저것 많이 해 본 인생이 되어있더라"고 밝힌 이 씨는 또 한 번 새로운 도약을 위해 유학원을 등록, 30살이 되던 해인 2015년 호주로 워홀을 떠난다.
호주에서의 첫 현장. ⓒ이서희 씨 제공
호기롭게 떠난 호주에서 그는 당혹스러운 사건을 겪었다. 취업 날짜가 다가오던 시점 담당자가 갑자기 잠적한 것. 설상가상으로 자금까지 바닥난 이 씨는 길을 걷다 보도블록을 깔고 있던 타일공 두 명을 보게 된다. '아, 저거 돈 되나 보다'라는 생각으로 무작정 호주 건설 현장으로 찾아간 그는 '여자는 안 쓴다'는 이유로 3번 거절당한 끝에 4번째로 찾아간 일터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2019년, 4년간의 호주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 씨는 '그래도 취업은 할 수 있던' 호주 현장과는 달리 여성 타일공에게 일자리 자체를 주지 않는 현실적 문제에 직면했다. 이미 4년 차 타일공이던 이 씨는 일하기 위해 '다시 보조부터 시작하겠다'는 조건도 내걸어보지만, 그마저도 외면당했다. 결국 그는 스스로 사업장을 내 타일공으로 일하는 방법을 택하게 된다.
기사와 무관한 자료 사진 ⓒ언스플래시
이 씨는 여성 기술자들이 넘어야 하는 차별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들려주었다. "일단 현장에서 여성 타일공은 안 써준다. 쓰더라도 '여자니까 임금을 낮게 쳐주자'라고 생각하는 게 다반사다. 같이 일하는 기술자들도 여성 타일공을 달가워하지 않는데, 여자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오늘 힘든 일은 다 내 담당'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타일공 일은 건강한 남성도 못 버틸 정도로 정말 힘들다. 타일공 일을 하려면 체력과 근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여성의 경우 엄청난 노력을 들여도 겨우 남성 타일공과 '동일선상' 정도에 설 수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세라믹 타일 8장(한 묶음)의 무게는 25kg이고 어떤 건 37kg에 육박하기도 한다. 이토록 무거운 타일을 매일 같이 들 수 있는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 씨는 일을 끝낸 저녁 시간에 근력 운동을 따로 하고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묵직한 타일 무게를 알고 나니 그가 타일공으로서 얼마나 간절한 시간을 보내왔는지 뼛속 깊이 와닿았다. 몸이 빠르게 닳는 일임에도 그가 계속 타일 업계에 머무는 이유는 이 일에 재미를 느끼기 때문. 그는 "물론 굉장히 힘들지만 시간과 정성을 쏟아 공들인 만큼 결과물이 나온다는 사실이 좋다"며 "운동은 공을 들이고 열심히 한다고 해서 모두가 국가대표가 되고 성공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현장에서의 모습. ⓒ이서희 씨
그가 기술직에 종사하는 이유는 재미 말고도 또 있다. 8년을 꽉 채워 경력을 쌓은 이 씨는 최근 들어 '이제 좀 자리 잡았다'는 생각을 한다고. 그는 "일당은 30만 원 정도다. 호주에 있을 땐 한 달에 이틀 쉬고 28일 정도 일했는데 요즘은 (몸을 생각해서라도) 그렇게 안 한다"고 임금에 대해 언급했다. 사무직 평균 연봉과 비교했을 때 "월급 받고 다녀도 이 돈 벌기가 어렵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또 이 씨는 '기술만 가지고 있으면 1인 회사를 차려서 일을 하더라도 밑천이 들지 않는 점'을 해당 직종의 장점으로 꼽기도 했다. 프리랜서이기에 억압되지 않고 스스로가 업무 스케줄을 조율할 수 있는 것도 큰 매력이다. 타일을 다루는 기술을 쥐고 있는 이상 쉬고 싶을 때 쉬고, 힘이 닿는 때까지 일하며 정년을 스스로 정할 수 있다. 실제로 사무직에 종사하다가 퇴사 후 기술직으로 뛰어든 20~30대 청년들만 봐도 직업 전향의 이유로 이렇게들 말한다. "기술을 배워두면 미래가 보인다."
기술직에 대해 "평생 직장은 없어도 평생 직업은 있는 거"라고 표현한 이 씨는 "물론 불안정함도 따라온다. 상사나 대표가 없으니 오직 본인의 의지로만 일하는 것"이라며 마냥 탄탄대로일 순 없다는 점을 짚고 넘어갔다. 외부(업무 환경 등)와 내부(건강 문제 등)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당장 수입이 뚝 끊기는 게 기술직 종사자들이 감당하는 현실인 거다.
현장에서의 모습. ⓒ이서희 씨
최근 학생들에게 타일을 가르쳐 호주로 유학을 연계하는 호주 타일반(한국능력개발원 내 K-MOVE 스쿨 관련 연수 프로그램) 강사 일을 시작한 그는 하루 8시간 꽉 채워 수업하고 오후 5시 30분에 퇴근한다. 수업뿐 아니라 홍보, 기획, 취업 연계, 사후관리까지 맡다 보니 퇴근 후에도 추가 근무를 한다는 이 씨는 "타일 잘 가르쳐서 사장님 된 학생들이랑 함께 일하는 게 최근 들어 생긴 꿈"이라고 말했다.
'타일공으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냐'는 질문을 받은 이서희 씨는 "돈 잘 버는 타일공, 60살까지 일하는 타일공이 꿈"이라며 씩씩한 답을 내놨다.
기사와 무관한 자료 사진 ⓒ언스플래시
늘 체력과 정신력을 기르려고 노력한다. 겁먹지 않는 태도도 더해지면 좋다. 최근 들어 현장에 도착하면 '혼자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겁이 날 때도 있는데 그럴 땐 '밥 먹듯 하던 일인데 내가 왜 못 해'라는 생각으로 정신력을 다 잡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