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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넘어 서울 강남에서도 이란 '히잡 시위'가 진행됐다. ⓒGetty
세계를 넘어 서울 강남에서도 이란 '히잡 시위'가 진행됐다. ⓒGetty

서울 강남구에 테헤란로가 있듯, 이란 수도 테헤란에는 서울로가 있다. 테헤란 동북부에서 남북으로 뻗어 있는 3.8㎞ 길이의 이 길 맨 아래에는 서울의 이름을 딴 서울공원이 있다. 이 공원에서 차로 10분 남짓한 거리의 카스라병원에서 지난달 16일(현지시각) 22살 마흐사 아미니가 사망했다.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고 도덕경찰에게 붙잡힌 뒤 구타를 당해 숨졌다는 증언이 나왔다. 죽음은 이란 여성들의 분노에 불을 질렀다. 이튿날부터 히잡을 거부하는 반정부 시위가 시작됐다. 분노는 이란 전역에 번져나갔다. 시위가 시작된 지 17일로 딱 한달이 된다.

 

9월 16일 아미니 사망...“경찰이 머리 때렸다” 보도

아미니의 죽음에 분노한 세계 사람들. ⓒGetty
아미니의 죽음에 분노한 세계 사람들. ⓒGetty

아미니가 테헤란 시내 한복판에서 체포된 것은 지난달 13일이다. 붙잡힌 지 몇시간 만에 병원으로 옮겨져 혼수상태로 사흘을 지내다 숨졌다. 이란 당국은 아미니가 병으로 사망했다고 밝혔지만 믿는 이는 거의 없다. 그가 숨진 뒤 “경찰이 구금시설에서 머리를 때렸다는 목격자 증언이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유족들도 아미니에게 질환이 없었다고 말한다. 언론에 보도된 아미니의 진료기록을 본 의사들은 타격에 의한 두개골 파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대낮에, 수도 한복판에서, 히잡이 머리카락을 완전히 가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끌려간 뒤 숨진 20대 여성의 석연치 않은 죽음에 이란 여성들은 분노했다.

가장 먼저 히잡을 벗어던진 건 테헤란에서 차로 서쪽으로 8시간이나 달려야 나오는 도시 사케즈의 여성들이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아미니는 가족들과 여행차 테헤란을 찾았다가 비극을 맞았다. 지난달 17일 장례식에서 많은 여성이 히잡을 벗어 머리 위로 들고 흔드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공개됐다. 여성들은 검은색, 흰색, 남색 등 히잡을 저마다 손에 쥐고 뜨겁게 구호를 외치고 있다. 아미니의 사진을 인쇄한 종이를 든 남성들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아미니가 숨진 테헤란 카스라병원 인근에서도 죽음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시위는 곳곳으로 들불처럼 번졌다.

 

핏빛 물든 테헤란 분수...대학교서도 시위·총성

‘히잡 벗었다는 이유로’ 이란 히잡 시위가 시작한 지 한 달이 흘렀고, 저항의 목소리는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사진)
빨갛게 물든 분수. ⓒ더 리프메일 트위터

저항의 목소리는 이란인들의 생활 공간 곳곳에 스며들었다. 지난 7일 트위터에는 테헤란 시내에 자리한 곳곳의 분수가 새빨갛게 물든 사진과 동영상이 올라왔다. 익명의 예술가가 당국의 유혈 진압에 항의하는 의미로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핏빛 분수는 파테미 광장과 다네슈주 공원, 호나르만단 공원 등 수도 중심부 곳곳에서 발견됐다. 구글어스로 보면, 주변의 시민들과 길게 뻗은 왕복 4차선 도로 위로 차들이 오가는 모습이 나온다. 대학 캠퍼스도 주요 전장으로 떠올랐다. 이란의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샤리프기술대학교엔 이제 시위대의 구호와 총성이 오간다.

‘히잡 벗었다는 이유로’ 이란 히잡 시위가 시작한 지 한 달이 흘렀고, 저항의 목소리는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사진)
본인의 머리를 직접 자르면서 시위에 동참하는 이란 여성. ⓒGetty

테헤란은 43년 전에도 혼란한 ‘히잡 시위’를 지켜본 도시다. 1979년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열린 행진은 여성인권 억압에 반대하는 격렬한 시위로 바뀌었다. 1978년부터 1979년 2월에 걸쳐 진행된 이란의 이슬람혁명 이후 입헌군주제였던 팔레비 왕조가 무너졌다. 그 대신 들어선 것은 이슬람 신정 체제였다. 그로 인해 여성인권은 급격히 후퇴했다. 팔레비 왕조 아래에서 복장과 취업 등 다양한 영역에서 자유를 누렸던 여성들 사이엔 위기감이 커졌다. 바로 전날 혁명에 성공한 이들은 “가리지 않으면 처벌받는다”는 방침을 정해 발표했다. 이란 여성들은 자신의 머리를 드러내며 항의 행진에 나섰지만 흐름을 막진 못했다.

 

강경 진압에 200여명 목숨 잃어

‘히잡 벗었다는 이유로’ 이란 히잡 시위가 시작한 지 한 달이 흘렀고, 저항의 목소리는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사진)
9월 28일 독일 베를린에서 진행된 시위. ⓒGetty

그래도 온건한 하산 로하니 대통령(재임 기간 2013~2021년) 시절엔 단속이 심하지 않았다. 이란 여성들의 복장은 비교적 자유로웠다. 지난해 8월 세속교육을 받지 않은 이슬람 성직자 출신인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이 취임한 뒤 사회 분위기가 변했다. 7월 초 ‘히잡과 순결 칙령’이 발표되면서 단속이 강화됐다. 두달 만에 아미니가 숨진 것이다. 노르웨이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이란인권’(IHR)에 따르면 지난 한달간 이어진 이란 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숨진 이는 이미 200명을 넘었다. 두바이에 사는 한 이란 여성은 <시엔비시>(CNBC)에 “상황은 계속 나빠지고 있지만, 우리 국민들은 물러서지 않고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계속 싸우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히잡 벗었다는 이유로’ 이란 히잡 시위가 시작한 지 한 달이 흘렀고, 저항의 목소리는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사진)
이란의 자유를 외치는 아이의 모습. ⓒGetty

이 시위의 또 다른 전선은 ‘민족’이다. 아미니의 고향인 사케즈는 쿠르드족의 거주지를 뜻하는 ‘쿠르디스탄’의 일부다. 쿠르드족은 국가를 갖지 못한 지구상에서 가장 큰 민족(약 3300만명)으로 튀르키예(터키)와 이란·이라크·시리아 접경 지역에 거주한다. 이들은 각지에서 분리독립운동을 벌이고 있다. 사케즈의 시위에서 처음부터 “독재자(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에게 죽음을” 같은 구호가 나온 이유다. 게다가 미국이 2018년 5월 이란 핵협정(JCPOA)을 일방 파기하고, 이란산 원유 수입을 가로막으며 경제 사정이 급격히 나빠졌다. 현재 이란의 물가 상승률은 무려 40~50%에 이른다.

‘히잡 벗었다는 이유로’ 이란 히잡 시위가 시작한 지 한 달이 흘렀고, 저항의 목소리는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사진)
니카 샤카라미의 죽음에 대해 말하는 어머니. ⓒYTN

지난달 30일 이란인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또 다른 죽음이 전해졌다. 지난달 20일 시위에 참여했다가 17살 여성 니카 샤카라미가 숨진 것이다. 그는 “경찰에게 쫓기고 있다”는 말을 친구에게 남긴 뒤 숨진 채 발견됐다. 이후 소셜미디어에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사진을 향해 손가락 욕설을 하는 등 여학생들의 사진과 동영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는 “저항에 나선 이란 소녀들이 시위가 벌어지는 위험하고 공적인 공간으로 당당하게 도착한 것은 예외적이고도 특별하다”며 “그들은 이슬람공화국이 그들의 몸을 지배하게 될 미래에 맞서 선제적으로 싸우고 있다”고 평가했다.

‘히잡 벗었다는 이유로’ 이란 히잡 시위가 시작한 지 한 달이 흘렀고, 저항의 목소리는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사진)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 ⓒ메쉬 알렌자드 트위터

지난 4일 올라온 한 영상에서 히잡을 쓰지 않은 수십명의 여학생은 단상에 선 한 남성을 향해 “하메네이에게 죽음을”이라고 외친다. 이 남성은 이란 혁명수비대(IRGC) 산하 민병대 관계자이고, 영상이 찍힌 곳은 남부 도시 시라즈의 한 여학교로 알려졌다. 테헤란에서 무려 900㎞ 떨어진 곳이다. 북부에서 시작된 시위가 이제 전역으로 넓게 퍼졌음을 알 수 있다. 시위가 벌어진 시라즈는 파르스주의 주도다. 파르스란 단어는 이란을 의미하는 페르시아의 어원이다. 한달 전 테헤란에서 발생한 한 여성의 죽음은 이제 그야말로 이란(페르시아) 전역을 흔들고 있다.

10월 1일 서울 주이란 이란 이슬람공화국 대사관에 앞에서 진행된 이란 히잡 시위. 플랜 카드를 든 한국의 이란 커뮤니티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Getty
10월 1일 서울 주이란 이란 이슬람공화국 대사관에 앞에서 진행된 이란 히잡 시위. 플랜 카드를 든 한국의 이란 커뮤니티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Getty

숨진 아미니는 고향 사케즈에 묻혔다. 그의 비석엔 “당신은 죽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상징이 될 것입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졌다. 이 말은 곧바로 현실이 됐다. 세계 곳곳에서 이란과 연대하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서도 집회가 열렸다. 이란에서 6000㎞ 넘게 떨어진 이곳에 재한 이란인 등 120명이 모였다. 이들은 아미니의 이름과 함께 “여성, 인권, 자유”를 외쳤다.

 

한겨레 조혜영 기자 hy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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