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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석의 '스페인 하숙'을 보면 마음이 편해지는 이유를 알았다

가난 역할극은 이제 그만

  • 박세회
  • 입력 2019.04.05 14:46
  • 수정 2019.04.05 16:46
ⓒ티비엔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면 나영석 피디의 근작 스페인 하숙을 본다. 보고 있으면 그냥 마음이 편하다.

유해진 씨가 뚝딱뚝딱 뭔가를 만들면, 내가 만든 것도 아닌데 기분이 뿌듯하다. 차승원이 한 제육볶음을 여행객들이 맛있게 먹으면, 역시 내가 만든 것도 아닌데 기분이 좋다.

전작인 ‘윤식당’도 비슷하게 편안했는데, 훨씬 더 ‘널럴한’ 기분. 왜 그런가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변한 게 눈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본 나피디의 작품은 ‘꽃보다 할배‘, ‘삼시세끼‘, ‘윤식당’이다. 프로그램마다 차이는 좀 있지만 제약이 있었다. 

‘꽃보다 할배’는 그 옛날 만원의 행복 처럼 용돈을 정해 놓고 그 돈 안에서 관광 미션을 클리어하는 게 주요 업무였다. 실무자인 이서진이 이사님 할배들을 예산 안에서 최대한 편하게 모시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게 갈등의 포인트로 등장하기도 했다. 

이게 좀 공감이 안 됐던 게 할아버지들도 그렇고, 게스트로 나온 최지우도 그렇고, 다들 돈 많은 분들인데 뭘 그런 가난 역할극을 시키나 싶은 마음이 가끔씩 들었더랬다.

아래는 용돈을 500만원 주기로 해놓고 꼼수로 425만원만 준 나피디에게 항의하는 이순재 교수님. 역시 연기 100단이시니까 이 정도 감정 잡으신 거다. 

ⓒ티비엔

‘삼시세끼’도 그런 구석이 있었다. 돼지고기 좀 사 왔다고 막 괴롭히고, 물고기 잡아야 육지에서 돼지고기 살 돈 주고. 출연진이 재치가 넘치니까 재미는 있지만, 좀 피곤했다.

아래는 나피디가 차승원이 추성훈 주겠다고 사 온 돼지고기를 빼앗으려는 장면이다. 일본에서 왔는데 돼지고기 하나 못 먹이면 쓰나? 

ⓒ티비엔

이전 프로그램 중엔 ‘윤식당’이 그나마 이런 역할극 스트레스가 제일 적었다. 그래도 살짝 있었다면 출연진들이 매출을 올려야 한다는 압박에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점 정도? 그리고 그 스트레스 때문에 보고 있는 시청자도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거 정도? 하루 매출 200유로(약 25만원) 벌었다고 고기 파티하는 걸 보면서 ‘저렇게 먹을 만큼 남는 장사는 아닌데’라는 걱정이 앞섰다는 것 정도? 

ⓒ티비엔

스페인 하숙은 이런 역할극이 하나도 없다.

숙박비는 5유로로 스페인 알베르게 업계 최저고, 저녁과 아침 두 끼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주고 8유로(1만원)를 받으니 한국 물가보다 한참 저렴하다. 

하루에 20명을 받는다고 쳐봐야 260유로(33만원) 수준이다. 돈 벌 일이 없으니 돈 얘기를 할 필요가 없다. 대사며 자막에서 돈 얘기가 안 나오니까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이게 뭔가 해서 생각해보니까 내가 원하던 꿈 같은 삶이다. 돈 없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없고, 누가 돈 벌라고 보채는 분위기도 없는 삶.

식재료 살 돈이나 목공 부자재 마련할 돈은 보아하니 제작진이 넉넉하게 주는 것 같다. 차배진(차승원, 배정남, 유해진) 삼형제는 오로지 걷다가 지친 순례자들 배 터지게 먹일 궁리만 하고 있는 것이, 보기에 마음이 참 편하다.

최근에 누군가가 ‘연예인들 흙수저 놀이 정말 감정이입 안된다’는 말을 하는 걸 들었다. 언제적 만원의 행복이냐고요. TV에서 역할극 하듯이 액수 정해놓고 짠돌이 놀이에 감정이입 하는 시대는 지났다. 그걸 제일 잘 써먹던 나영석이 바뀌었으니 하는 말이다.

박세회 sehoi.park@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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