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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고 익숙한 팝 멜로디를 꿈결처럼 속삭인다. 리버브를 잔뜩 먹인 기타 소리로 솜사탕처럼 하늘하늘한 사운드를 만들어 노래를 감싼다. 철 지난 낭만으로 치부되던 ‘드림 팝’이 귀에 감기는 날이 다시 왔다. 유행이라고 까지는 말 못 하겠다. 그러나 10년 된 드림 팝 밴드 ‘시가렛 애프터 섹스’(Cigarettes After Sex)가 ‘요새 뜨는 신예 밴드’ 취급을 받으며 전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2018 홀리데이랜드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한국을 찾은 이 밴드의 송라이터 그렉 곤잘레즈(Greg Gonzalez)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시적이면서도 “논리적이고 말이 되는” 가사를 쓰기 위해 1000번을 고친다고 말했다. (인터뷰어 : 윤인경, 정리 : 박세회)

시가렛 애프터 섹스는 멤버 구성은 바뀌어 왔지만 이제 거의 10년 가까이 활동하고 있는데, 대중적 인지도가 생긴 것은 최근 몇 년의 일이다. 지금 시점에 신인 밴드라는 말을 들으면 이상한가?

이상한 것이 사실이다. 이 밴드가 10년이 되었다는 것도 신기하다. 변함없는 요소들도 있다. (지금과 같은 가사를) 쓰기 시작한 것은 ‘Nothing’s Gonna Hurt You Baby’와 ‘I’m a Firefighter’가 수록된 2012년 EP부터였다. (그래서인지) 이 밴드가 6년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주목을 받게 되어 좋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팬들을 만나는 건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다.

당신 목소리 이야기를 해보자. 시가렛츠 애프터 섹스의 공개 프로필이 없다보니 한국 팬들 중에서는 보컬이 여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른 곳에서도 이런 반응을 받은 적이 있는가?

워낙 자주 있는 흔한 반응이다. 솔직히 아주 기분이 좋다. 첫 EP 커버 영향도 있었겠지만, 스타일 자체도 그렇다. 남자 보컬들은 보통 이렇게 숨소리를 많이 섞어 노래하지 않는다. 아마도 침실에서 속삭이는 목소리의 느낌일 것이다. 솔직히 나는 남자 가수보다 여자 가수를 더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 가수들도, 예를 들면 ‘쳇 페이커’(Chet Faker, 닉 머피의 예명) 역시 아주 양성적이다. 내가 그런 목소리를 정말 좋아하고, 그런 소리를 따라 하려고 하다 보니 여성적 느낌이 나서 사람들이 내가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웃음거리가 되는 건 (내가 아닌) 그들이다.

가장 좋아하는 커버곡은 뭔가?

사이먼 앤 카펑클의 ‘America’를 좋아한다. 두 연인이 로드트립을 하며 경험한 소소한 순간들을 담은 가사가 우리 노래와 비슷하다. ‘America’를 커버할 때 참 좋았다.

한 곡을 만들 때 얼마나 고쳐서 완성하나? 늘 시를 써왔나?

1000번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가사를 쓰는 과정은 타자기 앞에 앉은 작가의 상투적인 이미지와 비슷하다. 한 문장을 쓴 다음 던져버리고, 두 문장을 더 쓰고 또 던져버린다. 물론 컴퓨터로 쓰긴 하지만. 내 마음에 드는 것이 나올 때까지 이런 과정을 천 번 정도 반복한다. 나는 내 가사가 음악 없이 읽기에도 좋기를 원한다. 가사를 읽었을 때 논리적이고 말이 되는 알찬 시로 느껴지길 바란다. 너무 아리송하지 않고, 내러티브가 꼭 있어야 한다. 이런 것들을 염두에 두고 나는 최대한 좋은 가사를 쓰려 한다. 쓰고 버리는 과정이 중요한 것 같다. 조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고쳐가는 과정에서 나는 한 단어만 계속해서 바꾸기도 한다.

깊고 사적인 기억과 감정을 타인에게 드러내는 기분은 어떤가? 무대 위에서 노출된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나?

스튜디오에서 내 노래들을 다시 들으며 묘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다. ‘K’란 곡을 처음 녹음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믹싱하며 다시 들었을 때, 내 몸에 구멍이 뚫리는 듯한 강한 감정을 느꼈던 게 기억난다. 특히 그 곡은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라, 그런 느낌이 되살아났다. 나도 그랬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라이브 퍼포먼스는 내겐 늘 긍정적이었다. 감정이 북받칠 때면 항상 고마움과 소중함을 느낀다.

옛 연인들이 반응을 보낸 적이 있나?

다행히도 나는 내 노래 속에 등장하는 많은 여자들과 연락을 유지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하나 있는데 아주 진지하게 사귀었던 옛 여자친구다. 하지만 노래로 만든 건 전부 아주 다정한 이야기들이고, 심술궂은 내용은 전혀 없다. 그들은 내게 전화를 걸어 노래를 듣다 감동해서 울었다, 정말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옛 여자친구가 화나서 전화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그 노래 내려.”라고 말한 적은 없었다.

[인터뷰] 그렉 곤잘레즈는 침실에서 속삭이는 자신의 목소리가 좋다고 말한다
ⓒNurPhoto via Getty Images

당신의 음악은 매우 영화적이다. 듣고만 있어도 분위기와 장면이 머릿속에 시각적으로 떠오른다. 영화광으로 알고 있는데, 이에 대해 더 이야기해줄 수 있나? 영화에 대한 사랑이 음악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

아버지가 가게를 운영하진 않았지만, 비디오 유통업자여서 매주 영화 테이프가 든 커다란 박스들이 배달되어 왔다. 내가 자랄 때 우리 집에는 VHS 테이프가 천 개쯤 든 벽장이 있었다. 집에 비디오 대여점이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를 통해 다른 기준을 세웠다. 자신의 세계에만 갇힌 아티스트는 깊이를 얻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자기 그림만 보는 화가에겐 깊이가 없다. 당신 분야가 아닌 것에서 영감을 얻었을 때 진짜 천재적인 일들이 일어난다. 내게 있어 그건 분명 영화였다. 나는 손쉽게 작곡을 하고 기타를 칠 수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음악을 하는 쪽으로 갔다. 영화를 만드는 건 내게 그만큼 쉽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에 담긴 온갖 감정들이 정말 좋았고, 내 노래들만큼 강렬하다고 느꼈다. “이 장면, 혹은 이 영화가 좋아.” 그리곤 그런 감정을 끌어낼 수 있는 노래를 만들 방법을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만든 곡들이 많다. 큰 영향을 줬다.

시네파일(영화광)인 당신이 한국 감독의 영화 음악을 맡게 된다면 누구와 작업하고 싶나?

‘괴물’을 좋아했고, 봉준호 감독이 다른 훌륭한 영화를 많이 만들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올드 보이’를 정말 좋아했다. 놀라운 스타일을 가진 영화다. 그런 영화들의 음악을 작곡하고 싶다. 나는 영화 음악 작곡가들을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 중에는 사운드트랙들이 정말 많기 때문이다.

요즘 당신의 플레이리스트에는 어떤 곡들이 있나?

워낙 중구난방으로 듣다보니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내가 요즘 푹 빠지게 된 노래가 둘 있다. ‘클린 밴디트’와 줄리아 마이클스가 부른 ‘I Miss You’와 쇼팽의 야상곡이다. 쇼팽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 중 하나지만, 야상곡들은 정말 감동적이다. 지난 2주 동안 쉴 새 없이 들었다. 둘 중 하나는 최신곡이고, 다른 하나는 정말 오래된 음악이다.

장거리 연애(이하 ‘롱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시가렛츠 애프터 섹스의 노래 ‘K’에는 장거리 연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에 노래를 쓸 때는 롱디를 처음 경험했을 때인데 지금은 솔직히 할 수 있는 연애가 롱디 밖에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항상 투어를 다녀서다. 물론 쉽지는 않다. 누군가를 정말 사랑하게 되면 함께 있지 못함에 그 거리가 너무 아프게 느껴지지 않나. 그런데 이제는 너무 익숙해졌다. 나와 라이프스타일 패턴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이 배웠고, 조금은 서로 수월해진 것 같다. 한 사람은 한곳에 머무는데 상대방만 계속 움직여야 하는 상황일 때 연애가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다음에 롱디에 관한 노래를 쓰면 좀 달라질 것 같은가?

그럴 것이다. 안 그래도 지금 준비하고 있는 앨범에는 이런 연애에 관한 노래들이 있다. 밴드가 뜨고 나서 투어를 도니까 계속 롱디만 하게 되더라. 내가 한 곳에 오래 못 머무르니까 아무래도 영향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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