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바야흐로 굴의 계절
지난달 19일 서울 강남 신사동에 있는 레스토랑 ‘엘본 더 테이블’. 요즘 최고 주가를 올리고 있는 요리사 최현석이 굴 요리 두 개를 내왔다. 전쟁 같은 ‘점심’을 치르고 지쳤을 법도 한데, ‘자연이 선물한 정력제’라는 굴을 조리해선지 활기가 넘친다.
요리사 최현석이 분자요리기술을 써서 만든 굴 요리. 사진 박미향 기자
첫번째 요리는 ‘유자소스 얹은 굴’. 분자요리기술(액화질소 등을 활용해 재료 본연의 모습을 해체하고 새로운 형태의 요리를 창조하는 조리법)을 활용해 만든 맛이다. 요구르트에 젤라틴을 녹여 넣고 액화질소를 주입해 찰랑거리는 걸쭉한 액체를 깔고 그 위에 유자소스와 액화질소로 겉을 살짝 얼린 굴을 얹었다.
그는 “이탈리아 오이스터 바(굴 바)에서는 껍데기를 까서 그 안의 짠물까지 다 먹는다”면서 자신의 색깔을 입힌 굴 요리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두번째 요리는 ‘굴 파스타’. 지름 0.85~0.92㎜의 얇은 파스타면 ‘카펠리니’를 삶고 그 위에 매운 타바스코 소스를 뿌린 굴 요리다. 비빌수록 짠 바다를 품은 굴이 더 맵게 가는 면을 휘감는다. 그는 정력가임에 틀림없다. 5개의 레스토랑을 관리하고, 방송과 각종 인터뷰에 응하느라 하루해가 짧다. “평소 굴을 자주 먹어 바쁜 일정을 다 소화하느냐”고 묻자 그는 “안 먹어도 본래 힘이 넘친다”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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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굴의 계절이 돌아왔다. 11월부터 내년 3월까지 경남 통영·남해, 전남 고흥·장흥, 충남 서산 등 서해안 일대로 이어지는 이른바 ‘굴 벨트’에선 우유 빛깔 찬란한 굴이 생산된다. 벌써부터 생산지에는 굴 애호가들이 몰려든다.
굴만큼 전세계 미식가를 사로잡은 해산물이 또 있을까!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술안주로 굴튀김을 즐겼고, 같은 성씨의 소설가 무라카미 류도 자신의 책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에서 ‘목으로 생굴이 미끄러져 들어갈 때의 그 감촉’을 예찬했다. 카사노바, 비스마르크, 발자크, 클레오파트라 등 역사적 인물들이 앉은자리에서 수백개의 굴을 먹어치웠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진다. 굴의 매력은 관능적인 식감과 바다 향을 온전히 담은 진한 맛, 영양소의 보물창고라는 데 있다. 열량은 낮지만 단백질, 글리코겐, 남성호르몬 분비를 촉진한다는 아연, 비타민 등이 풍부하고, 멜라닌 색소를 분해하는 성분까지 있어 여성에게도 좋다고 알려져 있다. 굴은 생굴 자체의 신선한 향과 맛을 즐기는 것을 최고로 치지만, 동서양에 따라 그 조리법과 식도락의 방식이 조금씩 차이 난다.
익힌 굴을 사랑하는 중국·일본
일본 요리 굴 도테나베. 사진 박미향 기자
굴짬뽕, 굴튀김, 굴 도테나베, 굴 오코노미야키. 이 음식들의 공통점은 굴을 익혔다는 것. 생굴 자체를 즐기는 서양과 달리 동양에는 익힌 굴 요리가 많다. 서울 강남 논현동의 중식당 ‘대가방’의 대장리 주인 겸 요리사는 “중국 본토에선 생굴을 잘 먹지 않는다”며 세 가지 음식을 선보였다. 달걀과 굴을 간편하게 볶은 요리는 아이들이 먹기에도 부담이 없다. 얇게 자른 쇠고기로 탱글탱글한 굴을 싸서 튀겨낸 음식은 고급이다. 49년 경력의 그는 지금 중식당에서 흔히 보는 ‘꽃빵’을 한국에 처음 선보인 걸로 유명한 한국 중식사의 산증인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흔했던 고급 굴 요리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꿰찬 건 굴짬뽕이었다고 한다. 대가방의 굴짬뽕은 숙주가 푸짐하고 고추 등을 살짝 볶아 넣어 불향이 스며 있다. 익은 굴은 생굴과는 또 다른 맛이다.
중식당 대가방의 굴짬뽕. 사진 박미향 기자
날생선 요리가 거의 없는 중국은 주로 굴을 말려서, 튀겨서, 소스로 만들어 즐겼다. 중국 굴소스는 ‘아시아 퀴진’을 대표할 정도로 유명하다. 신선한 생굴을 소금에 절였다가 발효시키는 소스로, 광둥식 요리에 주로 썼으나 지금은 대표 중식 소스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식문화는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 중국인들이 생굴을 먹기 시작했다. 최근 중국은 세계 최대 굴 소비국으로 등극했다. 소득 수준이 향상된 중국인들이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서양식으로 굴을 즐기는 방식에 빠져든 것이다. 2012년 국립수산과학원 자료에 따르면 중국은 세계 최대 굴 생산국이기도 하다. 다만 연근해 수질이 좋지 않아 생굴로 먹지 않는다. 생굴은 수입에 의존하는데, 통영산 굴도 대상이다.
일본에도 익힌 굴 요리가 많다. 일본 슈퍼마켓에는 생굴과 함께 ‘익혀 먹는 조리용 굴’ 코너가 따로 있다. 서울 강남 청담동의 ‘스시 코우지’의 주인장 겸 요리사 나카무라 코우지는 전골 그릇 안에다 흑백으로 색이 다른 두 가지 된장을 섞어 만든 된장을 바르고, 갖은 채소와 물컹한 굴을 함께 끓여내는 ‘굴 도테나베’를 겨울철 별미로 추천한다. 된장 특유의 맛이 밴 굴은 바다가 아닌 들과 산의 정령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일본인은 굴튀김, 굴덮밥을 특히 좋아한다”며 “빵가루 입혀 튀겨내는 ‘가키 프라이’와 ‘가키 덴푸라’는 집에서도 쉽게 해 먹는다”고 전했다. 굴튀김은 바삭함과 보드라움이라는 극단의 식감을 모두 껴안아 경이로운 굴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일본 부침개 오코노미야키에 살짝 익혀 올린 굴이 가쓰오부시와 함께 춤추는 모양새는 보기만 해도 어깨가 들썩인다.
생굴에 사족 못 쓰는 프랑스
와인식초, 샬롯 등으로 만든 소스를 뿌린 굴. ‘더 그린 테이블’의 김은희 주인 겸 요리사 솜씨. 사진 박미향 기자
프랑스 화가 장 프랑수아 드트루아가 1735년에 그린 <굴이 있는 점심 식사>에는 굴껍데기를 바닥에 수북하게 쌓아놓고 굴을 먹는 귀족들이 보인다. 자고로 낭만적이다 못해 방탕했던 프랑스 귀족들의 애정사는 굴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싶다. 여성들과의 데이트에 앞서 굴 수십개를 먹고 출동했다는 카사노바만 봐도 유럽에서 굴은 비아그라 대용품이었는지도 모른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있는 프렌치 레스토랑 ‘더 그린 테이블’의 김은희 주인 겸 요리사는 “프랑스 브르타뉴 캉칼 지역이 굴 주생산지”라며 “프랑스인들은 별다른 조리법 없이 생굴 자체를 즐긴다”고 말한다. 굳이 뭔가를 넣는다면 레몬즙이나 다진 샬롯(적양파)과 와인식초 등을 섞은 소스(미뇨네트소스)를 뿌려 먹는다고 한다. 마리아주(음식과 와인의 조합)를 중요하게 여기는 프랑스인들은 굴을 화이트와인 샤블리나 샴페인과 곁들여 먹는다. 샤블리 없는 굴을 상상할 수 없었다. 겨울비처럼 차가운 샤블리에 흥건하게 젖은 굴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면 그 관능적인 쾌락에 푹 빠진다.
프랑스는 손에 꼽히는 굴 생산국이자 소비국이다. 식중독의 위험이 있는 5~8월만 빼고는 굴을 입에 달고 산다. 겨울철 파리 레스토랑에서는 얼음바구니에 석화를 수북하게 꽂아두고 굴을 즐기는 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뷔페 레스토랑에서도 굴은 인기다. 파리 개선문 근처 ‘르 루아얄 몽소 호텔’의 레스토랑 ‘라 퀴진’에서도 여행객의 눈을 사로잡는 분홍빛 마카롱보다 더 먼저 동이 나는 것은 굴이다. 프랑스에 익힌 굴 요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음식은 국경을 넘어 씨앗을 뿌린다. 이탈리아식 그라탱이나 미국식 스테이크 등이 굴과 만난다.
프랑스 요리의 대부 조엘 로뷔송은 그의 조리책 <더 컴플리트 로뷔송>에 굴을 익힐 때의 주의사항을 상세히 적었다. 그는 ‘매우 짧은 시간에 굴을 그을리듯 익혀야 질겨지지 않는다’고 기술한다. 알려진 바와 달리 미식가도 대식가도 아닌 나폴레옹도 생굴만은 즐겼다고 하니, 생굴이야말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먹거리 중 하나다.
날로도 좋고 익혀도 좋은 한국
한식 요리 전문가 우정욱이 만든 굴무침. 사진 박미향 기자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한식당 ‘수퍼판’의 우정욱 주인 겸 요리사는 굴무침에 밤, 배, 오이 등 갖은 재료를 넣어 무친다. 어리굴젓용 작은 굴이 아니다. 씨알이 굵은 통영산 양식굴이다. 우씨의 굴무침에는 아삭하게 삭힌 무절임까지 들어가 밥도둑이 따로 없다. “친정어머니는 매년 겨울철 굴을 삭혀서 김과 함께 주셨다”며 “하얀 밥과 먹은 그 굴 맛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한국인이 먹는 굴은 수백가지 넘는 굴 종류 중 참굴로, 서해안에서 채취하는 자연산도 있지만 양이 적다. 대부분은 통영 등 대표적인 굴 생산지에서 양식하는 굴이다.
과거 기록을 살펴보면 한국인들이 굴을 즐기는 방식은 매우 다채로웠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이 ‘입에 들어가면 몹시 입맛을 돋우어준다’고 표현했을 정도로 생굴로도 즐겼고, 꼬챙이에 꽂아 기름을 발라 구워 먹기도 했다. 매콤한 초장에 찍어 먹는 생굴은 우리만의 자랑거리다. 서울로 여행 온 프랑스인들이 가장 놀라는 요리가 초장에 찍어 먹는 굴이라고 한다. 노릇노릇 익힌 굴전은 표현할 말이 없을 정도로 고소하다.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는 전어의 명성을 넘고도 남는다. 굴국밥, 굴죽 등 전국에 퍼진 굴 요리들을 연구할수록 그 가짓수에 놀란다.
우리 조상들이 굴을 익혀 먹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약식동원’(약과 음식은 그 근원이 같다)의 개념에서 출발해 음식도 음양의 조화가 중요하다고 봤다. 익히면 굴 특유의 냉한 성질을 보완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먹거리를 쾌락만 추구하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 몸을 지키는 약으로 보는 철학이 깔려 있다. 굴이 남성 고환이 부었을 때 사용하는 구급약이었다는 기록(<산림경제>)도 있다.
제철을 맞은 싱싱한 굴. 사진 박미향 기자
지역마다 사람마다 즐기는 방식이 달랐던 한국의 굴. 그 다양성을 2015년의 요리사 최현석이 이어받았다. “새콤한 라임셔벗에 굴을 올려 같이 먹는 요리는 만들기는 간단해도 풍미가 아주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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