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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이별 통보… 인생의 다른 기회일 수도!
ⓒzimmytws via Getty Images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 인생의 다른 기회일 수도!
ⓒhuffpost

A 저는 34살 여성입니다. 며칠 전 이별을 통보받았어요. 남자친구는 31살입니다. 우리는 연상연하 커플이었어요. 3년 가까이 교제했고요. 제가 연상이고, 남자친구가 사회 초년생이다 보니 서로 눈치만 보고 결혼 얘기는 꺼내보지도 못하다 6개월 전 처음 이야기하게 됐어요. 저는 결혼에 대해 생각하는 편이었고 남자친구는 결혼은 34살 이후 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연상연하 커플이다 보니, 주위 사람들의 말에 각자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더라고요. 우리는 남들 말 신경 쓰지 말고 지금은 연애가 좋으니 우리만 생각하고 만나자, 대신 결혼은 피할 수 없는 문제니 그것에 대해서는 주기적으로 대화하자 했고요.

그러다 우리가 ‘정상회담’을 갖게 되었어요. 7월 첫째 주에 말이죠. 우리의 생각은 전과 같았어요. 저는 결혼을 생각하는 쪽이었고 남자친구는 ‘결혼은 아직’이라고 생각하고… 하지만 이런 생각의 차이 때문에 헤어질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연애를 하다가 다음 정상회담을 갖자고 했죠.

그리고 그 얘기를 한 2주 뒤에 남자친구가 다른 친구와 여행을 다녀왔어요. 다녀오고 별일 없이 일상처럼 지냈는데, 그가 갑작스럽게 이별을 고하더군요. 예고편도 없이! 이별을 고하기 1시간 전에도 너무나 예전과 똑같았어요. 그는 전혀 이별을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행동했죠. 남자친구는 “지금의 편안함이 사랑인지 아닌지 모르겠다”고 했어요. 전 너무 당황스러워서 이별 통보를 납득시키라고 했어요.

상처받을 것 같아서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고 했어요. 이미 상처받았다고, 이제 와서 덜 받고 더 받는 게 무슨 소용이냐며 이야기하라고 했지요. 여행에서 여자를 만났나 봐요. 친구들과 같이 저녁 먹고 맥주 마시는데 합석한, 잘 모르는 그 여자를 보고 문득 ‘저 여자랑은 결혼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느 면에서 그랬냐고 물으니, 모르겠대요. 맥주 마신 게 전부고 아무 일 없었다며, 그 여자와의 만남이 우리의 헤어짐에 큰 부분은 아니라고 하는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어요.

전화로 이별 통화를 받았기에 저는 받아들일 수 없어서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했어요. 만나서 이야기하는데 전화로 한 얘기를 똑같이 하더군요. 3년 동안 여자 문제는 아예 없었고, 너무나 다정한 사람이었어요. 우리는 정말 잘 맞았던 사이였어요. 아무런 예고도 없었던 이별 통보는 정말 받아들일 수 없더라고요.

남자친구는 오랫동안 고민을 해왔다고, 헤어지는 게 너무 두려웠다고, 평생 이렇게 잘 맞는 여자는 못 만날 것 같다고, 너무나 미안하다고, 자기가 나쁜 놈인 거 아는데 더는 저에게 몹쓸 짓은 못 하겠다며 울면서 말하더군요. 저는 너무나 당황스럽고, 이 상황이 거짓말 같아서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너무 못됐다고, 예고도 없이 이건 아니라고, 제가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달라지는 게 없을 거 같다고 하더군요.

그는 빈말조차 안 하는 사람이고 칼 같은 면이 있어서 되돌릴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마지막 포옹을 하는데 그전에는 눈물조차 나오지 않던 제가 펑펑 울어버렸습니다. 가지 말라고 매달려보았지만 남자친구는 우는 저를 차에 두고 갔어요.

작가님, 편안함이 사랑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저 남자의 말과 아무것도 모르는 여행지에서 만난 여자에게 결혼할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게 뭘까요? 한순간에 일어난 이별 통보를 제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아직도 거짓말 같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작가님에게 이렇게 메일을 드립니다. 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고 없이 이별 통보받은 여자

Q 먼저 이 편지를 보낸 당신에게 마음 깊이 위로를 전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지금 와서 그와 있었던 대화들을 복기해보면, 처음부터 그는 당신과 딱히 결혼 생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34살의 여자친구가 결혼 이야기를 꺼내는데, “나는 34살은 돼야 할 것 같아”라고 말하고 있었으니까요. 그가 34살이면 당신은 37살. 3년 뒤까지 결혼하지 않고도 둘이 행복하게 연애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을, (결혼하고 싶어 하는) 당신이 37살이 될 때까지 결혼을 안 하고 아무렇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을 확률이 굉장히 높죠. 그는 어쩌면 당신에게 완곡하게 말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네요. ‘나는 너와 결혼 생각이 없단다’라고요. 정말 34살에 하고 싶다는 말이든 그러지 않든, 결혼 이야기를 당신이 꺼낸 순간부터 그는 당신이 부담스러웠던 것 같아요. 당신의 의견이나 인생 계획은 하나도 귀에 안 들어오고, 어떻게 하면 이 관계를 빨리 정리할 수 있을까 궁리하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고요. 납득하기 힘드실 수도 있어요. 당신과 3년을 행복하게 보냈던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물 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은 진리예요. 어떤 사람들은 딱히 미래를 함께 그리고 싶지 않은 상대와 아무 일 없다는 듯 제법 진지해 보이는 관계를 이어가기도 하니까요. 어쩔 수 없어요. 이게 현실이니까. 

그는 그저 시기가 너무 빠르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며 당신과 이른바 ‘정상회담’에 임하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애초에 그가 당신과 미래를 함께할 생각이 없었다면 사실 그 이후에 그가 당신에게 보여주고 말한 모든 것들은 다 의미 없는 일들이죠. 여행 가서 맥주 한 잔 나눈 여자와는 결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 사실이든 아니든, 아무 일 없었다는 이야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말입니다. 당신은 그 사람을 3년간 믿어왔으니 이번의 그 말들도 당연히 믿겠지만, 제 3자인 입장에서 그 말들은 사실 그렇게 그럴듯한 내용이라고는 생각이 안 드네요. 그야말로 얼토당토않은 껍데기 이야기에 불과하고, 그러니 당신 입장에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거죠. 여행 가서 만난 여자에게 한눈에 반해 사귀기로 했으니 이 관계는 끝내자고 말했다면, 그럼 납득하고 조용히 보내줄 자신은 있으세요? 그는 그저 최소한의 성의도 없는 거짓말을 마지막으로 하면서 당신을 떠나가겠다고 하는 겁니다. 진실을 말하든 아니든 이별이 쉽지 않다는 것을, 그도 모르지 않았겠죠. 

그러니 인제 그만 그에 대한 좋았던 평가(이성 문제도 없었고, 다정했고, 빈말조차 안 하는 사람)를 내려놓으셨으면 합니다. 그것은 이미 지나간 일이고, 그는 더는 당신에게 좋은 사람인 척하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이니까요. 3년을 만났고 자신과 결혼을 하고 싶어 한 사람에게, ‘너는 아니야’라고 말하는 사람일 뿐이죠. 사랑하는 사람들은 늘 서로 자기 자신보다 아끼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는 모두 인정하게 되지 않나요? 나 자신보다 중요한 건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당신도 당신의 인생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그도 자신의 인생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을 뿐이죠. 그토록 중요한 자신의 인생에 당신이 없었으면 한다며 떠나 간 사람인데, 그 사람이 흘린 악어의 눈물을 복기할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랑하고, 이별하고, 또다시 만나 사랑하는 이 과정은 참 커다란 행복과 불행을 우리에게 동시에 선사합니다. 달콤한 사랑의 과육을 맛보았고 황홀함을 느꼈다 해도, 언젠가는 쓰디쓴 뿌리까지 먹어야 하는 것이 사랑이겠죠. 누구든 흙 맛이 나는 뿌리 같은 건 먹고 싶지 않아 합니다. 하지만 단 하나 확실한 게 있다면, 그저 좋은 것만 취할 수는 없다는, 이 확실한 진리를 고통 속에 경험한 사람은 커다란 성장의 기회를 맞는다는 겁니다. 사랑하던 사람에게 이별을 선고당하는 것은 심장이 찢기는 고통이지만, 나를 선택할 생각이 없던 사람이 인생에서 사라지는 것은 씁쓸해도 꼭 일어나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고통의 시간을 잘 버티고 나면, 당신은 좀 더 또렷해지겠죠. 당신이 정말 원하는 삶이 어떤 건지, 당신에게 정말 필요한 사람은 누군지,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든 그러지 않든 나의 삶을 운영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실컷 슬퍼하세요. 스스로 가장 불쌍하고 가장 가련한 사람처럼 느껴진다면 그 느낌도 존중하세요. 그리고 그 슬픔이 조금 걷히기 시작하면 당신의 상처를 돌아보는 시간을 통해 성장하십시오. 타인에게 맞춰졌던 시선과 마음을 자신에게 돌리고,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통해, 상처받은 자존감을 회복하길 바랍니다. 비탄에 빠져 있을 때가 개인의 삶에는 가장 큰 기회인 법이니까요. 

이 편지의 서두에 당신에게 깊은 위로를 보냈지만, 이제는 굳은 응원과 지지를 보내고 싶습니다. 저 역시 사랑하는 사람에게 결별 선언을 받고 몇 날 며칠을 울어본 사람입니다만, 그러나 그 상처를 극복하려고 이렇게 저렇게 노력한 결과, 지금은 ‘아이고, 나랑 이별해줘서 고맙다’며, 싱긋 웃으며 그의 결혼까지도 축복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나는 그가 사라진 나 혼자로서의 완전한 삶에 훨씬 만족하니까요. 부디 당신도 지금의 이 슬픔을 통해 더 좋은 곳으로 향하길 바랍니다. 저처럼요!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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