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에서 퇴임한 고위 임원들이 그룹 내 고문·자문역으로 다시 위촉돼 고액의 보수를 받는 관행이 금융당국의 제도 개선 대상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최근 주요 금융지주에서 퇴임 임원 38명에게 책정한 연간 보수 기준액의 합계가 약 57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난 가운데, 이억원 금융위원장과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관련 제도를 손보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금융지주 고문·자문역은 법적 임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수와 업무 내용에 관한 공시나 책무구조도 적용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금융당국은 현재 추진하는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퇴임 임원들의 고문·자문역 위촉 관행과 이들에게 적용되는 책임·공시 체계를 함께 살펴보기로 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오른쪽)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왼쪽은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연합뉴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종합국정감사에서 금융지주 퇴임 임원들의 고문·자문역 위촉 관행과 관련해 "지배구조 개선, 특히 최고경영자(CEO)와 임원 관련 사안을 계속 살펴보고 있다"며 "고문 제도의 운영 방안에 대한 개선까지 포함해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금융위원회에서 준비하고 있는 지배구조 개편안에 고문과 자문 등 그림자 형태로 숨어 있는 부분도 추가적으로 협의해 보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개편안에 관련 내용을 포함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는 "포함하려고 실무선에서 협의하고 있다"며 최종 개편안에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날 종합감사에서는 김용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지주 퇴임 임원들의 고문·자문역 재취업 실태를 다시 문제 삼았다.
김 의원이 금융감독원을 통해 8개 금융지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1월부터 올해 9월까지 6개 금융지주에서 퇴임 임원 38명이 계열사나 연구소의 고문·자문역 등으로 재위촉됐다.
이들에게 책정된 연간 보수 기준액을 합산하면 56억9520만 원에 이른다. 다만 이는 위촉된 인원별 연간 보수 기준액을 모두 더한 금액으로, 실제 지급된 보수 총액은 아니다. 각 임원의 위촉 시기와 재직 기간도 서로 다르다.
금융지주별 재위촉 인원은 KB금융이 10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BNK금융 9명, 신한금융 7명, JB금융 5명, 우리금융 4명, iM금융 3명 순이었다.
KB금융은 퇴임한 지주 임원 10명 전원을 경영자문역으로 위촉한 것으로 나타났다. 윤종규 전 KB금융 회장에게는 연간 4억 원의 보수가 책정됐다.
우리금융은 내부 규정에 특임연구위원 직책을 마련해 퇴임 임원을 위촉했고, BNK금융에서는 퇴임한 사외이사가 계열사 자문위원으로 자리를 옮긴 사례도 확인됐다. 다만 우리금융그룹에 따르면 특임연구위원은 내부 규정에 따른 집행임원으로, 일반적인 퇴직자 예우 성격의 고문·자문직과는 다르다.
김 의원은 이들 고문·자문역의 역할과 보수가 외부에 충분히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금융회사지배구조법상 임원이 아닌 고문·자문역은 임원에게 적용되는 보수·업무 관련 공시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금융회사 임원의 업무별 내부통제 책임을 명시한 책무구조도에서도 빠질 수 있어 실제 경영에 관여하더라도 책임 소재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김 의원은 퇴임 임원에 대한 예우 관행이 불투명하게 운영될 경우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문제도 제기했다.
이에 금융당국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지배구조 개편 논의를 현직 경영진뿐 아니라 퇴임 이후의 인사·보상 체계로 확대할 가능성이 열렸다.
다만 고문·자문역 위촉 기준이나 보수 공시 확대, 책무구조도 적용 여부 등 구체적인 제도 개선 방안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