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실종자 수색과 권리침해 관련 사실을 확인하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이른바 사설탐정을 찾는 이들도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의뢰인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불법 행위까지 서슴지 않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민간조사업의 제도적 관리와 사생활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2020년 '탐정'이라는 명칭의 사용이 합법화된 지 6년이 지났다. 하지만 일부 업체의 영업 행태는 과거 불법 심부름센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AI 이미지.
2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대강당에서는 '국회 공인탐정법안 공청회에 따른 입법 추진 전문가 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간담회에는 최순호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를 비롯해 학계와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해 사설탐정 제도의 실질적인 법제화를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최 교수는 이날 간담회에서 "이미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적법한 사실조사 수요와 시장을 '적법성·전문성·책임성' 아래 정비해야 한다"며 관련 입법 필요성을 강조했다. 참석자들도 불법 심부름센터 등 음성화된 민간조사업을 투명한 제도권으로 편입하고, 국민의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이날 논의된 공인탐정법안은 공인탐정에게 수색 등 강제처분권이나 특별한 정보접근권을 일절 부여하지 않는 것을 뼈대로 한다. 업무 범위도 실종자와 도난·분실 재산의 소재 확인, 범죄 피해 및 권리침해 관련 사실조사, 전문자격자의 의뢰에 따른 사실관계 자료 확인 등으로 제한하도록 했다. 특히 가정폭력·스토킹 등 범죄 피해자나 보호대상자의 소재 정보, 위해가 우려되는 연락처는 의뢰인의 권리 유무와 관계없이 제공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2020년 이후 3.4배 늘어난 사설탐정... 불법 추적·정보 제공 잇따라
이혼소송 중 장모 살해 및 아내를 납치한 20대 중반 남성 김아무개씨가 2026년 10월13일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탐정'이라는 명칭의 사용이 합법화된 지 6년이 지났지만, 일부 업체의 영업 행태는 과거 불법 흥신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뢰받은 정보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미행이나 개인정보 수집 등 불법 행위가 동원되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3일 국가데이터처의 전국사업체조사에 따르면 국내 '탐정 및 조사 서비스업' 사업체는 2020년 133개에서 2024년 447개로 4년 만에 약 3.4배 늘었다. 탐정이라는 명칭을 내걸고 영업할 수 있게 된 데다 과거 불륜이나 가출 등 가정사에 집중됐던 의뢰가 실종·사기·스토킹은 물론 기업 횡령과 해킹 피해 확인 등으로 확대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즉 '탐정'의 명칭이 합법화되면서 수요와 시장이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시장이 커짐에 따라 사설탐정이 의뢰인의 요청에 따라 배우자를 미행하거나 소재 정보를 제공했다가 처벌받는 부작용 또한 커지고 있다.
제주지법은 2022년 12월 9일 이혼소송 증거를 확보하려 피해자를 11시간27분 동안 미행한 사설탐정과 의뢰인에게 각각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탐정이 피해자의 점포와 아파트 주차장, 식당 등을 따라다닌 행위가 정당한 사실조사의 범위를 넘어섰다고 판단했다.
광주지법도 지난 7월 남편의 의뢰를 받고 아내를 미행해 위치 정보를 알려준 탐정에게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해당 정보를 전달받은 남편은 아내를 찾아다니다 흉기로 위협한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불법 행위가 배우자 추적에만 그치는 것도 아니다. 2025년 9월에는 다른 사기 피해자 600여 명에게 경찰에 '보이스피싱 피해를 봤다'고 허위 신고하도록 유도한 혐의를 받는 탐정 일당이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주식 리딩방 사기와 로맨스스캠, 가상자산 사기 등 일부 신종 사기 범죄가 전기통신금융사기에 해당하지 않아 피해 계좌를 동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보이스피싱 피해로 핑계를 댄 것이다.
최근 발생한 강력범죄에서도 사설탐정의 개입 정황이 포착됐다. 지난 11일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서 20대 김씨가 장모를 살해하고 아내를 납치한 사건과 관련해, 가족의 동선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사설탐정을 이용한 정황이 확인됐다. 사설탐정이 제공하는 정보가 범죄에 악용될 경우 피해자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대목이다.
강의 듣고 2시간 만에 취득도... 전문성 검증 어려운 탐정 자격증
유한회사대한법인특수자격협회에서 발급하는 '탐정' 자격증 취득 현황. ⓒ민간자격정보서비스
시장은 빠르게 커지고 있지만 탐정의 전문성을 검증할 공적 장치는 사실상 부재하다. 자격 취득 경로가 다양해지는 가운데 자격증의 실효성과 신뢰도를 담보할 통일된 기준도 마련되지 않아 제도적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간자격정보서비스(PQI)에 등록된 탐정 관련 민간자격은 2020년 16개에서 올해 8월 135개로 6년 새 8배 이상 증가했다. 현재 국내에서 발급되는 탐정 자격증은 모두 등록 민간자격증으로, 국가가 공인한 자격과는 다르다. 자격을 발급하는 협회나 기관마다 시험 방식과 평가 기준이 달라 자격증만으로 실제 조사 역량을 판단하기 어렵다.
일부 온라인 과정은 강의를 수강한 뒤 2~3시간 만에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공된 기출문제 20개 가운데 19개가 실제 시험에 그대로 출제된 사례도 확인됐다. 반면 민간조사 전문가 자격(PIA) 계열 일부 시험은 5과목을 125분 동안 치르고 과목별 40점 이상, 평균 60점 이상을 받아야 합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자격증별 평가 기준에 차이가 있다. 자격 취득에 필요한 난도와 검증 수준이 제각각인 만큼 자격증 보유 여부만으로 전문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격 취득 현황을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민간자격정보서비스에서 탐정 관련 자격의 최근 5년간 접수·응시·취득 인원과 합격률이 모두 0으로 표시되는 등 관련 통계만으로는 자격증의 변별력이나 실제 취득 규모를 확인하기 어렵다.
현재 국내에는 사설탐정, 즉 민간조사업을 직접 규율하는 법률이 없다. 탐정의 자격 요건, 영업 등록, 조사 가능 범위, 개인정보 처리 기준, 의뢰인 보호와 손해배상 책임을 정한 통합 법률도 마련되지 않았다.
2005년 제17대 국회부터 탐정업 관련 법안이 반복적으로 발의됐지만, 지금까지 법률로 제정된 사례는 없다. 제16대 국회 이후 제21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관련 법안이 11차례 발의됐으나 모두 소위원회 회부 상태에 머무른 뒤 폐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