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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참전군인들에게 바란다
ⓒ한겨레

이제는 거장이 된 홍상수의 영화 중에 '생활의 발견'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 안에는 정말 빛나는 대사가 나온다. 주인공의 선배가 한 말인데 "우리 사람되기 힘들어. 하지만 우리 괴물은 되지말자"라는 대사가 그것이다. 사람과 괴물의 기준과 경계가 무언지는 불분명하다. 아무튼 이 말은 내 가슴 속에 깊이 각인됐다.

가슴 속 깊이 각인됐던 대사가 생각난 건 고엽제전우회 등 베트남전 관련단체들 때문이었다. 더 정확히 말해 7일 오후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베트남전 관련 사진전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 리셉션 행사가 고엽제전우회 등의 단체들의 방해로 취소되었기 때문이었다. 고엽제전우회는 "평화박물관이 월남전 참전 용사를 양민 학살자로 둔갑시켜 명예훼손을 했다"고 반발했다고 한다. (베트남전 학살 피해자 방한...고엽제전우회 "종북" 반발)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 민간인 학살 피해자인 응우옌티탄(여·55) 씨와 응우옌떤런(남·64) 씨가 대한민국에서 마주친 건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의 위로가 아니라 '반대 집회'였다. 한국군의 손에 가족과 이웃을 잃고, 자기 몸도 만신창이가 된 두 사람의 생생한 육성조차 성난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살아있는 증거를 애써 외면하는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의 심정을 이해하는 건 쉽지 않지만 추측은 된다.

아마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은 민간인 학살을 직시하고 인정하는 순간, 베트남전 참전이 불명예스러운 일이 되고 자신의 존재의의를 부정당하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베트남 파병이 국가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명분의 전쟁이었다는 점, 베트남전은 적군과 아군의 식별이 매우 어려운 전쟁이었고, 전선도 없었으며, 민간인들도 자주 적대행위를 했다는 점 등도 이들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근거들일 성 싶다. 하지만 이들의 신념이나 믿음과는 무관하게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됐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이런 사실을 인정하고 이제라도 베트남 사람들에게 사죄하는 용기를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에게 바라는 건 도저히 무리한 일일까?

이삼성이 쓴 '20세기의 문명과 야만(한길사, 1998)'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사실이다.

1995년 7월 14일 서울에서 열린 '평화통일을 위한 국제토론회'에는 브라이언 윌슨(Brian Willson)씨가 참석했다. 그는 베트남전쟁에 미군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다. 그는 스스로 양민학살과 파괴의 과정에 끼여 있었다. 그는 이후 줄곧 자책감으로 고통받았다. 이것이 그가 결국 반전평화운동에 뛰어든 계기가 되었다. 1980년대 레이건 정권이 중앙아메리카 니카라과의 사회주의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과거 소모사 독재정권의 친위대 출신들이 주도하던 반군(Contras)을 지원했다. 윌슨은 1987년 니카라과 반군들에게 미국이 무기를 공급하는 기차를 저지하기 위해 철로에 몸을 던져 두 다리를 잃었다. 그는 의족에 의지해 서울의 국제토론회에 참석했다. 그는 자신과 그리고 국가를 대신해 역사에 책임을 진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에게 무언가 말해주고 있다.

나는 베트남에 파병됐던 한국군 참전군인들이 브라이언 윌슨씨처럼 행동하길 기대하진 않는다. 다만 브라이언 윌슨씨의 각성과 깨달음을 배웠으면 하는 마음은 간절하다. 잘못에 대한 반성과 피해자에 대한 사죄는 인간의 존엄을 증명하는 증거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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