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가 국내 기업 최초로 '공개매수(텐더오퍼)' 방식을 도입해 외화채를 조기상환했다. 철강 업황 부진으로 현금흐름이 다소 둔화된 상황에서도 보유 현금을 과감히 투입해 선제적 부채 관리에 나선 것이다.
이번 조기상환은 단순한 고금리 이자 절감을 넘어, 향후 인도와 미국 등에서 수년에 걸쳐 진행될 대규모 해외 투자를 앞두고 신용등급을 방어하고 글로벌 자본시장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고도의 재무 전략으로 보인다.
포스코가 국내 기업 최초로 '공개매수(텐더오퍼)' 방식을 도입하며 선제적 부채 관리에 나섰다. 사진은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오른쪽 첫 번째)과 이희근 포스코 대표이사 사장(오른쪽 두 번째)이 4월20일(현지시각) 인도 1위 철강사 JSW스틸과 일관제철소 건설을 위한 합작투자계약(JVA)을 체결한 모습. ⓒ포스코
7월22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포스코의 이번 결정은 향후 예정된 굵직한 해외 프로젝트의 원활한 자금 조달을 위해 글로벌 자본시장 내 입지를 미리 다져두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포스코는 7월15일 외화채 10억 달러 가운데 3억6천만 달러를 조기상환했다고 밝혔다. 이 채권 만기인 2028년 1월보다 1년 6개월가량 앞당겨 갚은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공개매수 방식을 택한 것은 국내 기업에선 처음 있는 시도다. 채권 공개매수는 채권 보유자 전원에게 가격을 공개 제시한 뒤 되사들이는 방식으로, 단기간에 대량의 물량을 확보할 수 있고 특정 투자자와 비공개로 협상하는 것보다 과정이 투명하다.
이는 글로벌 투자 시장에서는 익숙하게 쓰는 부채관리 방법이지만, 국제 기준에 맞는 복잡한 절차를 따라야 하기 때문에 기업이 글로벌 투자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이상 따를 유인이 적었다. 포스코가 채권 공개매수 전담 조직을 갖춘 HSBC와 JP모건을 주관사로 선정한 것도 이런 절차적 부담 때문이다.
이번 공개매수는 고금리 시절에 발행한 비싼 빚을 선제적으로 정리한 것으로 풀이된다. 포스코는 2023년 1월17일 3년, 5년, 10년짜리 달러채 세 묶음을 한번에 발행했다. 각 채권의 금리는 5.625%, 5.750%, 5.875%로 이 가운데 5년 만기인 5.750%가 빌린 금액(20억 달러)의 절반(10억 달러)을 차지해 가장 비중이 컸다.
이번에 공개매수한 채권은 5년짜리로 10억 달러 가운데 3억6천만 달러를 보유 현금으로 상환했다. 포스코는 이를 통해 약 3100만 달러의 이자를 절감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23년 발행한 달러채 정리는 올해 초부터 진행됐다. 올해 1월 세 묶음 중 3년짜리(7억 달러)의 만기가 돌아오자 포스코는 금리 4.5~5.0%의 새 달러채 7억 달러를 채무상환자금 용도로 발행해 갈아탔다. 이번 공개매수도 고금리 시기에 쌓인 빚 묶음을 순서대로 정리하는 과정인 셈이다.
다만 공개매수 시점이 흥미롭다. 올해 1분기 포스코는 철강 업황 부진과 원료 가격 상승으로 영업이익률이 3.2%까지 떨어졌고, 벌어들인 돈보다 나간 돈이 많아 잉여현금흐름이 8824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순차입금도 2025년 4조2059억 원에서 올해 1분기 5조5350억 원으로 불어났다. 이 상황에서 약 5300억 원(3억6천만 달러)의 현금을 빚 갚는 데 쓴 것이다.
이 선택은 포스코의 투자 계획과 직결된다. 포스코는 인도 JSW그룹과의 합작 일관제철소, 미국 루이지애나 전기로 지분 참여, 미국 철강사 클리블랜드-클리프스 지분·설비 인수 등 수년에 걸친 대규모 투자를 앞두고 있다.
무엇보다 투자금의 상당 부분을 달러로 빌려 조달한다. 올해 1분기 포스코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 합작 사업에서 포스코 몫 투자비 36억4천만 달러 가운데 70%인 25억5천만 달러가 차입으로 마련돼야 한다.
결국 포스코는 큰돈을 빌리기 전에 조달 금리를 결정하는 신용등급과 글로벌 시장의 신뢰를 관리해야 하는 국면에 있다.
국내 신용평가 3사(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NICE신용평가)는 6월 정기평가에서 포스코의 등급을 AA+(안정적)로 유지하면서도, 순차입금/상각전영업이익(EBITDA)이 2~3배를 넘는 수준 등을 등급 하향 검토 기준으로 제시했다.
올해 1분기 포스코의 이 지표는 1.3배다. 아직 여유가 있을 때 미리 빚을 줄여 대규모 투자금을 빌릴 수 있는 여력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국제 조달시장에서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도 채권 공개매수의 효과다. 만기가 도래하기 전에 채권을 공개매수하는 것은 글로벌 수준의 재무 전략을 보유하고 있다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다. 이번 조기상환은 포스코가 만기에 따른 수동적 채무 상환 관행에서 벗어나, 시장 환경에 맞춰 부채를 스스로 설계하고 관리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 관계자는 "이번 조기상환은 금융비용 절감뿐 아니라 외화부채 구조를 보다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대외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재무 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