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내년 4월부터 16세 미만 청소년에게 고카페인 에너지 음료판매를 전면 금지하기로 하면서, 청소년 보호를 위한 새로운 규제 바람이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
소셜미디어(SNS) 이용 제한부터 에너지 음료 판매 금지까지 각국 정부가 잇따라 유사한 조치를 도입하고 있지만, 정작 청소년들이 빠져나갈 구멍이 많아 전문가들 사이에서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청소년들의 SNS 사용과 에너지 음료 구매 제한이 세계적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는 가운데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AI 이미지.
22일 로이터를 비롯한 외신보도를 종합하면 영국은 청소년에 대한 고카페인 에너지 음료 판매 금지조치를 의회승인을 거친 뒤 2027년 4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한다.
영국 정부의 이번 규제조치는 리터당 카페인 함량이 150mg을 초과하는 에너지 음료를 매장, 자판기, 온라인을 통해 16세 미만에게 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슈퍼마켓과 편의점은 물론 식당과 카페까지 모든 판매경로에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며, 위반한 업체에는 최대 2500파운드(한화 약 500만 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샤론 호지슨 영국 공중보건부 장관은 "고카페인 에너지 음료는 청소년들이 마시도록 둘 성격의 음료가 아니다"며 아동·청소년의 구매기회 자체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영국정부는 매일 약 10만 명의 아동·청소년이 고카페인 에너지 음료를 마시고 있으며, 이번 조치로 최대 4만 명 규모의 아동·청소년 비만을 예방하고 집중력 저하나 수면부족 같은 부작용을 막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럽에서 시작된 에너지 음료 규제
고카페인 에너지 음료에 대한 청소년 판매제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유럽의 리투아니아는 2014년 18세 미만에게 에너지 음료 판매를 세계 최초로 금지했다. 법률을 위반할 때 벌금을 부과한다. 라트비아는 2016년 리투아니아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18세 미만에 에너지 음료 판매를 법으로 금지했다.
2025년에는 유럽의회 조사국(EPRS)이 미성년자의 에너지 음료 소비 실태와 각국의 규제현황을 정리한 보고서를 내고 유럽연합 차원의 통일된 규제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 별도의 '에너지 음료 전면 판매 금지'는 아니지만, '어린이 식생활 안전관리 특별법'에 따라 학교와 학교주변 200m 이내 '우수판매업소'에서 커피와 에너지 음료 등 고카페인 함유식품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청소년의 하루 최대 카페인 권고 섭취량이 몸무게 1kg당 2.5mg으로, 에너지 음료 한 캔만 마셔도 이를 초과할 수 있다는 것에 근거를 두고 있다.
다만 한국의 경우 영국이 도입하는 전국 단위의 전면 판매금지와 달리 학교 인근이라는 공간적 제한에 그쳐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하다.
고카페인 에너지 음료가 매대에 진열돼 있다. ⓒ EPA=연합뉴스
SNS 규제, 호주와 인도네시아 이어 프랑스까지
소셜미디어(SNS)의 청소년 이용제한은 에너지 음료 제한보다 더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다.
호주가 지난해 12월 세계 최초로 16세 미만의 청소년의 SNS 사용금지를 법제화하면서 시작된 규제 흐름은 올해 3월 인도네시아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시행하면서 확산되고 있다.
영국, 슬로베니아, 폴란드, 스페인, 덴마크, 말레이시아 등도 청소년의 소셜미디어 규제를 검토하거나 도입할 채비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프랑스가 2026년 7월21일 상원에서 15세 미만의 청소년으로 하여금 SNS 이용을 금지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소셜미디어가 10대의 감정을 조작하는 알고리즘을 갖고 있어 문제라는 점을 제도 추진의 이유로 꼽았다.
아직 실효성 부족, 과학적 근거에 일각에선 회의적 시선도
SNS나 고카페인 에너지 음료들에 대한 이와 같은 규제들이 실제로 청소년 보호에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다.
특히 세계 최초로 SNS 금지법을 시행한 호주의 사례는 규제가 효과를 보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인다.
뉴캐슬대학교 연구팀이 영국 의학저널 '더 비엠제이'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SNS 금지법을 시행한 지 3개월 뒤에도 16세 미만 청소년의 SNS 사용은 통계적으로 의미 있게 줄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에서는 규제 대상인 16세 미만 청소년의 86% 이상이 여전히 최소 1개 이상의 규제대상 소셜미디어를 사용했으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본인 명의의 계정으로 접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령 확인 과정에서 나이를 스스로 입력하거나 셀프 사진을 업로드하도록 하는 형식적 절차에 그쳐 다른 사람의 계정을 빌리거나 가짜 계정을 만드는 우회 사례도 다수 확인됐다.
에너지 음료 규제에 대해서도 규제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커피 등 다른 음료와의 형평성 문제도 정교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에너지 음료규제에 나선 영국의 경우 대형 슈퍼마켓 체인들은 이미 2018년부터 자율적으로 16세 미만 청소년에게 에너지 음료판매를 금지해왔지만, 영국 청소년의 30% 가량은 여전히 고카페인 에너지 음료를 소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하원 과학기술위원회는 2018년 12월 "사회적 우려를 고려할 때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에너지 음료 판매 금지가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도 "다만 현재의 과학적 증거와 제도 구성만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에너지 음료판매의 법적 금지를 예방조치로 정당화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
영국 경제연구소(IEA)도 2020년 보고서에서 젊은이들이 카페인의 80% 이상을 차와 커피에서 얻으며 에너지 음료에서는 10.5% 가량만을 섭취한다는 분석을 제시하면서, 에너지 음료에만 규제를 가한다면 커피와 비교해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결국 SNS와 에너지 음료 모두 규제 자체의 상징성은 크지만 우회 소비와 형식적 집행에 머무른다면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