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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5월 28일 12시 05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5월 28일 15시 41분 KST

피해자의 표정

coffeekai via Getty Images
huffpost

‘우리는 피해자의 표정을 제대로 상상하지 못한다.’

가정폭력 관련 강연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가정폭력 상담가들을 교육할 때 상황극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한다. 두 사람이 무대에 서고, 가해자 역을 맡고 피해자 역을 맡는다. 상황을 주고 즉흥대사를 하게 한다.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어떤 말을 했을까? 어떤 행동을 했을까? 피해자는 어떻게 말하고 행동했을까? 이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재현해보게 하는 것이다. 이 교육을 받을 때 사람들은 가해자의 역할은 아주 잘 해낸다고 한다. 어떤 이유로 피해자를 때렸을지, 무엇이 억울한지, 어떤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는지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재현한다.

피해자의 역할을 맡으면 우뚝 멈춰선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당황한다. 피해자가 어떤 모습으로, 어떤 언어로 저항했을지 표현하지 못한다. 우리는 피해자가 목소리를 떨며 우는 모습은 쉽게 상상한다. 울면서 피해를 고백하는 모습. 그러나 그들이 피해의 한가운데에 놓였을 때, 어떤 과정을 거쳐 생존했는지는 상상하지 못한다. 그들은 무표정하게 피해 상황을 겪는 것이 아니다. 싸우기도 하고 회유하기도 하며 가해자에게 대화를 시도하기도 하고 웃어주기도 한다. 그렇게 살아남는다.

그래서 가해자의 서사가 더 쉽다. 피해자를 이해하는 것이 더 어렵다.

‘무서워서 웃었다’는 문장은 이상하게 읽힌다. 그러나 종종 그랬다. 위협을 느낄 때 나는 정색하거나 화내지 못하고 오히려 웃었다. 한번은 버스 정류장에서 시비가 붙었다. 상대는 손바닥이 두툼한 중년 남성이었다. 나와 동료의 레몬색 머리를 보더니 그는 대뜸 우리 얼굴을 가리키며 ‘싸 보이네, 비싸 보이네’ 하는 소리를 했다.
동료는 정색하고 화를 냈다. 고성이 오갔다. 나는 화를 내지 않았다. 친절한 목소리로 대화를 시도했다. 오해할 것 없이 순전히 그의 무례함만이 잘못인 걸 아는데도 불구하고 일부 서로 오해가 있었던 양 말을 끝냈다. 말이 통하는 척했다. 맞을까봐 무서웠고, 얼른 벗어나고 싶어서 웃었다.

위협을 느낄 때 여성들은 오히려 웃어왔다. 차별을 차별이라, 폭력을 폭력이라 말하지 않는 것을 생존 전략으로 삼았다. ‘무서워서 웃었다, 무서워서 그냥 넘어갔다’ 성폭력 피해자가 이렇게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다. 모순적이니까. 그러나 모순적일 수밖에 없다. 아무도 피해를 피해라고 인정해주지 않은 시간들이 있다. 그 시간 동안 여성들은 생존을 위해 가해자와 갈등하고 회유하고 거래해왔다. 그들이 그 시간 동안 가해자에게 웃어주었다고 해도, 태연히 대화를 나눴다고 해도 그걸 비판할 순 없는 일이다.

미투 운동불법촬영 범죄에 대한 규탄 시위, 비공개 스튜디오 촬영회 피해 폭로. 여성들은 연이어 성폭력 피해를 증언하고 있다. 떨리는 목소리로, 울면서 카메라 앞에 앉는다. 분노해서 욕을 하고 소리치고 고소장을 접수한다. 함께 걷고 웃고 노래하면서 증언한다. 다양한 표정과 목소리로 말한다. 이어지는 증언 앞에 사람들은 다들 판관이 됐다.

성범죄 피해가 성범죄 피해로 공감받기 위해서는 많은 질문을 통과해야 한다. 질문은 피해자의 자격을 묻는 것이다. 무서워서 웃거나, 싫은데 친절하거나, 거부했지만 다시 만났다는 모순된 태도가 나오면 피해자의 자격이 있는지 화낸다. 보통 사람들은 성범죄보다 자기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더 싫어하는 것 같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