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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루언서의 죄의식 없는 표절 : ‘몽땅 베끼면 어때? 돈 벌면 그만!’이라는 유튜브 세상에서 보호해야 할 건 누구일까?

'창작자 보호'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과학 유튜버 ‘리뷰엉이’가 자신이 올린 영상과 유튜버 김아무개씨의 채널에 올라온 영상을 비교한 자료. ⓒ유튜브 화면 갈무리

2018년 초, 유튜브를 돌아다니던 나는 어디서 많이 본 제목의 영상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2017년 샤이니의 종현이 세상을 떠난 직후 내가 이 지면에 썼던 추모 칼럼 ‘종현이 남기고 간 빛을 기억하며’라는 제목을 단 영상이었다. “제목을 따온 건가…? 썩 유쾌하지는 않은데.” 영상을 클릭해본 나는 기함을 금치 못했다. 여기저기에서 긁어온 종현의 사진들 위로, 내가 쓴 칼럼이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자막으로 흐르고 있었다. 충격을 받은 나는 같은 제목의 영상이 혹시 또 있는지 싶어 검색을 돌렸다. 같은 방식으로 제작된 영상이 다섯개가량 발견되었고, 영상마다 조회수가 십만 단위로 나오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저작권 침해 신고를 넣었다.

 

표절 그리고 발뺌

공신력 있는 언론에 기고된 글이었던 덕분이었을까. 다행히 내가 원저작자이며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유튜브는 다섯개의 영상을 모두 내렸다. 개중 몇몇은 나의 저작권 주장이 허위라고 이의를 제기하며 ‘사용된 사진들은 위키미디어에서 긁어온 것이고, 배경음악도 라이선스 프리로 풀린 무료 음악인데 네 저작권이 어디 있단 말이냐’라고 반문해 왔다.

나는 침착하게 ‘사진이나 음악에 대한 저작권을 말하는 게 아니라, 핵심 콘텐츠인 스크립트가 통째로 내 것 아니냐’라고 재반론했다. 영상은 무사히 내려갔다. 물론 기분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고인을 향한 나의 애도와 고민이 잔뜩 담긴 글을 누군가 무단으로 이용해 돈벌이를 하려 들었다는 사실 자체는 바뀌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래도 상황이 나았던 편이다. 최근 극장가를 휩쓸고 있는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은 나의 지인은, 자신의 블로그에 각 등장인물에 대한 인물 탐구 글을 써서 올렸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 고통을 온몸으로 돌파하는 송태섭에 대해, 너무도 완벽한 실력을 갖췄기 때문에 도리어 선수에게 필요했던 팀워크는 가장 늦게 배웠던 서태웅에 대해…. 퇴근 후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와 밤을 하얗게 태우며 적어 내려간 절절한 감상은 수많은 이들을 울렸다. 지인의 글은 인터넷 포털 메인에 걸렸고, 조회수는 3만회를 돌파했다. 모든 것이 좋았다. 지인의 글과 수상스러울 정도로 똑같은 내용의 유튜브 영상이 등장하기까지는.

유튜브 영상 표절을 인정하고 지난 15일 공식 사과한 경제 전문 유튜버 주아무개(왼쪽)씨. ⓒ유튜브 화면 갈무리
유튜브 영상 표절을 인정하고 지난 15일 공식 사과한 경제 전문 유튜버 주아무개(왼쪽)씨. ⓒ유튜브 화면 갈무리

영상이 올라온 곳은 일본 문화 관련 영상들로 어느 정도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한 유튜브 채널이었다. 해당 유튜버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 등장인물 한명 한명에 대한 인물 탐구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기획부터 흡사하지만 그중에서도 서태웅 편은 핵심 아이디어부터 논지의 전개까지 놀라울 정도로 지인의 글을 닮아 있었다.

심지어 해당 유튜버는 지인이 기억에 의존해서 쓰느라 잘못 적은 대사까지 똑같이 적었다. “그런 곳에 멍청하게 서 있으니까 거슬린다. 나올 테면 나와”로 번역되어 있는 대사. 지인은 기억에 의존해서 글을 쓰느라 “거기서 걸리적거리지 말고 들어올 거면 들어와”라고 적었고, 해당 유튜버 또한 같은 표기를 택했다. 일면식이 없는 두 사람이 같은 대사를 똑같은 방식으로 ‘잘못’ 기억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지인은 해당 채널에 댓글을 달아 해명을 요구했고, 상황을 눈치챈 다른 유저들도 표절 의혹에 해명하라는 댓글을 달았다. 그러자 해당 유튜버는 표절 의혹을 제기하는 댓글들을 야금야금 지우며 “자신은 베낀 적이 없으며 댓글을 삭제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해당 유튜버는 표절 제보를 받기 위해 지인이 올려둔 이메일로 직접 메일을 보냈다. 자신은 수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사람인데, 구독자 수백명에 불과한 브런치에 올라온 글을 베낄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구독자 수가 많은 것과 표절 여부 사이에 대체 무슨 인과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지인은 내가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유튜브에 저작권 침해 신고를 넣었지만, 유튜브는 저작권 관련 검토가 어렵다고 답했다.

나와 내 지인이 당한 횡액에 무슨 차이가 있길래 결과가 이렇게 달랐을까? 지인은 교묘하게 어휘를 바꾼 표절을 당했다는 점, 지인이 글을 올린 곳은 개인 블로그라는 점 정도가 전부다. 단순무식하게 복사-붙여넣기 표절을 당해서 입증이 쉬웠고, 저작권을 <한겨레>의 공신력으로 인증받을 수 있었던 내가 운이 좋은 사례였을 뿐, 사실 대부분의 표절이 내 지인이 당한 식으로 넘어갈 것이다.

짱짱한 법무팀을 갖춘 대형 콘텐츠 회사가 아닌 이상, 개인이 저작권 침해를 인정받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까. 플랫폼 입장에선 이용자들의 조회수가 많이 나오는 게 우선이니, 개개인이 제기하는 표절 주장에 크게 대응하지 않는다. 그러니 일단 교묘하게 베끼고, 걸리면 우기면 된다. 표절을 입증하는 건 시간과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니, 그때까지 조회수를 바짝 당겨서 돈과 인지도를 벌면 그만인 것이다.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유튜브 세상’

최근 유튜브에서는 잘나가는 다른 유튜버의 영상을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이용해 고스란히 베껴와 수익을 창출하던 유튜버 김아무개씨가 폭로를 당한 뒤 채널을 폭파하는 일이 생겼다. 유튜버 김씨는 심지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해 ‘제2의 월급 벌기’가 가능하다는 강의를 하고 다녔다.

김씨만 그런 게 아니었다. 김씨가 사용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개발한 회사의 대표 현아무개씨는 자사의 프로그램으로 히트한 영상의 스크립트를 베낄 수 있는 방법을 강의하고 다녔다. 김모씨를 유튜브로 인도한 유명 경제 유튜버 주아무개씨 또한 표절하는 법을 홍보한 정황이 속속 포착되었다.

일단 조회수를 올려서 돈을 벌면 그만이라는 사람들의 표절이 판치는 세상에서, 애정을 담아 공들여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오래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오리지널리티는 쉽게 사라질 테고, 끝내 쭉정이만 넘치는 판이 되겠지. 애초에 돈에 눈이 멀어 양심을 저버린 이들에게 자정을 기대할 수는 없으리라.

그렇다면 남은 건, 플랫폼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할 것을 요구하는 것뿐이다. 자신들의 플랫폼을 어디서 본 듯한 쭉정이만 넘쳐나는 폐허로 만들고 싶은 게 아니라면, 지금이야말로 콘텐츠 제작자들을 보호하는 데 더 적극적으로 나설 때다.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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