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사건 변호사로 살다 보면, 이따금 세상의 분노와 법정의 진실이 엇갈리는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마약 혐의로 수사선상에 오른 상태에서 해외로 도피했다가 체포된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씨가 2025년 12월26일 경기도 안양시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대중의 공분을 산 판결 하나가 있었다.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이자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황하나씨가 마약류 관리법 위반 혐의로 벌금 4000만 원을 선고받고 석방된 일이다. 이미 과거에 동종 전과로 실형을 살았던 데다, 수사가 시작되자 해외로 출국해 캄보디아에서 체포되어 송환되었다는 자극적인 소식까지 더해졌다.
세상은 이를 두고 ‘돈과 배경이 만든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날 선 비난을 쏟아냈다. 물론, 대부분은 실제 사건 내용이나 재판 과정에서 밝혀진 진실에는 큰 관심이 없다. 많은 경우, 우리 사회의 ‘비난’은 ‘이해’를 전제로 하지 않고 이뤄진다.
법정에 선 피고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변호사의 시선으로 해당 판결문을 찬찬히 뜯어보면, 그 이면에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재판부는 그녀가 필로폰을 사용한 양이 비교적 소량이었고, 본인이 투약하기 위함이 아니라 지인의 부탁으로 투약해 준 점에 주목했다. 무엇보다 세상이 ‘도피’라고 비난했던 그녀의 해외 출국에 대해, 재판부는 “수사 회피의 목적이라기보다 사회적 관심과 중압감에서 도피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재판 과정에서는 그녀의 억울한 모습들이 드러나기도 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그녀에 관해서 자극적인 기사가 쏟아져 나왔지만, 실제로 그녀는 거물급 마약상도 아니었고, 캄보디아 유흥업소나 해외 범죄 조직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심지어 어린 연하남과 결혼을 했다거나, 아들을 출산했다거나 하는 기사의 내용도 전부 거짓말이라는 것이 재판 과정에서 밝혀졌다. 하지만 진실을 대변하는 기사는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
최근 재벌가 3·4세들의 마약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이들을 향한 대중의 시선은 몹시 싸늘하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조기 유학 시절 부모와 떨어져 겪은 지독한 외로움과 심리적 취약성, 그리고 풍족함 속에서 형성된 기형적인 하위문화를 원인으로 지적한다.
필자 역시 구치소에서 부유한 환경의 의뢰인들을 만날 때마다 그 화려한 포장지 속에 감춰진 지독한 결핍을 본다. 남부러울 것 없는 재력과 배경을 가졌지만, 정작 가장 든든해야 할 가족의 따뜻한 보호막 없이 타국에서 홀로 성장해야 했던 아이들. 그 텅 빈 마음의 구멍을 마약은 영리하게도 잘 파고든다. 이들에게 돈이란 마약을 쉽게 구하게 해 주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평범한 일상의 행복으로부터 자신을 철저히 고립시키는 ‘가장 화려한 감옥’이기도 하다.
필자의 졸저 <나는 왜 마약 변호사를 하는가>의 ‘생중계되는 연예인 마약 사건’ 파트에서 나는 우리 사회의 잔인한 관음증을 지적한 바 있다. 유명인이나 재벌가 자제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마약 사건은 실시간으로 생중계되고, 대중은 그들의 추락을 하나의 오락거리로 소비한다. 평범한 중독자들도 버텨내기 힘든 것이 단약의 과정인데, 온 세상이 나의 실패를 조롱하고 감시하는 지옥 같은 중압감 속에서 어떻게 제정신으로 치료에 전념할 수 있겠는가.
마약은 축축하고 어두운 여관방에서도, 강남의 최고급 펜트하우스에서도 똑같이 인간의 영혼을 갉아먹는 평등하고 잔인한 질병이다. 누군가에게 내려진 벌금형은 특권층을 향한 맹목적인 봐주기가 아니라, 사회적 압박에 짓눌려 살던 연약한 한 개인의 억울함을 법이 귀 기울여 준 결과일지 모르겠다.
우리 사회가 분노의 안경을 잠시 벗어둔다면, 그 화려함 뒤편에서 홀로 약물과 싸우고 있는 외로운 사람의 민얼굴이 보인다. 그들에게 도움 되는 일은 광장 가운데 세워 퍼붓는 질타가 아니라, 고립에서 빠져나오도록, 실수를 바탕으로 한 번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조용히 지켜보는, 관용 어린 시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