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No 플라스틱' 지금껏 본 적 없는 종이 화분이 탄생했고, 사는 게 힘든 우리에게 큰 위로까지 건네고 있어 왈칵 눈물이 흐른다

불멍 못지않은 풀멍.

 

종이 화분 루비가 세운상가에 '비밀정원'을 콘셉트로 한 '루비마트'를 열었다. ⓒ허프포스트코리아
종이 화분 루비가 세운상가에 '비밀정원'을 콘셉트로 한 '루비마트'를 열었다. ⓒ허프포스트코리아

요즘 들어 일상이 자주 무기력해진다. 계절이 추워진 탓일까, 일이 바빠진 탓일까. 생각의 환기가 필요한 시점에 내 두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식물’이다. 큰돈을 들이지 않아도 되고, 매일 같이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 그저 책상 혹은 베란다 한편에 자리만 마련해 주면 되니 얼마나 간단한가. 하지만 최소한의 관심은 디폴트다. 그간 많은 ‘반려 식물’들을 떠나보낸 나는 소위 말하는 ‘식물 킬러’에 가까웠다.

첫 번째 팝업으로 진행된 '루비편의점'. ⓒ루비마트 인스타그램
첫 번째 팝업으로 진행된 '루비편의점'. ⓒ루비마트 인스타그램

식물 킬러인 나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은 것이 있었으니 바로 종이 화분 ‘루비’다. 작년 가을, 연희동을 돌아다니다가 루비의 팝업 공간 ‘루비마트’를 발견했다. ‘정음전자’라고 적힌 간판과 달리 건물 내부에는 초록색 식물과 형형색색의 종이 화분이 가득했다.  

임진아 작가의 작품. ⓒ루비마트 인스타그램
임진아 작가의 작품. ⓒ루비마트 인스타그램

 “종이로 만든 화분이라고? 물에 다 젖는 거 아냐?”

강한 호기심이 생긴 나는 공기 정화 식물 마리안느를 품에 안고 집에 돌아왔다. 하지만 나는 식물 킬러가 아니겠는가. 1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마리안느는 죽었고 새로운 식물이 필요해졌다.

세운상가에 새롭게 문을 연 루비마트. '비밀정원'을 콘셉트로 전시 및 제품 판매를 진행 중이다. ⓒ허프포스트코리아
세운상가에 새롭게 문을 연 루비마트. '비밀정원'을 콘셉트로 전시 및 제품 판매를 진행 중이다. ⓒ허프포스트코리아

자연스레 루비마트를 검색했고, ‘비밀정원’이라는 콘셉트로 세운상가에 새롭게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세운상가 322호에서 종이 화분 루비를 직접 만든 하주미 대표와 루비마트를 기획한 정혜윤 마케터, 임수민 사진작가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받았던 위로를 나누기 위해

ⓒ허프포스트코리아
ⓒ허프포스트코리아

회사 ‘루비’를 세운 하주미 대표는 본래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에서 디자인 기획자로 일했다. ‘나만의 일을 해야겠다’라는 결심이 생겨 루비를 만들었지만 당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위로를 받았고, 본인이 받은 위로를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며 사는 것이 삶의 모토가 돼버렸다고 전했다.

“‘루비’라는 회사 이름 역시 우리 삶이 정제되지 않은 원석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예요. 거칠거칠한 원석은 때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위로를 건넬 수도 있죠. 원석 같은 우리 삶이 보석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루비’라고 이름 지었어요"

 

종이 화분, ‘루비’의 탄생

평소에도 친환경에 관심이 많았던 하주미 대표. 하지만, 종이 화분을 만들게 된 것은 특별한 계기 때문이었다. 특수학급의 장애인들에게 찾아가 원예 수업을 하는 자원봉사를 하다가 화분의 형태에 대한 고민이 생긴 것.

다양한 색깔을 지닌 페이퍼루비. ⓒ루비
다양한 색깔을 지닌 종이 화분 루비. ⓒ루비

“깨지지 않고 가볍고 무엇보다 안전하잖아요. 직접 그림도 그릴 수 있으니 여러 가지 활동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종이 화분 ‘루비’를 만들게 됐어요.”

하주미 대표는 종이 화분 루비를 제작하면서 불필요한 플라스틱이나 비닐 사용을 최소화했다고 전했다. 종이 화분을 평면도 형태로 제작해서 소비자가 직접 접어 완성하게끔 구성한 것이다. 간단히 조립한 후에 모종 화분 채로 종이 화분 안에 넣으면 완성된다. 마치 일종의 놀이처럼 느껴질 정도다.

구매자가 직접 종이접기 하듯이 제품을 접어 완성하는 형태. ⓒ루비
구매자가 직접 종이접기 하듯이 제품을 접어 완성하는 형태. ⓒ루비
페이퍼루비. ⓒ루비
종이 화분 루비. ⓒ루비

종이 화분이 물에 젖지는 않을까? 하주미 대표는 “종이 양면에는 방수 코팅이 되어 있어 물에 닿아도 젖지 않아요”라며 “최대 1~2년까지 쓸 수 있어요”라고 전했다.

 

‘루비마트’를 통해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다

종이 화분 루비는 온라인으로 판매를 이어오다 작년 9월 팝업 ‘루비마트’를 통해 처음으로 직접 소비자와 마주했다. ‘식물편의점’이라는 콘셉트로 기획되어 8팀의 아티스트와 콜라보 작품을 제작해 전시하고 종이 화분 루비를 판매했다.

하주미 대표는 루비마트를 통해 가능성을 엿봤다. 하주미 대표는 “루비마트를 찾은 손님들이 식물과 종이 화분을 별개로 보지 않고 의인화하듯이 하나로 봐주셨어요. 공간이 일회성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계속 지속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세운상가에서 1년 동안 매장 겸 팝업을 열게 됐어요”라고 전했다.

 

위로를 건네는 ‘비밀정원’으로 거듭난 ‘루비마트’

'비밀정원'을 콘셉트로 꾸민 루비마트 전경. ⓒ허프포스트코리아
'비밀정원'을 콘셉트로 꾸민 루비마트 전경. ⓒ허프포스트코리아
임수민 사진작가, 정혜윤 마케터, 하주미 대표. ⓒ허프포스트코리아
임수민 사진작가, 정혜윤 마케터, 하주미 대표. ⓒ허프포스트코리아

세운상가에 새롭게 문을 연 루비마트의 콘셉트는 ‘비밀정원’이다. 루비마트를 기획한 정혜윤 마케터는 6평 남짓한 공간을 보자마자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이 떠올렸다고 한다. 영화 속 아파트 내부에 식물이 가득한 장면이 마치 ‘맥시멀리스트의 방’ 같았고 이를 레퍼런스 삼아 직접 공간을 꾸며나갔다.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스틸컷. ⓒ찬란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스틸컷. ⓒ찬란

루비마트의 주요 키워드로는 ‘위로’를 꼽았다. 평소 인스타그램에 고민과 생각이 담긴 긴 장문의 글을 적어 게시하던 임수민 사진작가는 자신의 글이 다른 이에게 뜻밖의 위로를 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들은 루비마트를 찾은 사람들이 익명성을 빌려 자신의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위로의 말을 함께 건넬 수 있도록 구성했다.

사람들의 고민이 담긴 종이 화분 루비. ⓒ허프포스트코리아
사람들의 고민이 담긴 종이 화분 루비. ⓒ허프포스트코리아

 

“정말 신기하게도 포스트잇에 고민을 쓰고 난 후 사람들의 표정이 조금은 홀가분해 보였어요. 루비마트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었어요” 

- 임수민 사진작가

고객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여자친구를 따라온 남자 손님은 머뭇거리다가도 펜을 들자 그 누구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을 써내려나가는가 하면, ‘열정이 식었다’라며 고민을 적은 손님은 강렬한 빨간색 화분을 골라 기쁜 표정으로 매장을 나섰다고.

루비마트에서 실제로 작성된 고민. ⓒ허프포스트코리아
루비마트에서 실제로 작성된 고민. ⓒ허프포스트코리아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잊고 살기가 쉬운 것 같아요. 루비마트를 찾는 이들은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식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했어요”

- 정혜윤 마케터

 

‘식물 킬러’여도 좋아

인터뷰가 끝나고 나 역시 포스트잇에 고민을 적어 벽에 붙였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고민이 담긴 종이 화분들을 둘러보다가 초록색 화분이 눈에 띄었다. ‘회사에 가기 싫어요’라고 적힌 고민 옆에는 ‘저도요! 그런데 회사에 가지 않을 만큼 즐거운 일이 있지 않다면 회사도 꽤나 갈만한 것 같아요’라는 위로의 말이 적혀 있었다.

눈에 띈 초록색 화분. ⓒ허프포스트코리아
눈에 띈 초록색 화분. ⓒ허프포스트코리아

웃음이 피식 나오는 초록색 화분을 구매해 사무실 책상 한편에 자리를 내줬다. 여전한 ‘식물 킬러’이자 출근길에 일을 떠올리면 걱정투성이인 사회초년생이지만 오늘도 제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종이 화분을 보며 힘을 내본다.

루비마트는 1년 동안 세운상가 322호에서 진행된다. 오는1월에는 ‘편지’를 콘셉트로 새로운 전시가 진행될 예정이다.

남유진 기자 : yujin.nam@huffpost.kr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허프 다른 기사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보이스 #환경 #여성 #종이 화분 #식물 #친환경 #루비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