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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례식은 즐겨 듣던 노래 틀고 드레스 코드는 노란색" 죽음을 능동적으로 준비하는 '웰 다잉'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2022년 기준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3.4%다.

기사와 무관한 자료 사진. ⓒ뉴스1/Getty
기사와 무관한 자료 사진. ⓒ뉴스1/Getty

"죽음을 앞둔 아버지에게 용기를 드리고자 잠시 시간을 할애하겠다. 눈을 조금만 돌리면 마당 창밖으로 빨간 꽃이 보일 거다. 그거 할머니다. 할머니가 거기 있으니까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죽음이라는 게 그냥 단순히 존재 양식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남자 조연상 수상 후 소감 발표하는 배우 조현철. ⓒJTBC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남자 조연상 수상 후 소감 발표하는 배우 조현철. ⓒJTBC

지난 5월 6일 '백상예술대상'에서 상을 받은 당시, 배우 조현철이 들려준 수상소감이다. 그의 말을 들은 이후 자꾸만 죽음에 대해서 곱씹어보게 됐는데. 특히 '죽음은 존재 양식의 변화'라는 말. 뭣도 모르고 으스스하다고 여겼던 죽음이 자연스러운 일이란 걸 새삼 깨달았고 종국엔 '나도 죽는다'란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이제 나에게 있어 죽음은 조금 다른 개념이 된다. 

그간 마냥 무겁다는 생각에 의식적으로 피하던 주제인 '죽음'에 대해 20·30대 주변인들과 처음으로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기사와 무관한 자료 사진 ⓒ뉴스1
기사와 무관한 자료 사진 ⓒ뉴스1

서울 사는 직장인 A씨(27)의 현재 가족 형태는 1인 가구다. 15년이 지난 뒤 본인의 가족 형태가 어떻게 달라질 것 같냐는 질문에 그는 "생활비와 가사노동을 분담할 동성 룸메이트와 고양이 두 마리"라고 답했다. 

본인이 비혼주의자라고 밝힌 A씨는 죽음에 대해 "항상 생각한다"며 "예전에는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올 것 같아서 무섭고 허무했는데 요즘은 죽음에서 의미를 찾는 걸 포기하고 받아들이려 노력 중이다"라고 털어놨다. 

B씨(34)의 경우 "종종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라며 "처음 죽음을 생각했을 때는 막연하게 무언가로부터 해방되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 이후로는 어쩐지 무서웠으며 시간이 더 흐를수록 '내가 죽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니 받아들이자'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에 나온 장례식 장면. ⓒ티빙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에 나온 장례식 장면. ⓒ티빙

죽음은 어쩌면 잘 살아온 인생의 마무리 단계와도 같으니 막연하게 두려운 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인 것. 하지만 죽음에 대해 깊게 고민해본 적 있는 A씨와 B씨 역시 막상 실제로 유언장을 작성하거나 자산 상속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다. 비혼주의 혹은 1인 가구인 사람(동거인·동성 연인 등이 있는 경우를 제외할 경우)의 경우 나이가 들었을 때 옆에 보호자가 없을 가능성이 클 거다. 그렇다면 그들은 자신이 죽은 뒤 장례 과정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 있을까?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에 나온 장례식 장면. ⓒ티빙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에 나온 장례식 장면. ⓒ티빙

이에 대해 A씨는 "동생이나 지인이 장례를 치러준다면 자연장을 부탁하고 싶다"며 "그들을 위해 장례 비용을 모아 놔야겠다. 동생이나 지인이 치러주지 못하고 남한테 부탁할 자산도 못 남기면 무연고자가 되어 화장돼 묻히겠지 싶다. 요즘은 장기 기증이나 의료연구를 위한 시신기증도 생각해보고 있는데, 하게 된다면 장례 걱정은 없지 않을까 싶다. (그 경우) 보호자가 없는 상황이라도 단체에서 알아서 처리해줄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결혼을 꿈꾸는 C씨(28)가 그리는 장례식장 풍경은 A씨와는 사뭇 다르다. 결혼과 자녀 계획이 있을 경우, 자연스럽게 자신의 장례는 가족이 치러줄 거라 생각하게 된다. C씨는 "자산 상속은 가족에게, 장례식은 절차에 따라 진행할 것 같다"며 "나는 결혼을 하고 싶지만, 결혼하지 않을 경우 형제자매나 친한 친구에게 미리 장례 절차와 관련된 부탁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에 나온 장례식 장면. ⓒ티빙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에 나온 장례식 장면. ⓒ티빙

최근 비혼주의·1인 가구가 급증하는 등 핵가족 형태가 붕괴되며 청장년층 역시 웰 다잉(Well-dying), 이른바 준비된 죽음에 눈을 돌리고 있다. '웰 다잉'은 금기시돼 온 죽음을 삶의 일부로 인정하고 원하는 죽음을 능동적으로 준비하는 개념이다. 전통적인 장례 문화를 거부하고 자신의 죽음을 적극적으로 상상하고 계획하는 이들이 늘어나며 '웰 다잉'은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선 개념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A씨는 자신의 장례식 풍경을 그리며 "장소는 병원 장례식장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오고자 하는 사람들만 나의 집에 모여서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가져가 나를 기억해줬으면 한다. 모인 사람들이 어색하지 않게 내가 듣던 플레이리스트도 재생해줬으면 좋겠다. 드레스 코드는 내가 좋아하는 색인 노란색 아니면 초록색. 장례식 행사 일정을 미리 짜서 말 잘하는 지인에게 진행을 부탁해 둬야겠다"고 말했다. 

'웰 다잉' 플랫폼 '아이백' ⓒ'아이백' 홈페이지
'웰 다잉' 플랫폼 '아이백' ⓒ'아이백' 홈페이지
'웰 다잉' 플랫폼 '아이백' ⓒ'아이백' 홈페이지
'웰 다잉' 플랫폼 '아이백' ⓒ'아이백' 홈페이지

인식의 변화에 따라 사전·사후 준비를 도와주는 플랫폼이 새롭게 등장하기도 했다. 웰다잉 플랫폼인 '아이백(iback)'은 별도의 공증 없이 음성 유언장 작성, 상속·기부 등 재산 관리, 사망신고와 각종 명의 변경 등 사후 행정 절차를 다루고 있다.

아이백에 따르면, 유언장을 작성하지 않고 세상을 떠날 경우 보호자가 그를 대신해서 수많은 결정을 내려야 하며 그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상속 정리, 후견인 지정 등 다양한 영역에서 가족끼리 뜻이 맞지않아 다툼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또한, 실제로 1억 원 이하의 상속 금액이 전체 상속 분쟁의 64% 이상을 차지하며 그 중에서도 1천만 원~5천만 원 사이의 금액이 가장 큰 비중(36%)을 차지할 만큼 상속 분쟁은 흔한 일이라는 것.

기사와 무관한 자료사진 ⓒ뉴스1
기사와 무관한 자료사진 ⓒ뉴스1

아이백 채백련 대표는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죽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다소 바뀌고 있지만 스스로 '좋은 죽음'을 준비하는 건 여전히 쉽지 않다"며 "유언장 작성은 삶을 중간 점검하는 인생 계좌와 같은 것"이라 설명했다.

채백련 대표는 해당 인터뷰에서 실제 '아이백' 사용자의 경우를 예로 들기도 했는데. 그는 "한 20대 사용자가 사후에 일기장을 소각해달라는 유언장을 남겼다. 또 자녀가 없는 사용자의 경우 형제 등 법적상속인이 아닌 주변 지인에게 재산을 주고 싶다고 유언장을 작성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부부+미혼자녀로 구성된 가구와 1인가구의 비율 변화 추이. ⓒ통계청 홈페이지
부부+미혼자녀로 구성된 가구와 1인가구의 비율 변화 추이. ⓒ통계청 홈페이지

준비하는 죽음이 먼 일이 아니란 건 실제 통계청 자료를 보면 더욱 여실히 와닿는다. 2022년 기준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3.4%로 세 집 중 한 집이 1인 가구인 셈이다. 이는 4인 이상 가구의 1.8배에 달하는 수치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1인가구 수는 700만을 돌파했으며 5년 전인 2016년(27.9%) 대비 5.5%p 증가한 반면 4인 이상 가구는 (216년 24.5%) 5.7%P 감소한 18.8%를 차지했다. 

비친족가구(친족이 아닌 남남으로 구성된 5인 이하 가족)의 수 또한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비친족가구는 지난 2016년 26만9444가구에서 2022년 42만3459가구로 15만4015가구(57.2%) 증가하기도 했다. 

황남경 기자: namkyung.hwang@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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