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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당신의 삶이 아니다"? 미국 MZ세대 노동자 절반이 하고 있다는 '조용한 사직'은 한국 직장인도 뼛속 깊이 공감할 내용이다

‘우리는 임금대로 행동한다'

조용한 사직 실천하는 사람들. ⓒ틱톡 화면
조용한 사직 실천하는 사람들. ⓒ틱톡 화면

“일은 당신의 삶이 아니다. 당신의 가치는 당신이 하는 일의 결과물로 정의되지 않는다.”

지난 7월26일 미국의 20대 엔지니어 자이들플린(이용자명)은 소셜미디어 틱톡에 17초짜리 영상을 올렸다. 그는 자신은 지금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 중이라 선언했다. 그는 “실제 일을 그만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주어진 일 이상의 노동과 열정을 기대하는 문화를 거부한다”고 말했다. 그는 “조용한 사직은 당신이 자기 일을 잘 참아낼 수 있을 때 가장 잘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이 영상은 게재된 지 3주 만에 조회수 820만을 기록했다. 이후 미국의 밀레니얼과 제트(MZ) 세대 사이에서 ‘조용한 사직’을 실천하겠다는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노동자 절반, 조용한 사직 중

자료 사진 ⓒUnsplash-Remy_Loz
자료 사진 ⓒUnsplash-Remy_Loz

“아침 8시59분, 사무실 자리에 앉는다. 전화가 500통이나 왔네. 정신없이 맡은 업무를 처리한다. 오후 4시59분이 되자 퇴근을 준비한다. 추가 업무를 해달라는 회사의 요구는 가볍게 거절한다. 시계가 5시를 알리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난다. 여러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굿바이.”

미국 직장인 베로니카가 ‘우리는 임금대로 행동한다’(act your wage)며 소셜미디어에 올린 ‘조용한 사직’의 방식이다. ‘조용한 사직’은 열심히 일하다 완전히 지쳐버린 상태를 뜻한 ‘번아웃’과 다르며,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워라밸’보다는 좀 더 방어적인 방식이다. 회사에서 주어진 업무를 충실히 하되 추가 노동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자신의 연봉 증가나 승진, 좋은 평가, 나아가 직장에서의 자아실현을 바라지 않는 업무 태도를 일컫는다.

ⓒ한겨레
ⓒ한겨레

지난 9월 여론조사 기관 갤럽은 ‘조용한 사직 현상이 사실일까’란 제목의 보고서를 내고, 미국의 일터에서 노동자 최소 50% 이상이 사실상 조용한 사직을 실천하고 있다고 밝혔다. 갤럽은 필요한 최소한의 일을 하고 심리적으로 직장에서 분리된 사람들이 미국 전체 노동자의 절반에 달한다고 했다. 미국 18살 이상 정규직 및 비정규직 1만5091명을 대상으로 지난 6월 조사한 결과다. 갤럽은 보고서에서 특히 35살 미만 노동자들 취업 만족도가 떨어지며 직장에서 발전할 기회를 얻는 것에 대한 기대치가 현저히 감소했다. 갤럽은 코로나19 세계적 대확산(팬데믹) 사태 이후 직원으로서 얻는 이점과 혜택이 상당히 사라진 것도 원인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미국 젊은 세대의 직장관이 크게 변화한 배경에는 전례 없는 고용 호조 상황이 있다. 최근 미국에서 일손 구하기가 어렵다는 말은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 약 4700만명의 미국인이 일터를 떠났다. 이는 미국 전체 노동력의 거의 4분의 1 수준이다. 올해에도 지난 2월 440만명, 3월 453만명이 일터를 떠나며 ‘대사직 시대’란 단어가 유행하기도 했다. 반면, 기업의 구인은 급격히 증가했다. 미국의 실업률은 올해 꾸준히 3%대를 유지하며 완전고용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7일 발표된 미국의 9월 고용보고서를 보면, 9월 실업률 3.5%이며 비농업 부문 신규고용 증가 수는 26만3천건이다. 전달 31만5천건에 비해 증가세가 다소 둔화했지만, 시장 예상치 25만건보다 높았다.

실업률 3.5%, 고용 호조가 그 배경?

사무실 풍경. ⓒ픽사베이
사무실 풍경. ⓒ픽사베이

미국 고용 상황은 지난해 말 크게 회복된 이후 올해 꾸준히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고용 시장에서 우월한 위치를 점할 수 있고, 이는 일터에서 추가 근무 강요를 거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하지만 단지 고용 상황 호조만으로 ‘조용한 사직’ 현상을 설명하기엔 충분하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최근 몇년 사이 업무 효율성을 추구하는 기업 문화가 자리 잡았고, 업무 외 개인 생활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장시간 노동과 업무 과몰입은 피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지난 8월 마리아 코도비츠 노팅엄대학교 조직행동학 부교수는 영국 <가디언>에 조용한 사직 유행은 팬데믹 이후 노동자들의 직업 만족도 하락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팬데믹 이후 직업 전반에 걸쳐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이 변화했다. 일이 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가치에 더 부합하는 역할을 찾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다만, 주어진 일만을 수행한다는 업무관이 개인에게 실제 도움이 될지 우려하는 전문가도 있다. 대부분의 직업은 동료와 협업하고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어느 정도 추가적인 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세라 쿠부릭은 13일 <유에스에이(USA) 투데이>에 “‘조용한 사직’이란 업무관이 과로하는 것에 대한 분노를 피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인지, 최소한의 일만 하기 위한 적당한 핑계에 불과한지 많은 논쟁이 있을 수 있다. 업무의 대부분은 인간관계인데 사람과의 관계에서 조용한 사직이 가능한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한겨레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열일하는 직원 구하기 힘든 시대, “기업이 새 패러다임 맞춰 가야”

 

주어진 업무 이상의 열정을 발휘하지 않는 노동관을 뜻하는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 현상이 미국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서 미국의 경제매체들은 기업이 새 업무 패러다임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지난 2일 미국 경영잡지 <포브스>는 지난 몇년 동안 직원들이 코로나19 세계적 대확산 등을 거치며 직장의 의미에 대해 이전과 다른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다며 기업은 직원들의 생각을 유심히 관찰해 새 경영 전략을 세우고 현장에 적용해야만 인력 유지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대사직 시대’(The Great Resignation), ‘조용한 사직’, ‘위대한 재고’(The Great Rethink) 등 이름을 뭐라고 붙이든 지난 수년간 크게 변화된 노동 환경 때문에 직원들은 직업의 의미를 스스로 되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난 7월 발표된 컨설팅기업 맥킨지의 ‘2022년 대감소 시대(the great attrition)에 관한 보고서’에서 노동자 40%가 향후 6개월 이내에 퇴사할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다” 또는 “거의 확실하다”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에서 지난해 4월부터 1년간 직장을 떠난 경험이 있는 세계 노동자 1만3382명은 사직 이유에 대해 ① 경력 개발과 발전 기회의 부족 41% ② 부적절한 보상 36% ③ 비전 없는 리더 34% ④ 의미 없는 업무 31% 순으로 응답했다.

맥킨지는 변화한 노동시장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직원 유형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기존처럼 ‘열일’하는 전통주의형 △(업무 방식에 대한 규율을 원치 않는) 자율성 추구형 △(육아 등과 업무를 병행하는) 재택 우선형 △학생이나 아르바이트생 △커리어를 더 이상 우선시하지 않는 여유만만형 등이었다. 기업들이 더는 ‘전통주의형’ 직원만을 선호해서는 인재를 구할 수 없다며 다른 유형들의 노동자를 적극 수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업과 관리자들은 다양한 계층의 노동자들이 현재 무엇을 원하며 그들을 어떻게 노동시장에 참여시킬지 들여다봐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포브스>는 ‘조용한 사직’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기업들의 전략 세 가지를 소개했다. △직원에게 학습 시간을 제공할 것 △직원들을 팀 업무에 참여시킬 것 △공감과 의사소통 등 대인관계 능력을 업무 우선순위로 정할 것 등이었다. 2019년 12월 여론조사 기관 갤럽은 직원 개발에 전략적 투자를 하는 기업은 인력을 유지할 가능성이 2배 높고, 수익성이 11% 향상된다는 조사를 내놓은 바 있다.

한겨레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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