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가 남성 간의 성관계를 처벌하는 형법을 폐지한다. 오랫동안 이 법의 폐지를 주장해온 성소수자(LGBT) 인권단체 등은 “인류를 위한 승리”라고 평가했다. 다만 싱가포르는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기 위한 개헌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는 21일(현지시각) 남성 간 성관계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 377에이(A)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의 사회적 관습을 법에 반영하기 위함”이라며 “(377A 폐지가) 남성 동성애자들에게 약간의 안도를 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리 총리는 “성인들 사이에서 동의한 사적인 성적 행동은 어떠한 법질서 문제도 야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폐지 시기는 언급하지 않았다.
1930년부터 '남성 간 외설 행위' 처벌
영국 식민지 시절인 1930년대에 도입된 377A는 ‘남성 간 외설 행위’를 처벌하도록 하고 있으며 특히 남성 간 성관계에 최대 징역 2년형을 내릴 수 있도록 한다. 싱가포르는 1965년 말레이시아연방에서 독립 후에도 이 법을 유지해왔다. 다만 2007년에 377A 폐지를 둘러싼 논쟁 이후로는 법 조항을 유지하면서도 실제로는 시행하지는 않았다.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은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인권단체 22곳은 공동성명에서 “어렵게 얻은 승리이자 두려움에 대한 사랑의 승리”라며 “늦었지만 싱가포르에서 국가가 인정한 차별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이정표이자 강력한 발표”라고 했다. 변호사이자 활동가인 레미 츄는 “법이 사라진다고 차별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평등을 향한 길은 멀고 우리는 첫발을 뗐다”고 말했다.
동성결혼에는 선 그어
글로벌 여론조사 업체인 입소스가 싱가포르 시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377A에 찬성하는 의견은 2018년 55%에서 올해 44%까지 감소했다. 동성 간 관계를 지지하는 여론은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날 리 총리는 동성결혼 인정에는 선을 그었다. 싱가포르 정부는 동성결혼 합법화 여지를 없애기 위한 개헌에 나선다. 리 총리는 “정부는 결혼의 법적인 정의를 바꾸는 것을 포함하는 우리 사회의 완전한 변화는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377A를 폐지하더라도 결혼제도는 지킬 것”이라며 “결혼제도 보호를 위해 헌법을 개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