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2019년 10월 27일 10시 02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11월 05일 17시 20분 KST

세계 최초로 '페미니스트 정부' 표방한 나라의 장관이 한국인에게 전한 말

Beyond Gender|스웨덴 3 - 성평등 장관 인터뷰

*편집자 주: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배운 성별 고정관념이 훗날 성차별이나 여성혐오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들이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성평등 교육의 중요성에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허프포스트가 직접 다녀온 인도, 스웨덴, 호주의 성평등 교육 현장 이야기를 4주 동안 전합니다.

스웨덴 정부는 ‘페미니스트 정부’다. 외부에서 붙인 별명이 아니다. 스웨덴 정부 스스로 규정한 이름이다. 2014년 스웨덴에서는 사회민주당이 주도하는 좌파연합이 정권 교체에 성공했고, 이들은 ‘페미니스트 정부’임을 내걸었다. 그 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페미니스트 정부’(A Feminist Government)

스웨덴 정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이 글자가 크게 등장한다. 그리고 “여성과 남성은 사회적으로나, 개인 일상에서나 동등한 권력을 가져야 한다. 성평등은 스웨덴 정부의 정책 결정부터 예산 분배까지 모든 것에 있어서 최우선순위”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관습적인 ‘남녀’라는 표현 대신 ‘여성과 남성’(women and men)이라고 여성을 앞세워 기술한 게 눈에 띈다.

약간 과장하자면, ‘세상에 이런 나라가 있어???’라는 충격을 받게 만드는 나라다. 하지만 놀라긴 이르다. 아래 사진도 봐야 한다.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와 장관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다. 장관 24명 중 12명이 여성이다. 스웨덴에서 여성 장관 비율이 50%를 처음달성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인 1994년이었다.

Kristian Pohl/ Government Offices of Sweden

*스웨덴의 성평등 지수

- 세계경제포럼 성 격차 지수 : 3위 (한국은 조사대상 149개 나라 중 115위) 
- 직장 내 성평등 실현을 점수로 매긴 유리천장 지수 : 1위 (한국은 29개 나라 중 29위)
- 여성 국회의원 비율 : 46.1%로 전 세계 7위 (한국은 17.0%로 190위 중 118위) 
- OECD 성별간 임금 격차 : 7.3%로 10위 (한국은 34.6%로 37개 나라 중 37위) 

허프포스트가 지난 9월 스웨덴을 찾았다. 성평등의 나라에서 성평등 교육을 취재하고자 했고, 간 김에 성평등 장관(Minister for Gender Equality)까지 인터뷰하는 것으로 약속이 돼 있던 차였다. 성평등 장관은 1980년생의 오사 린드하겐이다. 녹색당 소속인 오사는 스톡홀름시의회 의원 등을 거쳐 성평등 이슈를 책임지는 성평등 장관 자리에 올해 1월 취임했다.

오사를 만나러 가는 길, 설렘과 긴장된 마음이 교차한다. 구글맵에 주소를 찍고 장관 사무실이 위치한 건물 앞까지 도착했는데, ‘여기가 정부 부처라고?‘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소박하다. 경비 노동자 단 한명만이 건물을 지키고 있었고, 문에 적힌 ‘정부 기관’(Regeringskansliet) 등의 작은 글씨를 제외한다면 여기가 정부 부처임을 드러내는 간판은 보이지 않았다. 높은 담벼락도 없다. 스톡홀름에 머물면서 이 건물을 여러번 지나쳤건만 정부 부처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SANGA KWAK/HUFFPOST KOREA

들어가는 절차는 간소했다. 한국의 정부 부처/ 국회의사당에 방문할 때를 떠올리며 30분 일찍 도착했건만, 여권 확인에 드는 2~3분이면 충분했다. 오사를 기다리는 동안 레깅스 운동복을 입은 여성 등이 건물을 오가는 걸 볼 수 있었다. 이른바 ‘높으신 분들’이 업무를 보는 곳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자유로워 보였다.

약속 시간이 되자 오사가 언론 담당 비서와 함께 나타났다. 약간은 어색하면서도 반가운 인사를 나눴는데, 장관을 수행하는 비서의 캐주얼한 옷차림이 눈에 들어온다. 비서가 장관을 깍듯이 ‘모시는’ 한국의 익숙한 풍경과 달리 두 사람에게서는 수직적인 위계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 게 신선하다.

SANGA KWAK/HUFFPOST KOREA
오사 린드하겐 스웨덴 성평등 장관

동그란 테이블 앞에 마주 앉았다. 오사, 나, 그리고 비서. 3명이다. 비서는 “좀 더 페미니즘을”(MORE FEMINISM)이라는 문구가 적힌 나의 양말을 보며 “네 양말 마음에 든다”는 말을 건넸고, 딱딱한 분위기를 깨는 비서의 가벼운 농담(?)에 오사가 내 양말을 확인한 뒤 웃었다.

아래는 오사와 나눴던 이야기들이다.

- 스웨덴 정부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 정부’로 규정했다. 성평등을 왜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자든 남자든 스스로를 어떻게 규정하든, 모든 이는 동등한 기회와 인권을 가져야 한다.

또한, 성평등은 강력한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스웨덴에서는 많은 여성이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있다.(2018년 기준으로 스웨덴 여성의 고용률은 80.4%다. 유럽연합 국가 평균 67.4%를 훨씬 상회하는 수치다.)

만약 여성들이 모두 집에서 가사 노동만 한다면, 회사는 남성 인력만 이용해야 한다. 남성뿐만 아니라 사회 모든 구성원의 경험과 지식을 이용하는 게 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훨씬 도움이 되지 않겠나. (2017년 한국의 국회예산정책처에서도 여성고용률을 남성 수준까지 올리면 연평균 0.2%포인트씩 안정적으로 경제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 바 있다.

- 많은 이들이 스웨덴의 성평등 정책을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자리에 오기까지 수많은 논쟁과 후퇴, 진보 등 지난한 과정이 있었을 것 같다.

= 물론이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투쟁이 항상 있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올해 여성의 참정권 획득 100주년을 축하하고 있다. 여성들에게도 투표할 권리를 줘야 한다는 싸움은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큰 싸움이었다.

또, 70년대에 스웨덴 여성들은 보육을 위하여 열심히 싸웠다. 매우 중요했던 투쟁이다. 여성들의 운동으로 스웨덴은 ‘모두를 위한 공공 보육 시스템’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공공 보육 시스템은 육아를 하던 여성들이 노동시장에서 일할 기회를 제공했다. 스스로 돈을 벌어, 경제적 독립과 자유를 누리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SANGA KWAK/HUFFPOST KOREA
여성 참정권 획득 100주년을 축하하는 그림이 스톡홀름 국회 건물에 내걸려 있다. 그림 속 주인공인 커스틴 헤셀그렌(kerstin hesselgren)은 여성 참정권이 실현된 후 1921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사상 최초로 상원 의원으로 선출된 정치인이다. 

- 지난해에는 ‘동의’ 없는 성관계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법률이 통과됐다. 한국에서도 관련 법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높은데, 법안에 대해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

= 지난해 7월 1일부터 발효됐는데, 말 그대로다. 만약 성적 관계에서 명시적인 ‘동의‘가 없었다면 불법이 된다. 가해자의 폭력이나 위협이 없어도 유죄선고가 가능해 졌고 ‘과실 강간‘(negligent rape)과 ‘과실에 의한 성추행’(negligent sexual abuse)이 새로운 범죄 유형으로 도입돼 최대 4년형이 가능해졌다. 성폭력 관련 입법에 있어서 중요한 진전이라고 할 만하다.

이런 발전들로 인해 ‘이 정도면 된 거 아니야?’ ‘이제 스웨덴에서 여자와 남자는 동등한 거 아니야?’라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하지만 아니다. 스웨덴은 분명 세계에서 가장 진보한 나라 중 한 곳이지만, 우리 역시 갈 길이 멀다.

(스웨덴 정부는 홈페이지에서 △상장 기업 임원 중 여성은 3명 중 1명 정도에 불과하고 △여성 3명 중 1명이 파트 타임으로 일하는 등 아직 평등이 이뤄진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스웨덴 남성의 파트타임 직업 비율은 10명 중 1명이다.)

*성적 동의법 제정의 배경 

스웨덴에서는 2014년 남성의 고의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강간 사건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진 후, 강간법 개정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2014년 벌어진 사건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지인을 통해 만나게 된 여성과 남성은 남성의 아파트에서 성행위를 시작한다. 그러나 곧 남성이 과격한 행위를 했고, 이에 여성은 소리를 지르며 거부 의사를 표했다. 남성은 여성이 소리 지르는 모습에 더 과격하게 행동했고, 사건 후 여성은 샤워하는 척하면서 도망쳐 경찰에 남성을 신고했다.

남성은 법원에서 ‘여성이 거친 성행위를 즐긴다고 생각했고, 여성 또한 크게 저항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여성은 ‘남성이 더욱 공격적으로 변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더 저항할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이 사건에서 무죄가 나오자 스웨덴 사회 곳곳에서는 강간법 개정을 요구하는 집회가 이어졌다. 2014년 새롭게 출범한 ‘페미니스트’ 정부하에서 관련 예산 확충 등 오랜 준비 끝에 2018년 법안 제정이 이뤄질 수 있었다.(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국제동향, 홍희정 스웨덴 웁살라대학교 젠더연구센터 객원연구원의 글 참고) 

- 요즘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정책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을 종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여자아이들이 무엇을 입어야 할지, 누구랑 결혼해야 할지 강요하는 것도 폭력에 해당한다. 또한, 파괴적인 남성성의 규범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남자란 어때야 한다’는 생각이 달라져야 한다. 우리는 폭력적인 남성성이 사회 안의 폭력과 얼마나 큰 연관 관계를 보이는지 잘 알고 있다. 의회에 가서 이 문제의 중요성에 대해 많이 말하고,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SANGA KWAK/HUFFPOST KOREA

- 한국에는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도 많다. ‘페미니즘은 오직 여성만을 위한 것으로 이기적이다’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혹시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

= 흠. 내 생각에 페미니즘이란 우리 안의 ‘불공정함’을 발견하는 일이다. 사회 내에서 여자와 남자는 동등한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누구도 성별, 성적 지향, 종교에 따라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 같은 주장은 전혀 급진적인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생각하나?

= 물론, 물론이다(Definitely, definitely). (‘왜?’라고 한번 더 묻자) 내가 오히려 되묻고 싶다. 왜 여자는 남자와 동등한 기회를 가지면 안 된다는 것인가? 민주주의 사회의 구성원이 ‘여자는 동등한 기회를 가져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 그래도 ‘여자가 잘하는 일’, ‘남자가 잘하는 일’ 같은 게 있지는 않을까? “그래도 아이에게는 엄마가 필요하다”는 말은 한국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 글쎄다. 나는 아이를 정말 잘 돌보는 훌륭한 남자들을 많이 봐왔다. 자녀와 시간을 보내는 것은 굉장히 행복한 일이고, 남자도 그 기회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대체 ‘여자가 할 수 있는 일’,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무엇인가? 그럼 여자는 청소 본능을 타고난다고 말할 수 있나? 만약 어떤 사람이 무언가를 잘할 수 없다면, 성별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의 특성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피아노를 치는 데 있어서 ‘천재’가 될 수는 절대 없을 것이다. 성별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 그냥 내가 잘 못 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여자라 수학을 못 한다고, 남자만이 수학을 잘 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건 우리가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다.

SANGA KWAK/HUFFPOST KOREA

- 스웨덴 사회는 ‘남자‘, ‘여자‘라는 성별보다 ‘개인’이라는 것에 더 주목하는 것 같다.

= 그렇다. 나는 우리가 (여자 또는 남자가 아니라) 개개인이라고 생각한다. 한 개인으로서, 우리는 성별에 갇히지 않고 원하는 대로 인생을 살 수 있어야 한다. 성평등은 오직 여성에게만 적용되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의 능력 또한 믿어야 한다. 

약속한 인터뷰 시간은 단 30분. 공식 질문지가 다 마무리됐음에도 오사는 한국 여성의 인권 상황이 궁금한 듯 여러 가지를 물었다. 나는 그에게 한국의 낙태죄가 6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오사가 놀라며 말했다.

”와, 정말 잘됐다. 엄청 중요한 문제인데.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 거야?”

일면식도 없었던 먼 나라 장관의 기뻐하는 표정에 낙태죄 폐지를 환호하는 한국 여성의 얼굴이 겹쳐졌다. 왠지 뭉클해진 마음은 같은 여성이기에 느낄 수 있는 동질감, 연대감이라 이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스웨덴의 여성해방운동 

스웨덴의 눈부신 현주소 뒤에는 188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강력한 여성운동이 있었다.

스웨덴 사회보험청 책임연구원 등을 역임한 신필균씨의 저서 ‘복지국가 스웨덴’에 따르면, 1960년대만 해도 대부분의 스웨덴 여성은 풀타임이 아닌 반일 혹은 시간제 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한국과 유사하게, 여성들은 집에서 아기를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정과 직장에서 이중 역할을 감당하는 30~40대 여성을 비롯해 저임금 여성 노동자, 이주 여성 노동자 등이 단체로 성차별에 대항하는 운동에 나선 1970년대를 거치며 스웨덴 사회 전체가 크게 변했다.

여성들의 투쟁은 공공 보육 시스템 등 사회 개혁에 큰 영향을 미쳤고 ‘여성과 남성은 스스로 노동을 통해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직업과 육아를 동등하게 병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7세 미만 아이를 가진 스웨덴 직장 여성은 1960년대만 해도 약 30%에 불과했으나 1970년대 말에는 80%로 급증했다.

2011년부터 4년간 주한 스웨덴대사를 역임한 라르스 다니엘손(1953년생)은 책 ‘스웨덴은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사는가’에서 ”스웨덴 사회가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이었던 것은 아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여성이 집에서 가정을 돌보고, 남성은 가정을 부양하는 구조가 보편적이었다”며 ”스웨덴에서 아빠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규범은 지난 50~60년간 아주 크게 변화해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