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2019년 10월 26일 09시 00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11월 05일 17시 17분 KST

’라떼파파’들은 아이 키우기를 피하지 않는다

Beyond Gender|스웨덴 1 - 육아휴직 쓴 스웨덴 아빠 5명의 이야기

[지난 9월 허프와 만난 칼레 요셉손씨와 딸 요니.]

*편집자 주: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배운 성별 고정관념이 훗날 성차별이나 여성혐오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들이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성평등 교육의 중요성에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허프포스트가 직접 다녀온 인도, 스웨덴, 호주의 성평등 교육 현장 이야기를 4주 동안 전합니다.

“‘엄마가 쓴다’는 뜻이 담긴 ‘유모차’ 대신 ‘아이가 쓴다’는 뜻이 담긴 ‘유아차’를 쓰자.”

‘유아차’는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이 2018년 성평등언어사전 캠페인에서 제시했던 단어다. 이밖에 ‘아기차’나 ‘동차’라는 말도 국어사전에 있지만, 아직까지 육아가 ‘여성의 일’인 한국에서 아이가 타는 차는 곧 엄마가 모는 차로 간주된다.

스웨덴의 유아 젠더 교육을 취재하기 위해 스톡홀름에 머문 약 일주일간, 시내 곳곳에서 유아차를 밀고 다니는 이들을 서울에서보다 훨씬 많이 볼 수 있었다. 이들 중 반은 남성이었다.

olaser via Getty Images
스톡홀름 마리아광장에서 유아차를 밀고 다니는 사람들.

이들이 함께 산책할 수 있는 건 단지 법정 육아휴직 일수가 많아서만은 아니다. 자녀 한 명당 스웨덴의 유급 부모휴가(육아휴직) 일수는 한국보다 적다. 하지만 육아휴직을 실제로 쓸 때의 분위기는 한국보다 호의적이다.

물론 스웨덴에서도 ‘집에서 애 보는 남자는 출세를 포기한 것’이라는 인식,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고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 수는 매우 적으며, 이제는 남성에게도 육아의 기회와 책임이 주어진다. 지금은 남성도 여성만큼 장기간 육아휴직을 쓰는 것이 ‘평균‘이자 ‘보통’으로 받아들여진다. 이곳에서는 여성 파트너도 대부분 경제활동을 해서 남성이 휴가를 써도 수입이 줄어드는 비율이 높지 않고, 육아는 커플이 같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스웨덴에서 육아휴직은 자녀 한 명당 부모에게 최대 총 16개월이 주어지며, 아이가 만 8세가 될 때까지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의무사용일수’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각각 3개월이다. 나머지 10개월은 커플이 나눠쓸 수 있으며 둘이 동기간에 쓸 수도 있다. 동성, 비혼 커플에게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는 자녀 한 명당 부모 두 명에게 각각 최대 1년씩이 주어진다. 이 1년은 아이가 만 8세가 될 때까지 쓰지 않으면 사라진다. 최근 법률 개정으로 이달 1일부터 부부가 육아휴직을 동기간에 쓰는 것도 가능해졌다.

스웨덴의 남성들도 줄어드는 수입과 커리어 단절, 직장에서의 불이익 등을 우려해 1995년 처음 아빠에게 할당되기 시작한 ‘의무사용일수’를 쓰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2002년 육아휴직 쓴 직원에 불이익 준 고용주를 신고할 수 있고, 결원에 대한 대체인력 고용을 의무화하는 등의 제재 정책이 생기면서 비로소 육아휴직 사용 비율을 높일 수 있었다.

지난달 30일 한국에서 최초로 남성의 육아휴직 기간 1개월 의무화 법안이 발의됐다. 고용주 등에 대한 구체적인 제재 내용은 아직 포함되지 않았다.

유아차를 밀며 커피를 들고 다니는 모습으로 ‘라떼파파’라는 별명을 얻은 스웨덴의 아빠들로부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들에게는 제도뿐 아니라 일하는 부모들이 유연하게 노동시간을 쓸 수 있게 해주는 직장 문화와 사회 분위기가 좀 더 마련되어 있으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규율을 정하는 강한 남성’이라는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은 많이 사라져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래는 스톡홀름에서 만난 20~40대 아빠 5명의 이야기.

 

‘아빠가 아이를 맡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SUJEAN PARK/HUFFPOST KOREA
다비드씨의 아들은 스톡홀름 소재 크리스탈렌 유치원에 다닌다. 유치원의 한 외벽에 스웨덴판 '날씨 알려주는 돌' 설명이 붙어있다.

다비드 엑스트롬, 수리 기술자, 42세

″지금 3살인 첫 아이와 마찬가지로 곧 태어날 둘째도 육아휴직을 쓰고 아이를 돌볼 계획이다. 직장을 쉬고 집에서 애를 본다고 뭐라고 하는 말은 한번도 들어본 적 없다. 여기서는 아빠가 휴가를 내 아이를 종일 돌보는 게 별일 아니다.”

 

‘아빠들이 아이를 못 보는 건 아이 보는 법을 배우지 않아서다’

COURTESY OF Péter Tóth
"스톡홀름에는 부모와 아이가 함께 가서 시간을 보낼 만한 시설이 많다."

피에터 토트, 프로그래머, 33세

″엄마가 기저귀를 갈고 우는 아이를 달래는 동안 아빠는 그 옆에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 게 옛날 부모의 모습이었다. 남성들이 아이 보는 법을 배워보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나와 여자친구는 육아휴직 기간을 똑같이 반씩 나눠 쓰기로 했다. 여자친구가 처음 8개월 정도를, 내가 다음 8개월 정도를 쓰고 있는 중이다. 나와 여자친구는 모두 반반씩 주양육자가 되어보면서 평소에 쉽게 서로의 짐을 덜어줄 수 있게 됐다.

스톡홀름처럼 유아 관련 시설이 잘 되어 있는 도시들에는 (아직 어리거나 입학 대기 중이라) 유치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이 놀 수 있게 만들어둔 ‘열린 유치원’(öppna förskola)이 있다. 야외 놀이터, 장난감이 있는 실내 놀이 공간, 부모들을 위한 커피 등이 준비되어 있는, 아무때나 가서 이용할 수 있는 무료 시설이다. 상주 직원들이 있지만 주로 부모들이 직접 아이들을 데리고 논다. 아이는 그곳에서 혼자 놀 수도 있고, 다른 아이들을 만나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이런 안전한 갈 곳이 있다는 게 아이에게나 나에게나 아주 좋다. 지역마다 이런 ‘열린 유치원’에 배정된 예산이 있다.”

SUJEAN PARK/HUFFPOST KOREA
스톡홀름 쇠데말름에 있는 공원/놀이터를 찾은 아이들과 보육교사, 부모들.

″나도 아이도 밖에 나가고 싶어하기 때문에 점심은 되도록 밖에서 먹는다. 내가 다니는 직장은 육아휴직 기간 동안 정부로부터 지급되지 않는 급여의 나머지 부분(약 20~30%)를 지급해준다. 그래서 나는 운좋게도 자주 외식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편이다. 이런 정책을 가진 회사들이 가끔 있다.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시간과 혼자 있는 시간이 모두 필요한데, 아이를 키우면 둘다 갖기 힘들다는 게 유일하게 힘든 점이다.

내가 일하는 IT업계는 아빠가 아이를 보는 걸 좋게 보는 분위기이며 육아휴직을 쓰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육아에 관대하지 않은 문화를 가진 직장에 다니고 있거나, 혹은 스스로 뒤처진다고 느끼는 경우 육아휴직을 썼다가 커리어에 문제가 생길까 걱정하는 경우가 주위에 있기는 하다.”

 

‘언제든 육아휴직 쓰고 싶은 기간을 조정할 수 있다.’

COURTESY OF Jacob Helldén
"아직 풀타임으로 육아휴직을 쓴 적은 없지만, 매일 저녁마다 부지런히 아들의 변화를 따라잡았기 때문에 둘만 있게 될 시간이 두렵지 않다."

야콥 훌던, 인턴의, 27세

″원래는 나와 여자친구가 똑같이 반씩 나눠 육아휴직을 쓸 계획이었지만, 내 차례가 됐을 때 수유 문제가 생겨 2주 만에 직장으로 복귀했다. 당시 직장은 육아휴직을 매우 유연하게 쓸 수 있게 해주는 곳이었다. 그래서 육아휴직을 모유 수유가 끝난 뒤로 미루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또 육아휴직 기간을 하루가 아닌, 파트타임으로 쪼개 쓸 수도 있다. 최근에 이직한 새 직장에서는 내가 어린 아들이 있다는 걸 알고 면접 때 먼저 ‘육아휴직부터 쓰고 일을 시작해도 된다’고 알려줬다.

육아휴직 중에는 보통 오전 외출 때는 유아차를 밀고 동네 몰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오후 외출 때는 아이 키우는 친구들을 만나 카페에서 ‘피카’(커피와 담소) 시간을 가졌다.

물론 육아는 힘들다. 요즘은 남성 페미니스트 단체 ‘맨’이 주최하는 아빠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스웨덴 남자들은 자기 감정이나, 힘든 일을 말하는 걸 어려워한다. 나 역시 남성 친구들에게 육아를 비롯해 힘든 점들을 털어놓는 게 어렵다. 아빠 모임을 통해 좀더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고자 한다.”

 

‘아이에 관한 모든 것의 일부분이 될 수 있다.’

SUJEAN PARK/HUFFPOST KOREA
"처음에 모유수유를 했기 때문에 엄마와 더 가까웠지만, 내가 육아휴직을 쓴 이후 딸이 나에게 의지하는 비율은 20%에서 40%가 되었다."

칼레 요셉손, DJ 겸 클럽 프로모터, 41세

″단둘이 긴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서로를 잘 알게 된 느낌이다. 태어난 직후에는 모유 수유 때문에 아이가 거의 본성적으로 엄마와 가까이 붙어있고 싶어했기 때문에, 아빠로서 이런 유대감을 쌓을 기회가 있다는 게 매우 좋다. 아이가 처음 이가 났을 때 그걸 제일 처음 발견한 사람이 나라는 것도 좋았다. 아이에 관한 모든 것들의 일부분이 될 수 있다는 게 멋진 일이다. 물론 아이와 하루종일 있으면 어른과의 대화가 그립기는 하다.

‘라떼파파’라는 말은 스웨덴에서는 아주 예전에 쓰던 말이다. ‘라떼마마’라는 말도 나왔을 정도다. 유아차 밀고 다니는 사람들이 거의 다 커피를 들고 다니니 생긴 말 같다.

부정적인 시선은 받은 적 없다. 언젠가 아이가 아빠보다 엄마와 함께 있는 게 더 좋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나에겐 그게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졌다.”

 

‘보수적인 직장을 다니는 내가 육아 이야기를 많이 할수록, 전통적인 고정관념을 가진 나이든 남성이 많은 이 업계의 분위기도 바뀔 것이다.’

SUJEAN PARK/HUFFPOST KOREA
"아빠의 육아에 대해 흔히 하는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에게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으면,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답하는 때가 많다."

요나탄 브링엘손, 건설 컨설턴트, 27세

″육아휴직을 쓰지 않았다면, 그토록 작은 아이를 돌보는 게 얼마나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인지 절대 몰랐을 것이다. 또 집에서 아이와 단둘이 있는 시간 덕분에 지금만큼의 유대감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6개월의 어린 나이에도 아들은 내가 자기의 주양육자라는 사실을 아는 것 같았다.

아빠인 내가 육아휴직을 쓴다고 하면,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숨은 뉘앙스가 있는 말들을 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종종 있다. “이상하다”든지 ”왜 일을 안 하냐”는 말등이다. 건설업에 종사하는 윗세대 남자들은 아이를 키울 때 자신들이 집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쪽으로는 IT 등 다른 분야보다 몇 년씩 뒤쳐진 보수적인 업계 특징인 것 같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내 육아 경험담을 최대한 많이 이야기하려고 하는 편이다. 그게 미래의 동료들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 막상 길게 이야기를 이어가보면, 그들 역시 자기가 공격적인 뉘앙스로 대답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정말 남자가 애 보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냥 다들 하는 말을 무심코 따라했을 뿐이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사람들에게 자기 편견을 깨닫고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어줄 수 있다.”

SUJEAN PARK/HUFFPOST KOREA
스톡홀름 소재 이갈리아 유치원 벽에, '삐삐'의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등 스웨덴 작가들의 사진과 한 원아의 할로윈 주제 그림이 붙어있다.

유아차를 밀며 컵 홀더에 커피 한 잔씩을 꽂고 다니는 모습에서 생긴 별명인 ‘라떼파파’는 스웨덴의 성평등, 그리고 가족 중심의 정책과 문화를 상징하는 단어들이다. 50여년 전 경제성장기,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면서 저출산 문제를 겪은 스웨덴은 성평등과 복지를 저출산 문제 해결과 더불어 ‘더 나은 사회’로 가는 핵심 가치로 봤다.

1974년 육아휴직 제도가 생겼지만 가사와 육아를 오직 여성의 일로 간주하는 사회 분위기가 지금까지만큼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직장에서의 남녀 간 기회와 임금 격차로 인해 여전히 육아휴직을 여성이 몰아쓰고, 이로 인해 다시 성별 격차가 유지되는 경우를 없애기 위해서는 여성의 경제활동이 늘어야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바깥사람 남성’과 ‘안사람 여성’의 성 역할 고정관념을 깨기 위한 노력이 필수였다.

스웨덴을 비롯해 허프포스트가 만난 여러 나라의 교육자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성별 고정관념을 깨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보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타고난 성별에 따라 미래가 한정되어 있는 사회가, 그 어느 성별에게든 평등한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내일(27일)은 평등한 사회를 위해서는 어린 시절 성별 고정관념을 배우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보고, 독립적인 사고와 함께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는 법을 가르치는 스웨덴의 유치원 교육 방침과 현장 이야기를 소개한다.

SUJEAN PARK/HUFFPOST KOREA
스톡홀름 소재 크리스탈렌 유치원 내 [위] 미술 공간 [아래] 다양한 외모를 가진 인형들

*인터뷰 답변은 명료한 전달을 위해 편집되었습니다.

 

[Beyond Gender Project] 

1편. 인도

‘여성에게 위험한 나라 1위’ 인도의 ‘페미니즘 학교’를 찾아갔다

18세에 억지로 결혼해야 했던 소녀는 ‘위대한 교육자’가 되었다(인터뷰)

”남자가 성평등 교육을 받는 이유는 ‘더 나은 남자의 삶’을 위해서다”

2편. 호주

”맞을만해서 때렸다”는 말에 호주는 이렇게 대처했다

- “여성을 일상적으로 비하하는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이 일어난다”

가부장적인 남성들과 가부장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법

”포르노가 성교육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

호주 학교들은 어린이들에게 ‘젠더 공교육’을 한다

조카에게 사주는 핑크색 머리띠가 왜 문제인 걸까?

3편. 스웨덴

- ’라떼파파’들은 아이 키우기를 피하지 않는다

- “나는 여자 안 때린다”고 말하는 남자들 뿐이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스웨덴 남성 페미니스트 단체 MÄN(맨)

- 세계 최초로 ‘페미니스트 정부’ 표방한 나라의 장관이 한국인에게 전한 말

- 이 나라의 유치원에는 ‘남자아이’, ‘여자아이’가 없다

4편. 한국

- ”유치원부터, 교대부터 바뀌어야 한다” 현직 초등교사들이 말하는 성평등 교육

- ”남자는 우는 거 아니야” 어린이집 교사들에게 이 교육이 필요한 이유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취재 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