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2019년 10월 12일 10시 50분 KST | 업데이트됨 22 시간 전

18세에 억지로 결혼해야 했던 소녀는 '위대한 교육자'가 되었다 (인터뷰)

Beyond Gender |인도 2 - 프레르나 스쿨 설립자 우르바시 사흐니 박사

* 편집자 주 :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학습된 성별 고정관념이 훗날 성차별이나 여성혐오 인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들이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성평등 교육의 중요성에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허프포스트가 직접 다녀온 인도, 스웨덴, 호주의 성평등 교육 현장 이야기를 4주 동안 전합니다.

유복한 중산층 집안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의 삶은 남자 형제들과 달랐다. 남자 형제들이 밖에서 뛰어놀 때, 그는 집에서 어린 동생을 돌봐야 했다. 항의도 해보았으나 돌아오는 것은 ‘넌 여자잖아’라는 대답뿐. 대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을 때 남자 형제들은 자유롭게 전공을 고를 수 있었으나 그는 가정대학만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여자들만 다닌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골라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겨우 17살. 아버지가 정해준 남자를 만나 몇 시간 만에 약혼을 하고, 이듬해에 결혼식을 올렸다. 몇 년 후 사랑스러운 두 딸을 낳았지만, 소중한 생명의 탄생에 나머지 가족들은 싸늘한 눈길을 보낼 뿐이었다.

남들과 다를 것 없던 인생이 송두리째 뒤바뀐 사건은 1982년, 그가 27살일 때 벌어졌다. 3살 어린 24살의 사촌 여동생이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여동생이 결혼한 지 4년, 딸을 낳은 지 꼭 2년 되던 해였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으나,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웠다. 비극적 죽음 앞에서 가족들은 가문의 명예를 걱정했다. 평생을 가정폭력에 시달린 고모가 차갑게 내뱉었다. ”요즘 애들은 참을성이 없어.”

‘왜 동생을 도와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을까? 왜 많은 여성이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을 탓하고, 고통을 감내하며 사는 걸까?’

SANGA KWAK/HUFFPOSTKOREA
스터디홀 교육재단의 설립자인 우르바시 사흐니 박사를 자택에서 만났다. 사흐니 박사는 UC버클리 교육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땄으며 인도의 사회혁신기업가이자 여성 인권 운동가, 교육자다. 30년 넘게 아동과 여성의 권리를 신장시키는 활동에 헌신해 왔다.

인생을 뒤흔드는 사건 앞에서 많은 질문이 떠올랐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고, 1983년 어려움에 처한 여성들을 돕는 상담센터 Suraksha(힌두어로 ‘안전‘, ‘보호’를 의미)를 열었다.

여러 가정폭력 사건이 센터를 찾아왔다. 사건들에는 단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피해자는 모두 여성이었다. 가난한 시골 여성이 일상에서 맞닥뜨린 문제는 부자이며 도시에 살았던 사촌 여동생의 문제를 관통하고 있었다.

‘나는 동등한 사람이다.’(I am an equal person)

어느 깜깜한 밤. 불현듯 떠오른 문장이다. 이때 나이는 28세. 왜 이토록 중요한 진실을 이제야 알게 됐단 말인가?

그동안 받아온 교육을 돌아보았다. 학문적 지식을 많이 습득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권리를 가진 사람이다’라는 진실은 학교든, 사회든,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학생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그는 1986년 자택 창고에서 ‘스터디홀(Studyhall)’ 이라는 이름의 유치원을 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미국 UC버클리 교육대학원으로의 유학을 결정했다.

두 딸, 남편, 시어머니를 두고 먼 나라로 공부하러 떠나는 게 쉬운 결정일 리가 없었다. 흥분됐으나 두려웠고 죄책감이 몰려왔다. 그때 12살이었던 딸이 말했다. ”엄마, 꼭 공부하러 가. 엄청 좋은 기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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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 때 두 딸과 찍은 사진 

딸의 말이 맞았다. 중산층, 아내, 엄마, 며느리 등등 그를 그동안 규정했던 꼬리표는 미국에 도착하는 순간 모두 사라졌다. 낯선 땅에서 계급적 우위가 있을 리 없었고, 유색인종이면서 개발도상국 국민인 그는 오히려 소수자에 속했다.

익숙한 곳에서 걸어 나와 홀로 지내보니, 자신이 그동안 사회적 계급의 문제에 대해서는 크게 의식하지 않고 있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앞으로 싸워야 할 대상이 아버지나 남편과 같은 주변 남자들이 아니라 여자라는 이유로 무력한 삶을 살게 만든 ‘불평등한 사회 구조’임이 보였다. 

1994년. 고국으로 돌아왔다. 신기하게도, 이제는 여자로 태어난 게 그 전만큼 화가 나지 않았다. 여성이면서도, 단지 여성만이 아닌 ‘한 사람’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생 전체에 걸친 고민과 공부 끝에 그는 자신보다 더 열악한 위치에 놓인 힘없는 여자아이들을 돕기 시작했다. 낮은 카스트, 극심한 가난, 그리고 여성. 여러 층위의 억압을 동시에 겪고 있는 여자아이들을 대상으로 성평등 기반의 교육을 하는 ‘프레르나 스쿨’(प्रेरणा स्कूल, Prerna School, 2003년 설립)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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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흐니 박사는 2018년 세계경제포럼의 자매기구인 슈왑 재단으로부터 '올해의 뛰어난 사회적 기업가상'을 받았다.  

그의 이름은 우르바시 사흐니(Urvashi Sahni).

사흐니 박사는 ”나는 수십 년에 걸쳐서 힘들게 고민하고, 공부한 끝에 나 자신을 찾을 수 있었지만 학생들은 (성평등 교육으로) 몇 년 만에 눈에 띄는 성장을 이뤄내고 있다”며 ”자랑스럽다는 말로는 표현되지 않을 정도로 크게 기쁘다”고 웃었다.

인도에서 만난 우르바시 사흐니 박사가 직접 들려준 이야기를 아래 전한다.

-가장 묻고 싶었던 게 있다. 왜 성평등 교육이어야 할까? 학생들이 그냥 일반적인 교육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결과에 있어서 차이가 크게 날 것이라고 생각하나?

= 물론이다.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나는 중산층 출신으로 아주 좋다고 하는 학교에서 공부했다. 성평등 교육은 받은 적 없다. 나는 일찍 결혼해야 했고, 거부할 수 없었다. 물론 결혼하고 싶지 않았지만, ‘여자의 삶이란 원래 이런 것’이라 생각했을 뿐이다.

지금도 많은 여자아이들의 삶이 그렇다. 교육을 끝까지 마친다고 하더라도, 남자아이들과 비슷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다. 고등 교육을 추구하거나, 직업을 찾거나 하는 데 있어서. 하지만 성평등 교육을 받게 되면, 부당한 현실을 인지하고 이에 맞서 싸울 힘을 기를 수 있다.

-이 곳에 와서 ‘싸움’이라는 단어를 많이 듣고 있다. 현실 속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 물론이다. 지금의 나는 16~17살 때의 내가 아니다. 만약 내 권리를 위해 싸우지 않았더라면, 지금과 같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변하지 않았더라면, 수천 명의 여자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변하면, 나를 대하는 다른 사람들의 태도도 변하게 마련이다. 싸움이라고 해서 반드시 폭력적일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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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재단의 글로벌 걸즈 얼라이언스(Global Girls Alliance : 교육을 통해 전 세계 소녀들의 삶에 힘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프로그램) 회원이며, 2011년 아쇼카 펠로우십 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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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흐니 박사가 자신의 서재를 소개하고 있다.

-인도는 한국보다 훨씬 더 보수적인 곳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성교육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 지금도 생물학적인 부분은 가르친다. 하지만 더 나아가서 성정치학(Sexual Politics). 섹스에 대한 사회적 규범이 어떻게 여성을 속박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교육하고 싶다.

인도에서 여자들은 순결을 추구해야 하지만, 남자들은 그렇지 않다. 아동 결혼도 마찬가지의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여자아이들이 순결을 유지한 채 결혼하길 바라기 때문에, 결혼에 있어서 선택권을 주고 싶지 않기 때문에. 여자아이들은 수많은 선택권을 빼앗긴 채 살아간다. 학생들에게 이러한 맥락을 가르쳐주고 싶다.

하지만 매우 조심스럽다. 왜냐하면.. 당신도 명예 살인(honor killing)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예를 들어, 여자아이가 혼전 임신을 했다. 조용히 살해될 수 있다. 자살로 가장한 채 말이다. 물론 명백한 범죄다. 그러나, 사회 규범 측면에서는 용인될 수 있는 행위가 된다. 혼전 임신한 여자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도, 다들 쉬쉬하고 문제 삼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아주 아주 신중해야 한다.

불평등한 결혼의 거부

-18세에 결혼한 남편과는 이혼했다고 들었다. 언제 이혼했는지 여쭤봐도 될까.

= 2007년이었다. 그 후 많은 시간이 흘렀지…. 이혼은 인생의 가장 힘들었던 순간 중 하나다. 17살에 그와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서로 좋은 친구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평등한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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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흐니 박사의 젊었을 적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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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바시 사흐니 박사는 프레르나 스쿨에 대한 책 'reaching for the sky'를 2018년 발간했다. 책에는 우르바시 사흐니 박사의 수십 년에 걸친 개인적인 분투의 기록도 담겨 있다. 여성으로 태어나 차별받는 삶으로 힘들어하던 이가 오랜 고민, 공부, 노력 끝에 다른 여성을 돕는 위대한 교육자로 성장한 이야기는 꽤 감동적이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이혼의 이유를 말해줄 수 있나. 남편이 당신의 활동을 지지해주었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 흠.. 선택에 의한 결혼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정해준 상대였을 뿐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냥 잘 맞지 않았다. 그는 원하지 않았으나, 내가 이혼을 선택했다. 만약 좀 더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여성을 만났더라면, 그가 더 행복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웃음)

-다시 태어난다면 결혼을 하고 싶은가? 아니면 결혼 안 하고 아이만 키우고 싶은가?

= 맙소사. (큰 웃음) 결혼을 다시 하고 싶으냐고? 흠..(잠깐 생각 후 대답) 파트너를 원하긴 하는데.. 명백한 것은 아주 평등한 결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결혼이라는 게 그렇게 중요한가? 잘 모르겠다. (결혼의 중요성은) 사회적 맥락에 달린 거라.. 난 다만 아주 평등한 관계를 원할 뿐이다. 집안에서든, 밖에서든, 모든 영역에서. 나는 불평등한 관계를 감내할 수 없다. 결혼과 출산 모두 사회적 압박이 아닌, 내 의지에 의해 선택하고 싶다.

-요즘 한국에서는 결혼을 거부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인도는 어떤가?

= 우리 학교 졸업생들만 봐도, 28~29세인데 결혼 안 한 친구들이 있다.(올해 인도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인도 여성의 평균 결혼 나이는 22.1세) 그 친구들이 그런다. ‘누구랑 결혼해야 할지 모르겠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미래를 두려워하곤 한다. 그럴 때는 말해준다. ‘(결혼하지 않아도) 세상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평등한 파트너를 만나지 않으면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요즘 인도에서는 이혼율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불평등한 결혼 생활을 거부하는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느리지만 변화는 벌어지고 있다.

(인도는 전 세계에서 이혼율이 가장 낮은 국가다. 2017년 기준으로 이혼율이 1%에 불과할 정도다. 그러나 최근 10년간 이혼한 부부는 1000쌍 중 1쌍에서 13쌍으로 점점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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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의 인물이 사흐니 박사의 아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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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흐니 박사와 그의 어머니 

-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어린 나이에 억지로 결혼시킨 아버지와의 관계는 이후 어땠나.

= 우리의 관계는 드라마틱하게 달라졌다. 오랫동안 강력한 가부장으로 살아온 아버지는 결국 나를 가장 강력하게 지지해주는 사람으로 변했다.(웃음) 프레르나 스쿨을 시작할 때도 재정적으로 도움을 주었고.

이혼할 때도 강하게 반대하셨지만, 아버지는 긴 시간 동안 나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셨던 것 같다. 나는 부당한 억압을 받아들이길 거부했고, 내가 변하자 아버지도 날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할까.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지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인생에서 하고 싶었던 것들을 지금 네가 다 이뤄내고 있다. 네가 너무 자랑스럽다’고. 아버지에게는 아들이 3명이나 있는데, 날 가장 아꼈다는 얘기를 누군가에게 전해 듣고 놀란 적도 있다.

시스템의 문제

-책에서 ‘성차별 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주변 남성들에 대한 분노와 죄책감이 사라졌다’는 대목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좀 더 이야기를 듣고 싶다.

= 많은 여성이 화나는 감정을 가지리라 생각한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어린 나이에 결혼시킨 아버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인생에 큰 결정권을 행사한 남편, 나와 다른 삶을 산 남자 형제들.

분노했고, 행복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깨달은 것은 가부장제 사회가 내 주변 남자들 몇 명의 잘못으로 인해 생긴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한 명의 여성으로서 불평등한 삶을 살아야 했으나, 전체 사회 시스템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이를 깨달으면서 나에게는 2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먼저, 매우 자유로워지는 기분이었다. 당신도 주변의 사랑하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인생에서 마주치는 모든 남자를 미워하면서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이 생각이 떠올랐다. ‘내 주변의 남자들도 (분노로) 어찌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전체 사회 구조를 바꿀 수 있을까?’라고. 개인적인 분노를 넘어서 사회 전체적인 구조를 보고 싸워야 한다. 정말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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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홀 교육재단의 행사를 진행하는 사흐니 박사 

- 일반적으로 인도에서 여성에게, 남성에게 기대되는 것은 어떤 것인가? 한국이랑 비슷한지 궁금하다.

= 여성은 결혼 전에 반드시 성 경험이 없어야 한다. 결혼 후에는 아이를 키우고, 좋은 아내가 돼야 한다. 만약 직업이 있더라도 모든 집안일은 여성의 몫이다. 반면 남성들은 결혼 전 섹스를 해선 안 된다는 압박이 별로 없다. 남성들은 돈을 잘 벌어오고, 강한 남자가 되면 된다.

만약 남편이 아내를 폭행하면? 별로 문제 되지 않는다. 그런데 만약 아내가 남편을 폭행한다면? 매우 드문 케이스라, 보복을 당할 것이고 큰 문젯거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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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는 페미니즘이 새로운 사회 규범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으나 그로 인한 반발도 상당하다. 특히 온라인에서는 ‘페미니즘은 정신병이다’ ‘페미니스트는 남자를 혐오하는 못생긴 여자들이다’라는 댓글도 쉽게 볼 수 있는데.

= 맙소사. (아주 큰 웃음) 페미니즘은 모든 성별이 평등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모든 이들이 평등하다고 말한다. 때문에 민주주의자가 페미니스트이고, 페미니스트가 민주주의자다.

그런데 그런 주장에 따르면, 민주주의자가 ‘남자를 혐오하는 못생긴 여자‘가 되고 민주주의자가 ‘정신질환 환자’가 되는 건가? 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로 대치시켜서 생각해 보라. 그래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페미니즘은 몇몇 여자들이 주장하는 게 아니고, 외모가 아름다운지 못생겼는지와 아무 상관도 없다. 전세계적인 흐름이 ‘정신병’이라고?

- 현재 한국 정부가 성평등 교육과정 마련을 추진하고 있다. 성평등 교육과정을 만들 때 중요한 게 무엇인지, 당신의 경험을 토대로 조언해 준다면?

= 와우. 한국에서 그런 진보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니 정말 기쁘다.

성평등 교육을 하려면 가장 먼저 교사들을 가르쳐야 한다. 좋은 커리큘럼과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 교사를 트레이닝하는 방법 등 얼마든지 우리의 경험을 공유하고 조언해 드리고 싶다.

그리고 중요한 게 있는데, 평등을 민주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가르칠 수는 없다. 평등을 가르치는데 학교가 아주 불평등하다고 생각해보라. 기본적으로 토론을 통해서, 상호작용을 하면서, 기존의 것을 새로운 사회 규범으로 대체해야 한다. 학교 전체의 문화가 바뀌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복잡하고 어렵지만, 응원을 보내고 싶다.

 

″남학생이 성평등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은 ‘더 나은 남자의 삶’을 위해서다.” : 다음 주 월요일(14일)에는 남학생을 대상으로 페미니즘 교육을 하는 인도의 프레르나 보이즈 스쿨에 대한 기사가 이어집니다.

[Beyond Gender Project] 

1편. 인도

‘여성에게 위험한 나라 1위’ 인도의 ‘페미니즘 학교’를 찾아갔다

18세에 억지로 결혼해야 했던 소녀는 ‘위대한 교육자’가 되었다(인터뷰)

”남자가 성평등 교육을 받는 이유는 ‘더 나은 남자의 삶’을 위해서다”

2편. 호주

”맞을만해서 때렸다”는 말에 호주는 이렇게 대처했다

- “여성을 일상적으로 비하하는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이 일어난다”

가부장적인 남성들과 가부장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법

”포르노가 성교육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

호주 학교들은 어린이들에게 ‘젠더 공교육’을 한다

조카에게 사주는 핑크색 머리띠가 왜 문제인 걸까?

3편. 스웨덴

- ’라떼파파’들은 아이 키우기를 피하지 않는다

- “나는 여자 안 때린다”고 말하는 남자들 뿐이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스웨덴 남성 페미니스트 단체 MÄN(맨)

- 성평등부 장관 오사 린드하겐 인터뷰

- 스웨덴 유치원들은 성평등 교육을 어떻게 하고 있을까

4편. 한국

- 지금 우리 초등학교 교실에서 성평등 교육을 하는 선생님들이 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취재 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