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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코로나19 사망자 20만명 돌파 : 트럼프의 과학 불신과 정치화가 만든 재앙

트럼프는 지난 6개월 동안의 코로나19 대응이 '성공적'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 허완
  • 입력 2020.09.23 19:01
  • 수정 2020.09.23 19:08
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가 20만명을 넘었음에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정부가 '성공적'으로 대처해왔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가 20만명을 넘었음에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정부가 '성공적'으로 대처해왔다고 주장했다. ⓒASSOCIATED PRESS

뉴욕 (AP) - ”나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말했다.

지난주 측근들과 함께 백악관 웨스트윙에 모인 트럼프의 눈은 폭스뉴스에 고정되어 있었다. 트럼프는 이번 세기 미국에 가장 치명적인 피해를 낳은 팬데믹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AP통신 기자가 듣게 된 대화에서 트럼프는 미국 최고 과학자 중 하나, 즉 바이러스학자이자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소장인 로버트 레드필드 박사를 자신이 공개적으로 반박한 일을 묘사하는 중이었다.

레드필드는 일반인들이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려면 2021년 후반까지는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말해 트럼프의 심기를 거슬렀다. 그러자 몇 시간 뒤, 트럼프는 기자회견을 자청하더니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레드필드가 ”헷갈렸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백신은 11월 대선 전에 준비가 끝날 것이라고, 트럼프는 주장했다.

 

미션 완료. 트럼프 정부가 정부의 과학자들을 상대로 계속해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나온 트럼프의 이 발언을 폭스뉴스는 헤드라인으로 보도했다. 

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가 20만명을 넘어섰음에도 이 전쟁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20만명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목숨을 잃은 미국인의 거의 절반에 달하는 수치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미국의 저명한 의료인들이 피할 수 있다고 했던, 한 때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수치이기도 하다.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인 앤서니 파우치 박사가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 브리핑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설명하고 있다. 2020년 3월16일.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인 앤서니 파우치 박사가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 브리핑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설명하고 있다. 2020년 3월16일. ⓒASSOCIATED PRESS

 

지난 6개월 동안, 트럼프 정부는 중요한 순간들마다 코로나19 확산 통제로 이어졌을 전문가들의 권고를 따르기를 거부하면서 과학보다는 정치를 우선시했다. 트럼프와 그의 측근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의 심각성에 대한 전문가들의 진단과 바이러스 확산을 통제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일상적으로 무시했다. 그들은 트럼프 정부의 장밋빛 의견을 반박하는 과학자들의 입을 막으려고 시도했다.

백신에 대한 트럼프의 다급함이 과학계나 백신 개발 절차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정황은 없다. 그러나 대선 전에 백신이 완료될 것이라는 트럼프의 주장은 그가 자신의 재선에 도움을 주리라 기대하는 바로 그 돌파구인 백신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다.

민주당 조 바이든에 맞서는 트럼프는 일상 활동 재개를 강력히 밀어붙이고 있고, ‘힘과 통제’를 보여주면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려고 하고 있다.

지나고 나서 보니까 자신이 더 할 수 있는 건 없었다고 트럼프는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일찍 중국발 입국을 제한한 조치를 언급했다. 데이터와 기록들을 보면, 이 조치는 효과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코로나19에 높은 점수를 매겼다. 메시지 전략이 좋지 못했다는 것만 빼고 말이다.

″홍보에 있어서는 스스로에게 D를 주겠다.” 그가 이번주에 폭스뉴스에 말했다. ”(코로나19 대응이라는) 임무 그 자체만 놓고보면 우리는 A+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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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우한에서 바이러스가 처음 등장한 뒤인 1월 말, CDC는 긴급작전센터 운영을 개시했다. 감염병학자들은 적극적인 대중 홍보 캠페인, 바이러스가 통제 범위를 벗어나기 전에 첫 번째 환자를 파악하고 격리하기 위한 역학조사 동원 같은 것들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그러는 대신, 중요했던 처음 몇 주 동안 트럼프는 공개적으로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축소했다. 개인적으로는 이미 위험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솔직히 나는 늘 이것을 축소하길 원했다.” 3월에 트럼프가 언론인 밥 우드워드에게 한 말이다. ”지금도 나는 이걸 축소하는 게 좋다. 패닉을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계속해서 미국 전역으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대통령이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일축하는 데 열중하는 동안, 마스크 착용이나 거리두기 같은 간단한 행동조차 정치적 분열을 낳는 이슈로 탈바꿈할 만큼 미국은 더욱 분열을 향해 치달았다.

″침착해야 한다.” 트럼프가 3월6일 애틀랜타의 CDC 본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말했다. ”이건 사라질 거다.”

그러나 3월 중순이 되자 뉴욕과 다른 지역의 병원들에는 환자가 물밀듯이 들이닥쳤고, 시신을 보관할 냉동트럭들이 줄지어 늘어섰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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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 차트가 각성의 계기였다. 3월31일, 미국은 그 때까지도 코로나19 팬데믹이 어느 정도로 큰 규모인지 파악하느라 쩔쩔매고 있었다. 학교 수업이 중단됐고, 사람들은 집으로 피했으며, 프로스포츠는 멈췄다. 그러나 솟아오르고 있는 치명률 그래프는 상황이 더 나빠질 것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백악관 코로나19 조정관인 데보라 버크스 박사와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인 앤서니 파우치 박사가 이 수치를 설명하기 위해 대통령과 함께 나란히 섰다. 이들은 코로나19 확산 모델을 돌려보니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 상점 영업중단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10만명에서 24만명에 이르는 사망자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강력한 조치를 취한다면 사망자는 10만명 밑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밑으로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트럼프가 당시 했던 말이다.

그럼에도 전국적인 마스크 착용 의무화 조치나 그밖의 권고지침을 발표하는 대신, 트럼프 정부는 불과 몇 주 만에 ”미국 경제활동 재개(Opening Up America Again)” 계획을 들고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코로나19 브리핑에서 경제활동 재개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오른쪽은 앤서니 파우치 박사. 2020년 4월16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코로나19 브리핑에서 경제활동 재개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오른쪽은 앤서니 파우치 박사. 2020년 4월16일. ⓒASSOCIATED PRESS

 

CDC는 지역 정부가 각 지역의 경제활동 재개 시점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될 지침이 담긴 두꺼운 문서를 마련했다. 하지만 백악관은 이 지침들이 너무 엄격하다고 봤다. CDC의 과학자들은 이 문서가 ”결코 빛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AP는 63쪽짜리 이 문서를 공개했고, 여기에는 과학에 근거한 직장·어린이집·식당에서의 지침이 담겨 있었다.

그러는 동안 트럼프는 공개석상에서 마스크 착용을 거부했고, 마스크 착용 의무화 없는 정치 유세를 벌였으며, 코로나19 현황에 대한 CDC의 통계를 깎아내렸다. 5월이 되자, 여러 커뮤니티들은 CDC의 최신 버전의 지침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문을 다시 열었다.

예상가능한 일이 벌어졌다. 문을 다시 열자마자 확진자가 급증했다. 5월 말이 되면서는 사망자를 10만명 밑으로 유지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사라졌다.

트럼프는 봉쇄조치를 유지했더라면 더 큰 희생이 발생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경제적으로나 집에서 격리되어 있고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나 타격이 컸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가 말하지 않은 건, 자신의 재선 가능성에 미칠 영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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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이 정한 시간표에 따라 빠르게 경제활동을 재개한 조치를 정당화 할 수 있을 신속한 해결책을 찾는 데 안달이 난 트럼프는 본인이 직접 말라리아 치료제인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의 전도사로 나섰다. 코로나19 치료의 ”게임 체인저”라고도 했다. 식품의약국(FDA) 등은 코로나19 치료 효과가 있다는 증거가 없으며 위험할 수 있다고 반복적으로 경고했으나 트럼프는 멈추지 않았다.

트럼프 정부는 완치자의 혈장을 치료법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언급했다. 그러나 파우치 박사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효과를 입증할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고 봤다.

트럼프와 트럼프 정부는 과학적인 반대 의견을 좋게 보지 않았다.

트럼프는 CDC와 FDA를 관할하는 보건복지부의 홍보책임자에 로비스트인 마이클 카푸토를 앉혔다. 카푸토는 러시아의 에너지 대기업 가즈프롬에서 홍보 컨설턴트로 일한 적이 있는데, 미국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업무였다. 공중보건 관련 경력은 전무했다.

카푸토는 정부의 과학자들을 트럼프에 맞선 ”저항군”에 비유한 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CDC 당국자들을 혹평하고, 그들의 과학적인 발표에 의문을 제기하고, 직원들의 입을 막으려고 시도하는 내용의 이메일이 공개되기도 했다. 그는 이같은 사실이 드러나자 9월에 휴직계를 냈다.

과학에 근거한 CDC의 권고지침들은 대중들에게 공개되기 전에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를 거쳐야만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정부 과학자들의 권고를 일축했고, 공개적으로 보건당국을 반박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정부 과학자들의 권고를 일축했고, 공개적으로 보건당국을 반박하기도 했다. ⓒASSOCIATED PRESS

 

이처럼 정부가 CDC에 개입하고 CDC를 공개적으로 반박하자 내부 사기는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라고 CDC의 한 당국자가 익명으로 전했다. 정부의 정치적 권력(입김)에 맞서 끊임없이 싸우느라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코로나19 대응이 더 힘들어졌고, 번아웃을 호소하는 직원들도 늘어났다.

레드필드 CDC 국장은 외압에 더 강하게 맞서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아왔다. 오랫동안 CDC에 몸 담아왔던 이들은 지휘부가 정치에 맞서 과학을 엄호하고 나서는 모습을 기대한다.

″분명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CDC의 평판에 있어서 핵심적인 일이다.” 20년 동안 CDC에서 일했으며 지금은 플로리다대학교 의대 교수로 있는 소냐 라스무센 박사가 말했다. ”이 팬데믹 뿐만 아니라 이 다음에 올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튼튼하고 신뢰 받는 CDC가 필요하다.”

파우치 박사의 경우 언론과 접촉하는 것에도 제한이 가해졌다. 그의 직언은 트럼프 정부와 잘 맞지 않았다. 트럼프는 코로나19 태스크포스를 대표해 시민들 앞에 나설 새로운 인물을 끌어올렸다. 감염병 관련 경험은 전무한 스탠퍼드대학교 신경학자인 스캇 아틀라스 박사였다.

백악관 당국자들은 아틀라스의 역할이 선의의 비판자 입장을 취하고, 의료진과 공중보건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데이터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백악관 당국자 두 명은 대선 몇 주 전에 보다 광범위하게 경제활동을 재개하겠다는 트럼프의 목표에도 중점을 두고 있다고 전했다.

아틀라스는 학생들의 마스크 착용이나 사회적 거리두기의 필요성을 깎아내린 인물이다. 그는 인구 다수의 감염을 통해 면역을 만들어낸다는 구상인 ‘집단 면역’을 만들어내기 위해 바이러스가 퍼질 때까지 퍼지도록 주장하기도 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위험하다는 이유로 이같은 접근법을 일축한 바 있다.

백악관 당국자들은 아틀라스 박사가 ‘집단 면역’을 더 이상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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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치 박사는 지난 8월 ”근본적인 반과학 정서”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몇몇 사람들이 과학의 권위에 도전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과학은 권위적인 범주에 속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그걸 좋아하지 않는다.”

트럼프의 트윗과 발표들은 그와 같은 반발을 부추겼고, 지역 차원에서도 영향을 미쳤다.

AP와 ‘카이저헬스뉴스(KHN)’의 분석 결과, 지난 4월부터 27개주에서 주 정부와 지역 정부의 보건당국 지휘관 중 최소 60명이 사임했거나 퇴직했거나 해임된 것으로 나타났다. AP와 KHN이 추적 집계를 시작한 6월부터는 그 숫자가 두 배 늘었다.

그 중 다수는 정부 당국자들로부터의 정치적 압박, 또는 마스크 착용 의무화와 (상점) 운영 중단에 분노한 시민들의 폭력적인 위협을 겪은 뒤에 자리를 떠났다.

오하이오주의 경우, 조앤 듀브 박사는 9월10일에 주 보건국장으로 지명됐다. 그러나 그는 몇 시간 만에 사의를 표했다. 그는 신문 ‘더스테이트’ 보낸 입장문에서 자신의 전임자가 됐을 에이미 액튼 박사가 6월에 사임한 이후 무장한 시위대가 자택으로 몰려들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고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리를 고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코로나19 브리핑을 지켜보는 앤서니 파우치 박사(맨 앞쪽)과 로버트 레드필드 CDC 국장.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코로나19 브리핑을 지켜보는 앤서니 파우치 박사(맨 앞쪽)과 로버트 레드필드 CDC 국장. ⓒASSOCIATED PRESS

 

백악관도 공개적으로 과학을 깎아내리는 것의 부정적인 면을 인지하고 있다. 당국자들은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신, 백신 생산 일정을 앞당기려는 정치적 개입이 그 자체로 공중보건 위기로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두 명의 백악관 관계자들에 따르면, 그들은 미국인들이 백신 접종에 거부감을 가질 경우 불필요한 희생과 경제적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백악관은 백신 개발 절차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높이기 위한 캠페인을 지시했다. 트럼프가 공격해왔던 스티븐 한 FDA 국장과 CDC의 레드필드 소장의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 동참하지 않는 한 사람은 바로 트럼프다. 대선까지 7주도 채 남지 않은 지금, 그는 재선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것이라면 무슨 말이나 행동이든 하겠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학이나 증거가 뒷받침되는 것이든 아니든  상관 없이 말이다. 그는 자신의 정부 과학자들이 제안한 모든 규칙을 깨뜨려가면서 바이든이 그 규칙들을 따른다며 조롱한다.

암울한 사망자수 통계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계속해서 지난 6개월을 ‘성공’으로 프레이밍하고 있다.

″이 끔찍한 병균이 중국으로부터 왔을 때 우리는 전에 볼 수 없었던 수준으로 미국 산업을 동원했다. 우리는 생명을 구하는 치료법들을 신속히 개발했고, 치명률을 낮췄다.” 트럼프가 21일 오하이오주 유세에서 환호하는 청중들을 향해 말했다. ”우리는 올해 말까지 백신을 내놓을 거다. 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빠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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