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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탓입니다, 해보세요” 경기도 고양시 흥국사 템플스테이에서 스님이 따끔하게 건넨 조언은 이 시대 모든 직장인이 새겨들을 만하다

산에선 멧돼지를 조심해야 하고, 108배는 흉내라도 내려면 몸살이 디폴트니 단단히 각오하자.

흥국사, 명상하는 여성.
흥국사, 명상하는 여성.

쉬는 것도 일이다. 재능이다.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렇게 됐다. 언제부턴가 쉬어도 쉬어지지가 않는다. 언제부터. 넷플릭스가 유행하고부터. 아이폰 4s를 손에 넣고부터. 인터넷 강의와 웹서핑을 동시에 즐길 때부터. 모든 것과 연결되고부터. 나는 자유의 몸이 아니다.

긴 휴가를 냈다. 어디든 갈 수 있지만, 나는 특약 처방을 원했다.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얼얼함으로 정신을 차릴 수 있는 곳. 만성적 산만함 그리고 안구건조증과 잠시나마 결별할 수 있는 곳. 자연, 적막, 배움이 있는 곳. 사람은 적은 곳. '진짜' 쉴 수 있는 곳. 나는 어느새 인터넷 창을 열어 '템플스테이'를 검색하고 있었다.

 

원효대사 세우고 영조 다녀간 흥국사

북한산과 마주보고 있는 흥국사. 정면의 가로 건물이 약사전. 꼭대기 중앙의 기와 세 장이 푸른색으로, 왕이 다녀갔다는 징표다.
북한산과 마주보고 있는 흥국사. 정면의 가로 건물이 약사전. 꼭대기 중앙의 기와 세 장이 푸른색으로, 왕이 다녀갔다는 징표다.
접객용 'ㄱ'자 건물 대방전. 참선 수업 등이 진행된다.
접객용 'ㄱ'자 건물 대방전. 참선 수업 등이 진행된다.

흥국사(興國寺)는 경기도 고양시 한미산에 있는 사찰로 북한산과 마주 보고 있다. 은평구와 고양시의 경계에 있다. 661년 원효대사가 석조여래좌상(약사여래불)을 발견하고 세운 절로, 1770년에는 영조대왕도 다녀갔다. 흥국사 약사전 꼭대기 중앙의 기와 세 개는 청색이다. 왕이 다녀갔다는 징표다. 템플스테이 시작일인 일요일 정오, 흥국사는 예상 외로 붐볐다. 차량 40여 대와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이 50여 명 있었다. 접객용 ‘ㄱ’자 건물 대방전에서는 참선 수업이 진행 중이었다. 바로 옆 불상이 모셔진 명부전에서는 목탁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향내가 났다. 스님이 염불을 외는 가운데로 등산복을 입은 중년 남성이 절을 올렸다. 불현듯 땀이 차서 패딩을 벗어들었다. 11월 20일 한미산은 놀랍도록 푹했다.

석탑 위로 늘어선 색색깔 연등.
석탑 위로 늘어선 색색깔 연등.
예불이 열리는 극란전 앞으로 연등이 길게 늘어서 있다.
예불이 열리는 극란전 앞으로 연등이 길게 늘어서 있다.

흥국사 템플스테이에는 14명이 참여했다. 참여 인원 다수는 20·30대 여성이었고 어린아이들과 함께 온 어머니들도, 북한산 산행을 마치고 늦게 온 대학생들도 있었는데 목적은 “자연에서 쉼”으로 비슷했다. 빌딩과 컴퓨터, 사람 적은 곳에서 휴식하겠다는 거다. 나 역시 그랬다. 고요한 사찰에서 하루를 보내면 왠지 정신도 말끔해지고 피로도 풀릴 것 같았다. 혹시 재수가 좋으면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없지 않아 있었다. 물론, 요행이 허락된다면 말이다.

 

연꽃 만들기부터 타종까지, 본격 사찰 체험!

색지의 끝을 비틀고 물풀로 고정한 뒤 종이컵에 빙 둘러 붙이면 종이 연꽃 완성.
색지의 끝을 비틀고 물풀로 고정한 뒤 종이컵에 빙 둘러 붙이면 종이 연꽃 완성.

사찰 체험으로는 ‘연꽃 만들기’가 낙점됐다. 다수결에 따라서다. 다른 선택지에는 ‘강정 만들기’와 ‘108배’가 있었다.

“색지 끝을 모아서 돌돌 말아요. 그리고 풀칠해서 끝을 뾰족하게 모아주면 물방울 모양이 되죠. 그게 연꽃잎 한 장이에요. 종이컵에 빙 둘러 붙이면 이렇게 됩니다. 해보세요.”

완성된 종이 연꽃을 몇 개를 참고로 저마다 연꽃을 만들었다. 빨간색, 주황색, 자주색, 노랑색, 초록색, 연두색 등 다양한 색지를 자유롭게 썼다. 연꽃만 만들면 되니까. 색지 끝을 잘 모으지 않으면 퍼져서 꽃잎 모양이 망가졌다. 풀칠을 너무 많이 해도, 너무 적게 해도 문제다. 쉽지 않았다. 저녁 공양 시간이 다가오자 떨리는 손놀림이 바빠졌다. 5시 무렵, 삐죽빼죽 이파리들이 둥글게 오므려진 연꽃이 여기저기서 피었다. 다들 어떻게든 해냈다.

다양한 채식 반찬이 준비돼 먹을 만큼 먹으면 된다.
다양한 채식 반찬이 준비돼 먹을 만큼 먹으면 된다.

살생하지 않는다는 불교 계율에 따라 공양간 음식에 육류는 없다. 대신 쌀밥, 배추김치, 무 생채, 배추, 된장, 고추장, 미역국, 오렌지, 자몽 등 채식 반찬이 다양하게 준비됐다. 많이 먹어도 속이 편했다. 후식은 밤으로 속을 채운 쑥 송편이었는데 어찌나 달던지. 설거지는 각자 했다.

밤의 범종각.
밤의 범종각.

공양을 마치자 5시 40분, 타종 체험이 있는 50분에 맞춰 범종각 앞으로 갔다. 스님이 벌써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한 번씩, 커다란 통나무를 밀어 범종을 울렸다. 종소리는 무거우면서 띵했다. 처음엔 소리로만 존재하더니 끝날 무렵에는 뇌를 흔든다. 범종은 저녁에 33번, 새벽에 28번 치는데 앞선 소리가 끊이기 전에 쳐야 한다. 낮에는 절대 치지 않는 것이 원칙이나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 예외로 5번 친다. 범종을 친 뒤 우리는 저녁 예불에 참석했고 마치기가 무섭게 ‘스님과의 차담(茶啖)’을 위해 종이 연꽃을 만들었던 극락전으로 향했다.

 

뽕잎차 한 잔과 스님 말씀: “이것이 있어 저것도 있다”

“자꾸 남 탓을 하면 안 돼요. 내 탓입니다, 해보세요.”

“내 탓입니다.”

“다 자기 탓이란 말이야. 자기가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거라고. 그러니까 남 탓하지 마요. 알았어요? 고개만 끄덕이지 말고! 사람이 말을 하면 대답을 해야 계속 말할 맛이 나죠.”

“네...”

이건 뭐지. 나 왜 혼나고 있지. 우리 왜 혼나고 있죠. 옆 사람이 눈빛을 보내왔다. 그러게요. 나도 눈빛으로 답했다. 내가 예상한 ‘스님과의 차담(茶啖)’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따뜻한 차를 앞에 두고 서로 푸근한 미소를 지은 채 덕담을 나누고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는 뭔가 그런, 훈훈한 풍경일 줄 알았는데. 스님의 꾸중 아닌 꾸중 앞에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보내온 뽕잎차는 빠르게 식어갔고 ‘좌복’(방석) 위로 꼰 다리는 피가 돌지 않아 저릿저릿했다. 스님은 멈추지 않았다.

“잘 되려면 노력해야 하고 선행,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해요. 그렇지 않고 그냥 막 살면 다음 생애에 사람보다 못한 거로 태어난다고.”

“...네.”

“여러분은 다 도시에서 살잖아. 스님들처럼 수행할 수가 없는데. 그러면 어떻게 하냐. 마음을 착하게, 선하게 쓰면 돼요. 매일매일.”

“그런데 스님, 제가 좋은 마음을 갖고 대했는데도 어떤 사람이 저를 미워하고 싫어하면요?”

몸을 기울여가며 스님의 말씀을 경청하던 대학생이 질문했다. 스님은 단호하게 말했다.

“한 번에 뭐가 바뀔 거라는 생각을 하지 마요. 계속, 계속 수행해야지. 그 사람에게 요만큼 잘해주지 말고, 아예 이만큼. 그 사람한테서 ‘나는 너를 좋게 안 봤는데, 왜 나한테 이렇게 잘 해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잘해줘 보라고요. 그러면 최소한 본인한테 미련은 없을 거야.”

“불교에는 인연이라는 게 있어요, 인과 연. 응? 이것으로 말미암아 저것이 일어난다.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일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사람이랑 보기 싫다고 딱 잘라내고 그럴 필요 없어요. 사람이 서로 붙어 있을 때는 서로 주고받을 빚이 있어서니까. 그게 다 끝나면 자연스럽게 떨어진다고. 꽉 잡았던 손이 스르르 풀린다니까.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잡지 말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야.”

불이문.
불이문.

“사람 마음이 뾰족하면 근처에 아무도 안 가. 마음이 둥글어야지. 절 들어올 때 ‘불이문(不二門)’ 봤죠? 동그란 돌 문. 그렇게 마음을 둥글게 만들어야 주변에 사람이 모인다고. 뾰족한 가시 옆에 누가 있고 싶겠어요?”

가슴이 뜨끔했다. 강한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있어도 누군가에게 편안한 사람이 되어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내가 다른 사람이라면, 나와 함께 있고 싶을까. 생각이 ‘나 왜 혼나지’에서 ‘남에게 나는 어떤 사람일까’로 바뀔 무렵, 차담이 끝나갔다. 마무리는 멧돼지와 침묵이었다.

“여긴 산이라서, 밤이 되면 짐승들 돌아다니고 그런다고. 어제 새벽에는 멧돼지도 나왔어요. 그리고 불 꺼지면 깜깜해서 앞이 잘 안 보이니까 절대 밖에 돌아다니면 안 돼요. 그리고 9시 이후로 떠들어도 안 돼요. 하도 조용해서 속삭이는 소리도 다 들린다고. 수행하는 스님들 방에 다 들려요.”

아직 8시였지만 괜히 조심스러워진 우리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아차, 했다.

“이거 봐, 또 대답 안 하고...”

“네!!”

유난히 선명한 손톱달.
유난히 선명한 손톱달.
별은 찍히지 않는다.
별은 찍히지 않는다.

차담을 마치고 나오자 날은 어두웠다. 손톱달이 밝게 빛나고 하늘 곳곳 이름 모를 별들이 점처럼 박혀 있었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됐다

방을 함께 쓴 동료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가져와 읽었다. 나는 책꽂이에 꽂혀 있던 불교 창시자 고타마 싯다르타의 생애를 다룬 만화책을 읽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태어난 김에 부처가 된 것이, 혹은 애초에 부처로 점지받아 태어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전생에 10만 겁의 시간 동안 좋은 일을 했고 그 결과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됐다. ‘한 대로 받는다.’ 불교의 주요한 가르침 중 하나다. 내가 했던 일이 지금의 내가 되고 내가 하는 일이 미래의 나를 만든다. 싯다르타는 부처가 되고 40년 동안 인도 전역을 돌아다니며 자신이 깨달은 바를 사람들과 나눴다. 그리고 어쩌면, 아마, 그 결과, 내가 2022년 11월 20일 흥국사에 있다. ‘그냥’은 없는 세계. 그것이 불교의 세계관이다.

템플스테이 숙소가 있는 혜명선원.
템플스테이 숙소가 있는 혜명선원.
아침 예불 드리러 가는 길.
아침 예불 드리러 가는 길.

아침 예불은 새벽 5시에 시작한다. 4시 50분부터 숙소 주변에서 목탁 소리가 울렸다. 우리는 벌써 일어나 옷을 입고 있었다. 꿈자리가 뒤숭숭했지만 일단 나가야 했다. 

“반팔 입으면 추울까요?”

“...패딩 입으세요.”

아침 예불은 전날 저녁 예불과 마찬가지로 약사전에서 열렸다. 스님의 반야심경과 천수경 독송에 맞춰 절을 올린다. 예불하며 올리는 절은 오체투지라 하여, 이마와 두 무릎, 양 팔꿈치를 땅에 대어 최상의 예를 갖추는 형태다. 일반적인 절과 비슷하지만 크게 두 가지가 다르다. 무릎을 꿇은 뒤에는 두 발을 포개는데 왼발이 오른발보다 위로 온다. 이마를 바닥에 대고서는 바닥을 짚은 두 손을 뒤집어 귀 옆에서 한 치가량 올렸다가 다시 내린다. 부처님의 발을 머리 위로 올린다는 의미에서다. 바닥에서 일어나면 절 한 번이다. 백팔 번 일어나면 108배다. 우리는 60번 정도 일어났다. 약간 숨이 찼다. 예불 막바지, 스님은 사방팔방으로 복을 날렸다.

 

운전자 안전운전
농업자 연년풍년
상업자 운수대통
학업자 학업성취
단명자 수명연장
이태원 사고 희생자...

아침 예불을 마치자 6시라 곧장 공양간으로 향해 약간은 멍한 상태로 고추장에 밥과 나물을 비벼 먹은 뒤 숙소로 돌아와 쓰러지듯 잤다. 눈을 뜨자 10시. 정리하고 나갈 시간이었다.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동료가 벌써 이불을 개어 넣고 있었다. 나는 빗자루를 가져와 머리카락을 쓸었다. 하룻밤 사이에 많이도 빠졌다 싶었다. 템플스테이 단체복을 빨래함에 넣고 나니 떠날 준비 완료. 하지만 그냥 가기는 아쉬웠다. 원래대로라면 아침에 한미산 둘레길을 걸어야 했다. 


오르락내리락 둘레길, 체험과 휴식

“헉!”

“왜요?”

“가방이...”

절 뒤편을 따라 한미산 초입을 오르던 도중 동료가 뒤를 돌아보았다. 가방이 없어졌다고 했다. 우리는 급히 내려가 가방을 찾았다. 하지만 돌탑이 잔뜩 있는 벤치에도, 사찰 종무소에도, 숙소에도. 가방은 없었다.

한미산 초입 나무 둥치에 쌓인 돌탑들.
한미산 초입 나무 둥치에 쌓인 돌탑들.

“아, 거기 한번 다시 가보죠.”

가방은 빨래통 깊숙한 곳에서 나왔다. 우리가 옷을 넣고 다른 사람들도 옷을 넣어서 처음엔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가방도 찾았겠다, ‘울퉁불퉁 조신조심길’을 올라 ‘바람소리길’을 따라서 ‘오르내리는 두레박길’을 돌 차례다. 둘레길 코스는 40분 내외로 짧았지만 가파른데다 낙엽이 많이 쌓여 발이 자꾸 미끄러졌다. 게다가,

“멧돼지, 낮에는 안 나오겠죠?”

몰랐으면 모를까. 며칠 전에도 멧돼지가 나왔다는 스님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바싹 말랐지만 빽빽한 나무들 틈으로 저 멀리 북한산이 보였다. 패딩은 벗은 지 오래다. 둘레길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자 정오였다. 점심 공양하고 가라는 권유를 뒤로 하고 우리는 불이문(나갈 때는 해탈문)을 지나 일주문을 나섰다. 안녕, 흥국사. 안녕, 템플스테이. 전날 만든 종이 연꽃을 하나씩 들고 같은 버스에 올라탄 우리는 얼마간 함께 가다가 헤어졌고 나는 그 뒤로 한 시간 정도 더 걸려서 집에 도착했다.

들어올 때는 해탈문, 나갈 때는 불이문.
들어올 때는 해탈문, 나갈 때는 불이문.
사찰의 경계, 일주문을 뒤로 하다.
사찰의 경계, 일주문을 뒤로 하다.

“잘 쉬고 왔어?”

“음, 뭔가 이것저것 많이 했는데.”

혹여 찌그러질까 고이 모셔 온 종이 연꽃을 TV 앞에 내려놓고 기지개를 켰다. 그렇다. 템플스테이는 ‘쉬기’보다 ‘했다’에 가까웠다. 역시. 쉬는 거, 만만치 않구나. 아직 사흘이나 남은 휴가는 또 어디를 다녀올까 생각하며 잠깐 눈을 붙였는데. 저녁에 눈을 뜨니 머리가 무겁고 뺨이 뜨거웠다. 제대로 몸살에 걸려, 딱 사흘 아무 것도 하지 않아주니 나았다. 단 하루 템플스테이로 나흘 치 체험과 휴식을 얻은 셈이다.

고양이 까미와 종이 연꽃.

유해강 기자 haekang.yoo@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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