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팡이를 짚고 길을 다니다 보면 일면식도 없는 이에게 반말을 듣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쪽으로 와!" "거기로 가면 안돼!" "어디 가려고 나왔어?" 도움을 주려는 의도인 것을 알면서도 나름 성인으로서의 존중받을 독립적 자아를 가진 나로서는 상대의 나이와 지위에 무관하게 낯선 반말은 그다지 기분 상쾌한 일은 아니다. 나의 비현실적 동안이나 상대의 근본적 진심 따위에 상황의 긍정적 해석을 위한 최면을 걸어보기도 하지만 지팡이가 상징하는 사회적 약자의 본능적이고 반사적인 경계는 그 반말의 타깃이 나인 줄 전혀 모른다는 척하는 유치한 결론으로 끝날 때가 많았다.
주민들은 김 대표가 있는 자리를 향해 삿대질하고 달려들며 "안 나가? 좋은 말할 때 나가. 지역 주민이야?"라고 소리쳤다. 교육청 직원들이 몸으로 막았으나 격양된 주민들은 직원들을 밀치며 김 대표 자리로 재차 달려들었다. 다른 주민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고성을 지르며 "끌어내! 끌어내!"라고 외쳤다. 이날 자리에 대해 이은자 부대표는 "예상은 했지만 착잡하다. 장애인 싫다는 말, 막상 들으면 잘 의연해지지가 않는다"면서 터지는 울음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이 부대표는 "아무리 욕해도 우리는 포기할 수가 없다. 더 심한 모욕을 주셔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통과의례라고 생각하고 견딜 것이다"라고 말했다.
시각장애 특수학교인 우리학교의 교육과정과 시간표는 일반학교의 그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공통교육과정을 온전히 이수하기 때문에 국어, 영어, 수학, 체육, 미술까지도 교실 한쪽 벽에 걸린 시간표에 온전히 담겨 있다.그런데 학교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것부터가 신기함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국어는 한자도 많고 분량도 많은데 어떻게 하고 수학은 그래프나 도형이 있는데 어떻게 하고 체육은 움직여야 하는데 어떻게 하고 미술은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하냐는 물음을 한 가지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끊임없이 쏟아낸다. 그들은 분명히 불편함을 불가능으로 강력하게 착각하게 하는 마법에 걸린 것이 분명했다.
미국 뉴저지 주 럿거스대학교(Rutgers University)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비장애인이 숙박을 신청했을 때 승인을 받는 비율은 75%였으나, 왜소증을 가진 경우에는 61%, 시각장애인인 경우에는 50%, 뇌병변장애인은 43%, 척추손상 장애인은 25%에 불과했다. 연구진은 이러한 결과가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시각 때문만은 아니라며, 대부분의 거절 사유가 '접근성 미비'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에어비앤비와 같은 사업들이 서비스를 더 많은 고객에게 확대할수록 장애인 고객에 대한 배제가 이뤄지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표했다.
사전투표소로 발표된 3516곳 중 장애인이 접근 불가한 곳이 644곳(18.3%)이나 되었다. 서울의 경우 424곳 중 160곳(37.7%)에 달해, 10곳 중 4곳은 장애인이 들어갈 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선장차연은 사전투표 첫날인 4일,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 장애인 참정권 실태를 접수받았다. 상황은 예상한 대로 엉망진창이었다. 휠체어 탄 장애인은 투표소가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 지하 혹은 2, 3층에 설치되어 있어 결국 투표하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또는 엘리베이터 없이 휠체어 리프트만 있어 이를 이용하려고 하니 전동휠체어는 무겁다고 거절당하기도 했다.
불편함을 공유하고 살아가는 특수학교 내에서도 한 걸음 더 불편한 소수 중의 소수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마음을 아리게 만들었다. 통합교육이니 사회통합이니 이야기가 늘어가면서 특수학교에는 둘 이상의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시각과 지체 시각과 청각 시각과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도 그 수가 이제는 적지 않다. 그러나 아직 맹학교에서 휠체어 탄 아이를 위한 독립보행 교육을 위한 준비는 아무것도 되어 있지 않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일 년에 몇 번쯤은 전쟁상황에 대비하여 민방위 훈련을 경험하게 된다. 책상 밑으로 몸을 숨기거나 정해진 대피소로 줄을 지어 이동하는 것은 늘 그것이 최선의 안전인가 의심이 들긴하지만 수십년간 변하지 않은 규칙인 걸 보면 특별이 이의를 제기한 이도 없는 것 같다. 또 하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귀청을 찢을 듯한 사이렌이다. 이 순간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우리 학교의 아이들에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소통을 소리에 의지하는 시각장애 아이들에게 그 시간은 또 하나의 장애, 의사소통의 장애가 발생하는 순간이 되어버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