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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스토리 | 하버드 한국 청년들의 우간다 식수난 해결 도전기 - 구슬, 계요한 스파우츠 공동대표 ①

찾을 수 있는 사회적 기업 콘테스트나 지원금 등엔 싹 다 지원했다. 구슬이가 구글링에 능해서 그런 건 기가 막히게 잘 찾는다. (웃음) 지원 가능한 덴 다 지원했다고 보면 된다.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때 제일 중시했던 것은 바로 '지속가능성'이다. 통상적인 NGO의 접근방식과 달리하고 싶었다. 돈 많은 나라에서 후원 받아 좋은 일을 하지만 후원이 끊기면 언제든 망할 수 있는 한계를 우린 넘어서고자 했다. 그래서 가치 있는 제품을 만들어 최종소비자에게 판매함으로써 그 수익금으로 지속가능하게 운영되는 모델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정체성에 있어서는 여전히 고민이 많은데 처음부터 지속가능성에 집중했던 건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 홍형진
  • 입력 2015.04.14 17:30
  • 수정 2015.06.14 14:12

동아프리카 내륙에 위치한 우간다는 안전한 식수 접근성의 평균치가 65% 정도밖에 되지 않는 물부족 국가다. 3750만 명의 인구 중 천만 명 이상이 콜레라 등의 수인성 질병에 노출되어 고통 받고 있다. 현지의 NGO들은 이것도 과소계상된 것으로 실제론 인구의 절반 정도가 깨끗한 물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입원환자의 절반가량이 수인성 질병으로 인한 것이고 유아사망의 첫 번째 원인 또한 그렇다.

이런 현실을 개선해보고자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선 청년들이 있다. 놀랍게도 그들은 한국인(및 한국계) 하버드 대학생들이다. 1학년 때의 봉사활동에서 느낀 바가 있어 2학년 때 직접 뛰어들어 사업을 구상하고 추진하는 행동력을 보여주었고, 그것이 지속되어 지금의 사회적 기업 '스파우츠'가 되었다. 정식명칭은 'SPOUTS(Sustainable Point-Of-Use Treatment and Storage) of Water'이고 흙탕물을 걸러서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세라믹 정수 필터'를 저렴하게 보급하는 일을 한다.

그들이 들려줄 지난 3년간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하드코어 고생담이다. 그들의 이야기에 부유한 환경이나 풍부한 지원 같은 건 전혀 없다. 세상을 좀 더 좋게 바꿔보겠다는 진정성과 소위 '맨땅에 헤딩'하는 열정만으로 뭉친 청년들이 있을 뿐이다.

현재의 기반은 온갖 콘테스트 등을 섭렵하며 모은 상금과 여러 기부금 등을 재원으로 다진 것이다. 한국에서도 2013년 세상콘테스트에 출전해 수상했고 2014년엔 함께일하는재단에 의해 '스마일투게더 파트너십'으로 선정되었다.

대체 그들은 왜 그 험난한 길에 뛰어들어 온갖 고생을 자초한 것일까?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스파우츠의 공동대표인 구슬 씨(미국, Kathy Ku, 생물공학 전공, 25세), 계요한 씨(한국, John Kye, 경제학 전공, 26세)와 전화로 대화를 나눴다.

(이 인터뷰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고 두 번에 나뉘어 제공된다. 1~2부에는 오기와 열정으로 공장을 만들기까지의 과정과 그렇게 만들어낸 사업의 현황, 전략, 방향성 등을 담았다. 3부에는 불가능에 도전하는 청년들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속내 등이 담긴다.)

1) 오기와 열정으로 만들어낸 첫 공장

- 사업 시작의 계기가 구슬 대표의 봉사활동으로 알고 있다. 어떤 성격의 봉사활동이었고 거기서 뭘 느꼈는지 듣고 싶다.

구슬(이후 구) : 대학 입학 후 '국경 없는 엔지니어(Engineers Without Borders)'를 통해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물 프로젝트에 임했다. 물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적정 기술을 연구하고 우물을 파는 일이었다. 1학년 마친 후엔 우간다에도 갈 기회를 얻었는데 당시 우간다는 내전이 끝나고 NGO(비정부기구)들이 대거 들어가던 때였다. 난 임신한 여학생들을 위한 여자고등학교에서 깨끗한 물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수업을 맡았다. 현지인들과 생활하며 도미니카에서와 같은 심각한 물의 문제를 느꼈고 이를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 학교로 돌아와 우간다의 실정에 맞는 기술을 공대생으로서 찾아보았다. 그 결과 우간다에는 세라믹 정수 필터가 아직 보급되지 않았다는 점과 원료가 될 수 있는 점토가 매우 풍부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현지인들 역시 항아리(필자 주 : 테라코타)에 친숙했기에 점토로 필터를 만들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NGO들에게 생산해볼 의향이 있냐고 물었지만 다들 분배에만 집중할 뿐 생산엔 전혀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와 다른 학생이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요한이를 만났다.

- 처음 시작할 때의 인력구성은 어떻게 되었나? 2013년 세상콘테스트 당시의 발표 자료를 보면 한국인 혹은 한국계로 추정되는 이름이 일곱이나 된다. 특별한 커뮤니티 등이 있었던 건가?

구 : 그런 건 아니다. 처음엔 동아리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많은 학생들이 관심을 주며 들락거렸는데 결국 남은 이들은 대부분 한국계였다. 어쩌다 보니 그리됐다. 뜻도 맞고 대화도 잘 통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 중고등학교까지 공부하고 넘어온 학생도 있고 한국어를 아예 못하는 교포도 있다. 사업화가 이뤄진 지금은 우리 둘만 남았다. 꾸준히 우간다 가기도 힘들고 대학 졸업 후엔 각자의 길이 있으니까.

- 하버드 내의 콘테스트에 입상하며 본격적으로 사업화가 되었다. 가장 중요한 사건 같은데 그 이야기를 듣고 싶다.

계요한 (이하 계) : 제품의 디자인 같은 건 이미 나와 있었지만 그걸 어떻게 현실화하느냐가 문제였다. 당시 나와 김경돈이라는 친구가 비즈니스 담당이었는데 초기 자금을 모으기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알아보다 상금이 걸린 경연대회를 눈여겨보게 되었다. 당시 미국은 사회적 기업, 청년 창업 등을 밀어주는 분위기여서 그런 기회가 여럿 있었다.

마침 또 때가 잘 맞아서 정확히 그 시기에 하버드에 첫 대회가 신설되었다. 학부뿐만 아니라 대학원까지 모두 참여하는 총장배였다. 2학년 마지막 학기에 경돈이와 내가 일주일간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준비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 전체 2등이었다. 특히 기분이 좋았던 건 학부생으로는 우리가 유일하게 수상했다는 점이다. 다른 팀들은 모두 대학원생이었고 교수님과 프로젝트를 짜온 팀도 있었다. 좋은 결과에 스스로도 많이 놀랐고 이 프로젝트가 현실화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 그때 상금이 정확히 얼마였나? 그리고 그 액수는 원래 예측한 초기자본을 충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나?

계 : 총 2만 달러를 수령했다. 결선에 나가며 5천 달러를 받았고 2위 수상하며 1만5천 달러를 추가로 받았다.

구 : 당시 우리가 콘테스트에 제출한 초기자본 예측은 5만 달러였다. 그것도 굉장히 적게 잡은 수치다. 최소한의 공간, 최소한의 기계 등으로 예측했을 때 5만 달러 정도가 있으면 시작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스파우츠는 2014년에도 하버드에서 'Dean's Cultural Entrepreneurship'을 수상했다. 우측의 시상자는 첼리스트 요요 마.

- 그리고 우간다로 갔다. 공장부지 문제로 현지의 쿠미 대학교(Kumi University)와 파트너십을 맺은 걸로 아는데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는가?

구 : 로컬 파트너를 찾기 위해 2012년 겨울방학에 우리 둘이 우간다를 방문했다. 처음에 연락 온 곳은 캄팔라 대학이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소통 문제로 인해 진행이 너무 느려서 결국 대사관을 통하기로 결정했다. 처음엔 실수로 북한 대사관에 데려다줬었다. (웃음)

한국 대사관이 우간다 현지의 대학보다 한국의 선교사들이 설립한 대학과 함께하는 게 어떠냐는 조언을 주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쿠미 대학인데 땅도 넓고 점토도 아주 많은 지역이라 환경이 좋았다. 총장과 교수들 역시 우리 프로젝트를 아주 반기며 땅도 충분하니 한번 해보라고 지원해주었다. 2012년 6월에 본격적으로 공사에 착수해 자그마한 공장을 지을 수 있었다.

- 대학 측에선 별다른 요구사항이 없었나? 완전 무상이었던 건가?

구 : 생산하게 되면 학생들이 공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이었고 추후 매니지먼트를 학교 측에 넘기는 이야기도 오갔다. 또 필터 하나를 판매할 때 50센트, 1달러 정도를 학교 측의 지분으로 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렇게 MOU를 체결했다. 그 외에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학교 사람들이 워낙 우간다에서 오래도록 활동해온 덕분에 경험이 풍부했다.

- 장소 문제는 해결됐지만 그 외에도 금전적인 문제는 여전했을 듯하다. 당시 Kasiisi Project(이하 KP)와 협약을 맺으며 기부금을 받을 수 있게끔 되었는데 이는 어떻게 이루어진 건가? 실제 기부금은 좀 들어왔나?

(필자 주 : 미국에서는 '501ⓒ3'이라는 문서를 통한 정부허가를 받아야만 해당 단체가 개인에게 공제 혜택을 줄 수 있다. 이 허가를 받지 못하면 기부금을 받기가 쉽지 않은데 절차가 매우 까다롭고 또 오래 걸린다.)

계 : 굉장한 우연과 인연이 있었다. 하버드 기숙사에는 학생들에게 여러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모범이 되는 역할을 하는 기숙사장이 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기숙사장 교수님이 우간다에서 25년간 NGO(=KP)를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궁금해 하는 모든 것들을 다 가르쳐줬을 뿐 아니라 피스컬 스폰서십(Fiscal Sponsorship)까지 도와주었다. 공식 등록된 자선단체에게 후원 받는 단체면 그를 통해 후원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인데 우리를 지정해준 것이다. 덕분에 기부자에게 공제 혜택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기부금이 많이 들어오진 않았다. 아무래도 사업 초기 단계였기에 여러 미숙한 점이 많았다. 하지만 대회에 나가거나 재단 쪽에 지원금 신청을 할 때에 매우 큰 힘이 되었다. KP가 피스컬 스폰서해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입지가 많이 올라갔던 것이다. 당장의 후원보다는 그런 도움이 더 컸다.

- 그 시기에 콘테스트에 많이 나갔던 걸로 안다. 그때 어디에 주안점을 뒀고 또 무엇을 느꼈나?

계 : 찾을 수 있는 사회적 기업 콘테스트나 지원금 등엔 싹 다 지원했다. 구슬이가 구글링에 능해서 그런 건 기가 막히게 잘 찾는다. (웃음) 지원 가능한 덴 다 지원했다고 보면 된다. 초기에 함께하던 한국인(및 한국계) 멤버들은 우간다 현지 일보다는 이런 대회 등의 지원사격을 해주었다. 미국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때 제일 중시했던 것은 바로 '지속가능성'이다. 통상적인 NGO의 접근방식과 달리하고 싶었다. 돈 많은 나라에서 후원 받아 좋은 일을 하지만 후원이 끊기면 언제든 망할 수 있는 한계를 우린 넘어서고자 했다. 그래서 가치 있는 제품을 만들어 최종소비자에게 판매함으로써 그 수익금으로 지속가능하게 운영되는 모델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정체성에 있어서는 여전히 고민이 많은데 처음부터 지속가능성에 집중했던 건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 돈을 모으는 단계인 동시에 사업도 짜고 스스로 공부도 하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 일들을 공장 건설과 병행했던 셈인데 그때 애로사항은 없었나? 현지인들과의 융화 문제라든가...

구 : 공장을 짓기 시작하던 시기엔 하버드의 콘테스트에서 번 2만 달러가 전부일 때였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규모의 건물을 지으려면 3만 달러가 필요하다고 해서 거의 패닉이 왔다. 그래서 최대한 돈을 아끼려고 도급업자(contractor)를 쓰지 않고 직접 열세 명을 고용했다. 인부들이 시멘트가 필요하다, 삽이 필요하다, 라고 말하면 차를 빌려 동네에 가서 우리가 구입해왔다. 필요한 것을 사서 나르는 데만 거의 두 달 정도 걸렸다. 특히 우간다는 가격표가 없어서 전부 다 흥정해야 했던 힘든 시기였다.

계 : 우간다는 교통비, 밥값 등 삶의 모든 게 다 흥정이다. 누군가가 믿을 만한 가격을 제시해주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외국인들에겐 몇 배 더 불러야 한다는 문화도 강하다. 그래서 안 속기 위해 정말 피곤할 정도로 흥정하고 다녔다. 우린 빈털터리 학생인데 학생 디스카운트 없나, 옆 동네는 이만큼 부르는데 넌 얼마에 줄 수 있나 등등.

일부러 찢어진 옷도 입고 다녔다. 얘들은 어떻게 등쳐먹을 수 있는 외국인이 아니다, 정말 하드코어하게 가난한 녀석들이다, 이런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대학생의 객기, 오기, 열정 같은 거였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무엇을 입고 다니든 우리가 무엇을 먹고 다니든 간에 처음에 목표했던 바를 무조건 달성하자는 생각뿐이었다.

구 : 사실 워낙 옷이 없기도 했다. (웃음) 여하튼 그렇게 노력한 덕분에 결국엔 선교사들이 얘기한 것의 반도 채 들지 않았다. 1만5천 달러 정도? 가지고 있던 예산 안에서 건물을 지은 것이다.

계 : 처음부터 끝까지 맨땅에 헤딩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우간다라는 생소한 나라에 건물을 짓자고 말한 후 진짜로 짓기 시작한 거니까.

그렇게 지은 첫 공장에서

- 건물을 지은 이후는 어땠나? 기계나 설비도 들여야 할 것 아닌가.

계 : 계속 맨땅에 헤딩했다. (웃음) 필터를 어떻게 만드는지는 많은 연구를 통해 확실히 이해하고 있었고 관건은 효율성이었다. 그래서 꼭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설비만 가지고 시작했다. 몰드나 분쇄기 같은 것들. 기계를 만든다는 곳은 다 찾아다니며 우리가 원하는 걸 만들어줄 수 있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발로 뛰며 필요한 기계와 설비를 갖춰나갔다. 또 미국에서 크라우드 펀딩도 병행했다. 온라인에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리고 돈을 모금했다.

구 : 지금은 다 자동화가 되었는데 그땐 아니었다. 자동차를 들어 올리는 플로어 잭 같은 걸로 찍어내곤 했다. 필터 하나를 만드는 데에도 거의 30분이 걸렸다.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완전 수작업으로 한 것이다. (웃음)

- 그렇게 만들어서 판매는 좀 이루어졌나?

계 : 팔지 못했다. 이론상으론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단지 이론만으로 생산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게 되었다. 물이 완벽하게 걸러지지 않는 등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제품을 판매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렸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은 들었다. 당장 판매하진 못하지만 그 경험을 기반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은 있었다.

- 그런 실험의 단계를 미국에서 미리 거칠 순 없었나?

계 : 세라믹 필터라는 기술 자체가 현지에서 어떤 재료를 구하느냐에 따라 생산에 큰 영향을 끼친다. 주원료인 점토의 성분이나 특성이 지역마다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변수 때문에 꼭 현지에서 테스트를 해야 한다. 그래서 점토는 충분하니까 일단 우간다에서 해보자는 식으로 접근했던 것이다.

구 : 세라믹 필터는 전 세계에 50개 정도의 공장이 있다. 미국에서부터 그들의 조언을 많이 받았지만 우간다 현지에서 해본 경험은 없었다. 쿠미 대학의 우리 공장에서 첫 테스트를 했던 것이다. 지금은 몰드 같은 설비가 철로 되어 있지만 그땐 다 나무였다. 안 되면 바꿀 수 있도록 하려고.

2) 스파우츠 사업의 현황과 방향성

- 필터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먼저 가격이 궁금하다. 우간다 현지의 기준에서 그들이 체감하기에 어느 정도의 가격인가?

계 : 20달러 정도의 가격이다. 우간다 육체노동자의 임금이 2~3달러 정도니까 노동하는 사람들이 적어도 일주일 정도의 임금은 모아야 살 수 있다.

구 : 현지 중산층에게는 괜찮은 가격이지만 시골로 들어가면 조금 부담이 되는 수준이다. 그래서 기저층(bottom of the pyramid)이 필터를 살 수 있게 대출을 해준다. 6~12개월 정도에 걸쳐 매달 할부로 1~2달러씩 갚아나가는 파트너십을 작은 NGO 하나와 체결했다. 이를 확대해서 좀 더 크게 나갈 생각이다. 캄보디아의 경우는 월드비전(필자 주 : 세계 최대의 개신교 구호재단 중 하나)을 통해 매달 2~3천 개의 필터가 판매되고 있는데 우리도 그런 파트너십 체결을 위해 대화하는 중이다.

(필자 주 : 스파우츠는 필터의 원료를 우간다에 풍부한 점토로 함으로써 가격을 대폭 낮출 수 있었다. 세라믹 필터를 수입할 경우 가격은 150~300달러에 달한다.)

- 필터의 정수 용량이나 수명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나?

계 : 시간당 2리터 정도를 정수할 수 있다. 우간다 평균 가구가 6인인데 8명 정도의 가정까지는 충분히 필터 하나로 생활할 수 있다. 품질보증기간은 2년이다. 최소 2년은 거뜬히 사용할 수 있고 길면 5년까지도 쓸 수 있다. 세라믹 필터는 세계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기술이라 연구된 자료가 충분하고, 세계 50개 이상 공장들의 경험과 노하우 등을 통해서도 입증되어 있다. 2년의 보증기간은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이다.

- 우간다의 물은 충분한가? 그냥 거르기만 하면 되나?

구 & 계 : 빅토리아 호수가 워낙 큰 데다 1년에 두 번씩 3개월 정도 우기가 있다. 나일강의 발원지도 우간다다. 호수와 강이 있고 강수량도 많기 때문에 정말 열악한 지역이 아니면 수자원은 매우 풍부하다. 거르기만 하면 된다. 우리 공장도 별도의 수도설비 없이 빗물을 받아서 운영할 정도다.

- 그럼 필터를 통해 의료비는 어느 정도 절감할 수 있나? 우간다는 수인성 질병이 심각하지 않은가.

구 : 수인성 질병으로 인한 의료비가 매년 1억7천만 달러에 달한다. (필자 주 : 우간다에선 현재 약 천만 명 정도가 수인성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으니 1인당 평균 17달러의 의료비 부담이 있다. 6인 가족을 기준으로 하면 매년 102달러. 스파우츠가 제공하는 20달러짜리 필터를 구입하면 최소 2년 이상 깨끗한 물을 공급받을 수 있으니 상당한 의료비를 절약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계 : 우간다에는 수인성 질병을 안이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꽤 많다. 설사하고 열 좀 나면 괜찮아지겠지, 라는 식이다. 그래서 정부에서도 수인성 질병이 얼마나 위험한지 교육을 많이 하고 있고 더러운 물을 마시면 위험하다는 인식이 조금씩 생기고 있다. 물을 끓여 마시는 추세다.

그런데 물을 끓이는 숯 가격이 한 달에 4달러 정도 된다. 그래서 우린 숯 사는 돈 조금만 모아서 필터에 투자하면 최소 2년 동안 숯을 안 사도 되니 훨씬 이득이라는 식으로 설득한다. 깨끗한 물을 더 경제적으로 안전하게 마실 수 있는 방식이라고 접근하면 우간다 어머니들의 귀가 솔깃한다. 아낀 돈을 더 좋은 식사나 자식 교육에 투자할 수 있으니까.

- 아까 구슬 대표가 말한 대출과 엮으면 할부상환금이 숯 비용보다도 낮을 것 같다.

계 : 맞다. 그게 우리가 생각하는 지속가능한 지불 방법이다. 지금 그걸 위해 여러 단체들과 협의 중이다. 소액융자는 초기 자본을 많이 요구하기 때문에 큰 단체와 협의 중이다. 그러다보니 프로젝트 진행이 조금 조심스러워진 상황이지만 캄보디아, 과테말라, 미얀마 등에 성공사례가 많기에 희망적으로 보고 있다.

- 스파우츠 입장에선 어떤가? 필터가 생산 원가 관점에서 수익성은 있는 상품인가?

계 : 인건비는 물론 캄팔라 시장까지의 배달까지 싹 다 합쳤을 때, 그러니까 모든 비용을 종합했을 때 개당 8~9달러 정도 들어간다. 현재 20달러 정도의 가격에 팔고 있으니 수익성은 충분히 있는 제품이다.

- 그럼 현재까지의 판매량은 실제로 어느 정도 되나?

구 : 2013년은 쿠미 대학의 첫 공장에서 실험을 하며 만들어가던 단계라 판매에까지 이르진 못했다. 완전한 형태의 필터를 내놓은 건 2014년이다. 그땐 학교를 위시한 공공기관에 설치하는 게 중심이었고 일반에게 판매는 하지 않았다. NGO를 통해 100개를 납품한 적은 있다. 75개는 NGO 측에서 구입했고 25개는 우리가 기부하는 형식이었다.

계 : 일반에게 판매하기 시작한 건 올해부터다. 작년에 기존의 쿠미 대학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캄팔라 인근으로 옮기며 공장을 크게 확대했다. 자동화가 된 기계 설비까지 갖추며 첫 공장보다 3~5배를 더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올해 2월 중순부터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했는데 현재까지 500~600개 정도가 판매되었다. 우간다 평균 가족 구성원인 6명을 고려하면 3천~3천6백 명에게 공급한 셈이다.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이 정도의 성과를 거둬서 고무적인 상황이고 세일즈에 더 집중하면 한결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새로운 공장 시설에선 매달 1500~2000개의 필터를 생산할 수 있는데 꾸준히 그 정도를 파는 게 일단 목표다. 그럴 수 있다면 매달 12,000명 정도, 1년이면 14만 명 정도에게 깨끗한 물을 제공할 수 있다.

- 쿠미 대학과의 관계는 완전히 정리된 건가?

구 : 그렇다. 여전히 쿠미 지역에서 조금씩 일을 하고는 있지만 쿠미 대학과는 연관이 없다.

계 : 나쁘게 헤어진 건 절대 아니다. 쿠미에서의 첫 2년간 활동은 레슨으로 생각한다. 우간다에서 어떻게 사업해야 하는지에 대한 배경지식을 쌓고 노하우를 얻은 시기였다. 수도인 캄팔라로 옮긴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다는 느낌이다.

확장이전한 새 공장의 모습

- 자국 국민들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사업인데 우간다 정부 등의 지원은 없나? 제휴하겠다는 그런 인식이 있을 듯하다.

계 : 중요한 대목이다. 캄보디아에서 세라믹 필터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정부가 공식적으로 후원을 했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유통되는 데 정부가 큰 역할을 했다. 우리도 캄팔라 쪽으로 공장을 옮기면서 정부와 제휴를 맺어야겠다는 인식을 하고 있고 실제 계속해서 정부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태다.

우간다 정부는 대단히 비효율적으로 운영된다. 캄팔라시 공중보건부에 가니 상수도원으로 가라고 하고, 거기 가니 수자원부로 가라고 했다. 또 뒷돈이 들어가지 않으면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인맥을 활용하고 있다.

구 : 최근엔 미국 대사관 직원과 같이 갔다. 미팅 역시 대사관 측에서 잡아줬다. 한데 거기서도 우리가 할 일이 아니라며 다른 부서로 보내더라. (웃음) 다시 대사관을 통해 새로운 미팅을 잡아둔 상태이다.

계 : 우리 스파우츠의 장점이라면 나는 한국인이고 구슬이는 미국인이라는 점이다. (필자 주 : 양국 대사관의 도움을 다 얻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프로젝트로 대사관에 접근하면 대사관 직원들이 크게 반겨주고, 또 나름 결과도 내어왔으니 정말 많이 도와준다. 이런 커넥션을 통해서 우간다 정부와 진행하려고 하는 단계에 있다.

박종대 대사에게 필터를 설명하는 계요한 대표

- 스파우츠는 단순한 자선사업이 아니라 생산 및 판매를 하기에 현지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어 보인다. 실제로 어느 정도의 인력이 채용되어 있나?

계 : 현지인 열네 명을 채용한 상태다. 대부분 생산직이지만 한 명은 상점에서 세일즈를 담당한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가 지속가능하게 운영되려면 매니저급 인력도 현지화해야 한다는 생각에 새로 한 명을 뽑아 교육시키는 과정에 있다. 공장의 매니저급으로.

- 그러면 지금 둘 다 우간다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건가? 월급들은 얼마나 받는지 궁금하다.

구 : 우리 둘 외에도 빌리(Billy)라는 친구가 한 명 더 있다. 이 셋이 미국에서 건너가 이 일을 위해 우간다에 정착한 상태고 나머지는 모두 현지인이다.

계 : 학생단체나 동아리에 가깝던 초기 단계에선 많은 학생들이 들락거렸지만 사업화된 현재 우간다 현지에서 싸우는 건 우리 둘과 빌리까지 셋이 전부다. 이전에 함께했던 친구들은 필요에 따라 한국과 미국에서 지원사격을 해주고 있다.

구 : 그동안 생활비로 한 사람당 100달러씩 받았다. 우간다에서 우리가 사는 수준으로는 전혀 무리 없는 금액이었다. 올해부터는 요한이와 내가 월급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그러고 있는데 어찌될지는 모르겠다.

- 이야기를 듣고 보니 사회적 기업인지 비영리단체인지 애매하다. 정확히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나?

계 : 혼란스러운 게 당연하다. 우리도 그 정체성에 대해서 항상 고민을 하니까. 법적인 형태를 살펴보면 미국에서는 비영리단체로 등록되어 있다. 그리고 우간다에서는 유한책임 사기업(주식회사)으로 등록되어 있다. 설명하자면 미국의 비영리단체가 우간다의 주식회사를 모두 소유하고 있는 형태다. 그래서 경제적 활동에 대한 내역을 모두 미국에 보고해야 한다. 비영리단체가 운영하는 사기업이기 때문에 항상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한다.

올해부터 우리가 월급을 받기로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 일이 지속가능하게 운영되려면 모든 종사자에게 충분한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해야만 한다. 처음엔 좋은 일 하자는 뜻에서 시작했을지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선 영리활동을 하는, 즉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단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기업의 모습을 갖춘 단체로 꾸리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구슬이를 설득했다. 빠듯하게 운영하는 건 알지만 그렇더라도 월급은 받자, 그렇게 기업의 면모를 바꿔나가자, 라고. 마침 세일즈가 조금씩 되고 있어서 운영비 부담 등은 덜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도 직원도 모두 각자의 일에 합당한 보상을 받는 방향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여러 애로사항을 겪으면서 계속 배운다.

구 : 이런 데서 일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accident)이 많이 생긴다. 우간다에서 취업비자를 얻으려면 1년에 2,500달러 정도를 내야 하는데 그럴 때면 진짜 '멘붕'이 온다. "너희 미국 사람 아냐? 돈 많지 않아?"라는 식으로 나올 때면 정말 울고 싶어진다. (웃음)

- 중요한 기로에 서 있는 느낌이다. 새로운 공장으로 옮기며 일반 대중에게 판매도 시작했고, 사업 역시 좀 더 기업의 형태로 다듬어가는 과정에 있다. 결국 유통 채널을 다각화해서 판매량을 증진하는 게 관건일 텐데 여기에 대한 계획을 듣고 싶다.

계 : 정확히 그렇다. 캄팔라로 옮긴 후 유통, 판로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현재 다섯 가지 주요 판로를 입안해둔 상태다. 첫째는 마케팅 비용이 안 들면서도 초기 판매를 크게 도와줄 수 있는 NGO와의 협업이다. UN이나 유니세프 같은 큰 NGO들은 우리가 생산할 수 있는 양의 몇 배를 단번에 매입할 수 있는 단체다. 현재 남수단 난민캠프에 물이 많이 필요한 상태라 보급하려고 알아보는 중이다. 초기에 숨 쉴 구멍을 뚫어줄 수 있는 건 역시 NGO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B2C, 소비자에게 판매를 하는 것이다. 현재 캄팔라 인근 지역에 거래처를 몇 군데 뚫어서 팔고 있다. 필터를 공급한 상점들에 세일즈 교육을 해서 팔게 한 후 판매에 대한 커미션을 주는 식이다. NGO 등 다른 판로를 통해 초기 세일즈를 올리고 그 홍보효과와 자본 여유를 마케팅에 집중해 B2C 세일즈를 올리는 게 지금의 구상이다. 궁극적으론 이 B2C가 가능해야 가장 지속가능하게 제품을 유통할 수 있다고 본다. 우간다는 온라인 환경 등이 전혀 구축되어 있지 않아 제품을 알리는 마케팅 비용이 굉장히 많이 든다. 그래서 요즘은 어떻게 접근해야 우간다 현지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배우고 있다.

세 번째는 B2G, 정부에 파는 것이다. 정부에도 깨끗한 물을 필요로 하는 기관이 굉장히 많다. 지금 이야기가 오가는 곳은 우간다 내 교도소들이다. 죄수들에게도 깨끗한 물을 제공해야 하는데 아직도 정수처리 시설이 없어서 물을 사거나 끓여 마시는 실정이다. 여기에 훨씬 경제성 있는 우리 필터를 제공하려고 한다. 경찰서, 군인 캠프 등도 대상이다.

네 번째는 B2B, 다른 비즈니스에 파는 것이다. 여기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육체노동자가 많은 직장은 자연히 깨끗한 물을 많이 필요로 한다. 끓이거나 사는 것보다 필터가 경제적이니 메리트가 있다. 두 번째는 앞서 이야기한 소규모 융자와도 연관이 있다. 직원들 가정에 필터를 공급한 후 그 대금은 월급에서 매달 조금씩 차감하는 식의 할부로 걷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를 주요 판로로 잡고 있다.

구 : 우리 필터는 한번 써본 사람들은 계속 쓴다. 일단 써보면 좋은 걸 안다는 뜻이다. 우리 현지인 직원들 역시 다들 사고 싶은 제품이라고 말한다.

- 구상한 대로 잘 진행되면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걸로 보인다. 그럼 생산과 판매 외의 다른 프로젝트는 없나? 홈페이지를 보니 봉사나 교육 등도 병행하고 있는 모양이던데?

계 : 쿠미 때부터 하고 있다. 관건은 역시 깨끗한 물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있다. 그런 이유에서 우린 개인들에게 필터를 공짜로 나눠주는 방식은 지양한다. 무료로 전달하게 되면 사람들이 주인의식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또 제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깨끗한 물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완벽하게 관리를 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생긴다. 깨끗한 물에 대한 인식도 제고할 수 없고.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주민에게 다가가고 있다.

공공기관에 무상으로 우리 필터를 설치해줬다. 공공기관을 이용하는 주민들이 깨끗한 물을 직접 접하게 함으로써 그런 시설을 갖춰야겠다는 생각을 갖도록 자극하는 것이다. 처음엔 학교부터 시작했다. 학교에 필터를 설치해서 학생들이 학교에 있는 동안만큼은 마음껏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했다. 현재 계획으로는 학교 역시 소액융자 기관으로 활용해볼 생각이다. 학교를 통해 필터를 구입하고 매달 일정금액을 학교가 걷는 식이다.

그뿐 아니라 한국과 미국에서 학생을 모아서 열 명 정도의 단기 자원봉사 팀을 꾸려 운영하기도 한다. 공장에서 일도 하고 인근 공공기관에 가서 깨끗한 물에 대한 교육도 하고. 공중보건, 개인위생 등과 관련한 이런저런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인 봉사단과 함께

(구슬, 계요한 두 공동대표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속내 등이 담긴 3부는 여기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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