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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7월 18일 10시 03분 KST

무역 분쟁 링 위에 오른 한국과 일본이 각각 손에 쥔 무기는?

한국에도 '반격' 카드가 있다

한국과 일본의 무역분쟁은 지난 1일부터 본격화됐다. 이날 일본은 한국 반도체의 핵심소재 3개 품목 수출 심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은 그간 반도체 소재와 관련해 일본 기업이 한국으로 수출할 경우 그 절차를 간소화해왔다. 이날 조치는 한국을 그 ‘우대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내용이다.

 

Oleksii Liskonih via Getty Images

 

일본은 추가조치도 예고했다. 이른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이다. 일본의 전략물자를 수입하기 위해서는 원래 개별 물품마다 각각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화이트리스트에 분류돼 있는 나라다. 한국을 포함한 화이트리스트 27개국(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은 일본의 전략물자 중 비교적 민감도(평화·안전 유지를 위협하는 정도)가 낮은 물품에 대해 개별 허가 대신 포괄허가를 받는다. 이렇게 되면 한국과 일본의 전략물자 수출입에 대한 절차적 장벽이 낮아진다. 일본 기업은 수출 납기를 단축할 수 있고 한국 기업은 필요한 물품을 빠르게 수입할 수 있다.

한국이 화이트리스트에서 빠지게 되면 수출규제 품목이 기존 3개에서 전략물자 전체로 확대되게 된다. 그간 포괄 허가 대상이었던 약 857개 비민감품목에 대해 허가를 일일이 취득해야 한다. 비전략물자에 대한 캐치올 규제도 적용된다. 일본은 자국의 수출 제품이 한국에 제대로 도착했는지, 사용 목적이 적절한지, 평화·안전을 위협하지 않는지, 수출·수입 기업이 적절히 관리하는지 등을 놓고 개별 건마다 일일이 심사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캐치올 규제에 ‘범위 제한’이 없다는 점이다. 민간물자라 할지라도 일본이 ‘무기로 전용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다면 전부 허가 대상이 될 수 있다. 산업부는 “(일본이 캐치올 제도를)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전략물자 통제 리스트보다 더 포괄적으로 운영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18일, 혹은 24일

일본 정부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기 위해 오는 24일까지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기로 결정했다. 개정안 시행령이 확정되면 8월 중순께부터 적용된다.

한국정부는 18일을 ‘화이트리스트 제외’의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5월 21일, 우리 대법원의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제3국 위원을 포함하는 중재위원회 설치를 제안했다. 18일은 일본이 답변을 요청한 최종 시한이다.

지난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 3조3항에 따르면, 어느 한 나라가 중재위원을 임명하지 않는 경우 두 나라는 각각 중재위원회 역할을 할 제3국을 지명해 이들 나라가 중재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와 제3국 위원회 설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가 과거사 문제의 연장선임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에 대한 대법원판결 이행 문제의 원만한 외교적 해결 방안을 일본 정부에 제시했다”며 ”일본 정부는 아무런 외교적 협의나 노력 없이 일방적 조치를 전격적으로 취했다. 일본 정부는 일방적인 압박을 거두고 이제라도 외교적 해결의 장으로 돌아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과거사 문제를 경제적인 보복으로 이어가지 말 것을 요청하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일본은 계속 말을 바꾸고 있다. 아베 일본 총리는 지난 7일까지만 해도 “징용 배상에 대한 국제적 약속도 지키지 않은 한국이 무역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지 않느냐”며 일본 전범기업의 강제징용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이 수출규제의 배경임을 암시했다. 그러나 지난 16일에는 “수출규제 조치는 일본의 안전보장을 위해 수출 관리를 적절히 하려는 차원에서 실시되는 운용 방침 재검토”라며 “(한국인 징용공 문제에 대한) 대항 조치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일본의 입장은 여전히 불명확하다. 고노 다로 일본 외상은 16일, 중앙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수출관리 운용의 재검토는 안보 관점에서 실시하는 것이며, 구 한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이하 징용 문제)와 관련한 ‘대항 조치’로 실시하는 게 전혀 아니”라면서도 “징용 문제와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국가 간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신뢰 관계가 훼손된 것은 사실이다. 한국 정부가 약속을 지켜 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발언했다. 이번 수출규제 조치가 강제징용 문제의 대항조치는 아니지만 거기서 비롯되었다는 의미다.

일본 언론도 이번 문제를 ‘과거사 문제의 연장’으로 보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지난 15일자 신문에서 “수출 규제가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의식한 조치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오사카 G20 정상회의 때까지 한국 정부로부터 징용 문제에 대한 답이 없자 수출 규제 조치를 집행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충동적으로 수출 규제를 들고 나왔다’고 말한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이유로 수출규제를 감행하겠다고 하면 국제사회를 설득할 명분이 떨어진다. 일본이 이에 대해 충분한 고려를 하지 않고 일단 수출 규제 조치를 취한 뒤 그 이유를 설명하느라 말이 계속 바뀌고 있다는 의미다. 반면 한국은 일관되게 이 문제가 ‘외교문제에 대한 일본의 경제적 보복’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은 이미 공을 던졌다. 청와대는 16일, “(18일까지) 특별한 답은 없을 것이다. (일본의 제안을)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상황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들이 동의하지 않은 해결방식을 추가로 검토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일본은 난처해졌다. 18일을 기점으로 조치를 취하게 되면 자신들이 과거사 문제를 이유로 경제보복을 취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따라서 일본의 ‘한국 화이트리스트 국가 제외 결정’은 24일까지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

 

ASSOCIATED PRESS

 

WTO 일반이사회를 앞두고 링 위에 오를 준비를 하는 양국

세계무역기구(WTO)는 오는 23~24일 스위스 제네바 본부에서 열리는 일반이사회에서 일본의 한국에 대한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를 공식 논의하기로 했다. 한국 정부의 강력한 요청 때문이었다. 이 자리는 사실상 양국이 국제사회를 설득하는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한국이 전략물자 관리, 이른바 ‘캐치올’ 통제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12일 열린 한일 실무자급 양자 협의에서도 일본은 이 부분을 문제 삼았다. 협의가 끝난 후 실무자들은 브리핑을 통해 ”일본은 한국의 백색 국가 제외방침과 관련해 캐치올 규제 등에서 문제가 있다고 얘기했다. 한국의 캐치올 제도가 재래식 무기를 대상으로 하지 않아 문제가 크다는 취지로 언급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실무자들은 ”(일본이) 캐치올(catch all) 규제 등에서 한국에 문제가 있다고 얘기할 뿐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고 덧붙였다. 실제 전략 물자에 대한 수출 통제, ‘캐치올’은 한국에서 더 강하게 작용한다. 일본의 경우 ‘화이트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은 국가에 재래식 무기로 활용되는 물자를 수출하는 경우에도 아무런 제한이 발생하지 않는다. 반면 한국은 화이트리스트에 포함된 국가일지라도 무기 전용의도가 파악될 경우 보고해야 한다. 화이트리스트에 포함되지 않는 나라에 대한 통제는 더욱 강력해진다.

 

 

한겨레

 

일본 언론은 한국의 전략 물자가 북한 등에 불법 수출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한국 정부는 이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지난 12일,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한국의 불법 수출 의혹 제기와 관련해 일본 정부에 ”매우 유감”을 표하며 ”우리 정부의 잘못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면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에 대한 사과는 물론 보복적 성격의 수출 규제 조치도 즉각 철회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의 위반 사례에 대한 철저한 조사도 실시돼야 할 것”이라며 ”불필요한 논쟁을 중단하기 위해 유엔 안보리 전문가 패널 또는 적절한 국제기구에 한일 양국의 4대 수출 통제 체재 위반 사례에 대한 공정한 조사를 의뢰하자”고 역제안하기도 했다. ‘캐치올 규제’가 잘 작용되고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제안이다.

한국의 강한 반발에 일본은 슬그머니 발을 뺐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일본 정부는 북한과 관련해 언급한 사실이 없다”면서도 “한국과 관련한 수출관리를 둘러싼 부적절한 사안에 대해선 사안의 성격상 답변 드리기가 어렵다”며 답변을 피하고 있다.

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는 일본에 반해 한국은 일본 경제 보복의 부당함을 설명할 근거가 많다. 우선 한국은 일본이 ‘최혜국 대우 의무’를 위반했다고도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최혜국 대우는 한 나라가 어떤 나라에 부여하는 가장 유리한 대우를 상대국에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내용의 WTO 협정이다. 만약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 오른 26개국과 한국을 차별할 근거를 제대로 대지 못한다면 최혜국 대우 위반이 될 수 있다. 미국 연구기관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가 지난 5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전략물자 무역관리 순위는 전체 국가 중 17위(897점)로 일본(36위)보다 훨씬 높은 순위에 위치해 있다. 일본은 자국보다 더 전략물자 관리가 잘 되는 나라를 상대로 ‘차별의 근거’를 증명해야 한다.

일본의 수출 규제가 단순히 ‘우대조치 해제’에 그치는 게 아니라 사실상 ‘수출제한 조치’라는 주장도 펼칠 수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이천기 부연구위원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개정하려는 통달(훈령) 내용만 보면 단순히 원래 허가 절차로 되돌리는 것이어서 법률상의 수량제한조치에 해당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 운영 과정에서 서류 절차가 늦어지고 또 다른 이유로 통관 절차가 지연되는 경우가 쌓이면 사실상 수출제한조치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한국은 일본의 조치가 ‘보복 조치’라는 점 또한 분명히 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 9일, 백지아 주제네바대표부 대사는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해 ”정치적 목적으로 이뤄진 경제 보복”이라고 다른 회원국들에 설명했다.

 

선거 코앞인 일본, 반격 카드 만지작거리는 한국

일본이 느닷없이 수출규제 카드를 꺼내든 배경에는 선거가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본이 한국에 반도체 3개 소재에 대해 첫 수출규제를 실시한 7월 4일이 일본 참의원 선거운동의 시작일과 동일하다는 점이 상징적이다.

일본은 21일 참(상원)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자민당과 공명당 연립여당이 선거에서 무난히 과반 의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문제는 이번 선거의 승패 기준이 과반이 아니라 개헌안 발의선이라는 점이다. 아베의 지지율 하락으로 연립여당의 과반수 확보가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아베가 지지자를 집결하기 위해 ‘경제 보복’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분석이다.

 

Tomohiro Ohsumi via Getty Images

 

따라서 참의원 선거 이후 일본의 경제보복이 조정 국면에 접어들 수도 있다.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 이후 아베의 지지율은 오히려 떨어졌다. 자국의 타격도 감수해야 하는 일본이 계속 경제 보복 조치를 이어간다면 국내 여론도 돌아설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조치가 단순히 ‘참의원 선거’에만 활용되지 않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일본 내에서는 노령화로 인한 국력 약화를 걱정하는 목소리와 더불어 한국이 몇 년 후에는 국내총생산(GDP)에서 일본을 추월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며 “남북이 평화 공존을 이루면 일본을 능가할 만한 국력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 전에 한국의 국력을 약화하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과 일본의 경제 격차가 점점 좁아지는 상황에서 한국이 오히려 ‘강제징용’을 빌미로 한국 경제에 타격을 시도했다는 내용이다.

특히 삼성이 100조가 넘는 재원을 마련해 ‘시스템 메모리’ 투자 계획을 밝힌 상태에서 일본 내부적으로 한국에 추격당한다는 위기감이 작용했기 때문에 이번 경제 보복을 감행했다는 분석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과 일본의 무역분쟁은 중국과 미국의 무역분쟁처럼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다.

17일, 리얼미터의 조사에 따르면 국민 73%는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한 한국의 대응이 적절하거나 너무 약하다고 평가했다. 한국은 아직 별다른 카드를 꺼내지 않은 상황이다. 여기에는 아직 선거가 끝나지 않은 일본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고려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한국도 반격 카드를 꺼내 들 것으로 보인다. 지난 16일, 조선비즈의 단독보도에 의하면 정부는 일본 디스플레이 업체 ‘재팬디스플레이(JDI)’에 자금을 지원한 일본 정부를 ‘불공정 지원’으로 WTO에 제소할 것으로 고려하고 있다.

JDI는 2012년에 소니, 히타치, 도시바 3개 회사의 디스플레이 사업을 통합해 만든 회사다. 여기에 2000억엔의 자금을 지원한 게 일본 산업혁신투자기구다. 산업혁신기구는 일본 정부가 2009년에 만든 민관합작펀드로 일본 재무성이 최대주주(95.49%)다. 사실상 정부기구로 볼 수 있는 산업혁신투자기구가 일본 디스플레이 업계의 ‘핵심 자금원’으로 기능하는 상태다.

일본 정부가 자국의 디스플레이 산업에 ‘불법 보조금’을 지원하는 모양새인데 이는 WTO 협정 위반 소지가 있다. 더욱이 산업혁신투자기구는 디스플레이 산업 뿐만 아니라 반도체 산업에서도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JDI를 공격하게 되면 일본의 산업정책 중추가 타격을 입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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