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2021년 11월 03일 15시 57분 KST | 업데이트됨 2021년 11월 04일 11시 11분 KST

누가 '골 때리는 그녀들/골때녀' 송소희에게 돌을 던지나? 축구가 취미인 여성들이 온몸으로 겪는 차별은 상상초월이다(경험담)

'축구'라고 말하면 '축구'라고 알아듣자.

풋린이 도혜민| 퇴근 후엔 풋살을 하고 출근해선 풋살을 씁니다. 둘 다 좋습니다.

SBS/송소희 인스타그램
송소희.

″오~~~ 넘 유연하고 잘하시는뎅... 필라테스는 살은 안 빠지는 게 맞나 봐용😂” 칭찬인지 욕인지 누가 봐도 뻔한 이 악플에, 배우 하재숙은 차분한 어조로 이렇게 답했다.

뉴스1/하재숙 인스타그램
배우 하재숙.

″모든 사람이 살 빼려고 운동하는 건 아니니까요ㅎ 저는 그저 재미있고 건강 유지가 목적입니다.”

이 세상에는 왜 이렇게 남에게 관심법 남발하는 ‘궁예들’이 많을까. 사실 가족끼리도 이런 일은 많다. 당장 나부터 피해자다. 지난해 풋살(미니 축구)을 시작한 나는 턱없이 부족한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헬스장까지 등록하는 열정을 불살랐다. 일주일 중 축구하는 하루를 제외하고는 시간날 때마다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했다. 스쿼트, 와이드 스쿼트, 데드 리프트 등 주로 하체 운동을 했다.

skynesher via Getty Images
자료사진. 

나만의 운동 루틴에 적응해갈 때쯤 가장 가까운 이로부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을 들었다. 오랜만에 나의 서울 자취집에 놀러 온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운동한다더니 우째 살은 하나도 안 빠졌노?”라며 눈으로 레이저를 쏘아댔다. ”아니, 내가 축구한다고 했지. 언제 다이어트한다고 말했었나?”라고 답하며 나는 깨달았다. 내가 축구를 한다고 말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다이어트를 생각한다는 사실을!

뉴스1
은퇴식 당시 이동국의 모습. 2020.10.28

일반인뿐만이 아니다. 축구 국가대표 출신으로 K리그 득점 1위에 빛나는 ‘라이언 킹’ 이동국 또한 ‘여성 축구=다이어트’라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공식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은퇴 후 축구 교실을 차린 이동국은 지난 9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여성 다이어트 반도 있다”라며 축구 사업을 열심히 홍보했다. 

 

운동이면 운동이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다이어트가 끝이 아니다. ‘운동 궁예들’의 상상력은 가히 놀라웠다. 지난해 여름 에이핑크 오하영, 트와이스 미나·지효, 구구단 나영·김세정 등 여자 아이돌 멤버들이 우르르 축구 동호회에 가입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아이돌이 점점 멀게만 느껴지던 31살 나는 그들이 축구를 시작했다는 소식에 반가움이 들었지만 대중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이투데이
'아이돌 축구 동호회' 논란 당시 기사 제목.
뉴시스
또 다른 기사 제목.

여자 아이돌 멤버들이 속한 축구 동호회에 남성 축구팀도 따로 있다고 하자 ’그럼 그렇지. 연애하러 가는 거면서 축구라고 갖다 붙인다’라는 등 온갖 억측이 쏟아졌다. 아이돌 팬들 역시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이들은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축구 동호회를 탈퇴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에이핑크 오하영은 ”팬분들이 오해하고 속상해하고 억측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피해를 받으면서 ‘그냥 나오자’라는 생각이었다. 너무 좋은 취지의 취미였는데 사람들이 우리 의도와는 다르게 알게 되면 축구를 하는 의미도 없을 것 같았다”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골 때리는 그녀들’에게 누가 돌을 던지나

아이러니하게도 ‘연애 논란‘을 빚었던 이 여성 축구팀에서 SBS ‘골 때리는 그녀들’ 새로운 에이스가 탄생했다. 국악 가수 송소희다.

SBS
'FC 원더우먼'의 송소희(7)

축구를 시작한 지 8개월째인 송소희는 FC루머W팀에서 매주 축구를 하고 있다고 한다. 3일 선공개된 ‘골때녀’ 영상에서 송소희는 밴드 새소년의 보컬 황소윤과 함께 환상의 공격 호흡을 보여준다. 수비수 압박에서 벗어나는 기술도 탁월하다. 송소희는 ”지금은 국악보다 축구” ”축구하기 전과 후로 인생이 바뀌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축구에 푹 빠져있다. 

다행히 올해 초 파일럿으로 시작한 축구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이 인기를 끌면서 축구하는 여성들을 향한 인식은 한층 개선됐다. 적어도 이제는 송소희에게 ‘연애하러 축구 동호회 가입했냐?‘라는 막말을 하진 않는다. 유튜브 ‘골때녀’ 영상 댓글창도 실력을 떠나 열심히 하는 멤버들을 응원하는 분위기다.

 

″축구공 줄테니까 노래방 같이 가자”

그러나 TV 밖 현실은 아직 한참 멀었다. 축구를 함께하는 여성 동료들에게 축구하며 ‘차별’을 경험했던 적이 있었는지를 묻자,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울분을 토했다.

두 아이의 엄마인 30대 A씨는 벌써 축구 10년차다. 베테랑이라면 베테랑인 그에게 구청 축구 대회에서 상대팀으로 만난 한 남성 선수는 ”축구공 새 거 줄 테니까 노래방 한 번 가 달라”라는 억지를 부렸다. 

wuthi chay ceriy buri / EyeEm via Getty Images
자료사진. 

이제 막 축구를 시작한 1년차 B씨는 축구를 하며 발목을 다쳤는데 회사 남성 동료들은 그에게 ”여자가 무슨 운동을 축구로 하냐” ”네가 무슨 ‘골 때리는 그녀들’이냐. TV 나갈 거냐” 등 위로 대신 상처가 될 말만 뿌렸다. B씨는 ”그때 남자 직원들의 말투와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너무 상처가 됐다”라고 말했다. 

이번에도 연애는 빠지지 않았다. 축구 2년차 20대 C씨는 명절에 오랜만에 만난 삼촌으로부터 ”축구 말고 필라테스 같은 걸 해~ 아 그래도 축구하면 남자 사귀기는 좋겠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기분 나빴지만 원래 꼰대라서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라고 했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막말은 비단 A, B, C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만난 또 다른 여성은 ”축구한다고 하면 따라붙는 오지랖이 싫어서 축구라고 하지 않고 ‘운동‘이라고 대충 말할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홍길동도 아니고 축구를 축구라고 말하지 못하는 이 뒤떨어지는 시대여...... 지금은 2021년이란 말이다! 여성들은 ‘호축호풋’하고 싶다. 잘 들어라. ”내 취미는 축구고 내 특기는 풋살이다. 다이어트는 당신이나 실컷 하세요”

도혜민 에디터: hyemin.do@huff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