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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9월 15일 18시 06분 KST | 업데이트됨 2021년 09월 17일 14시 05분 KST

'골 때리는 그녀들'에게 미안합니다, '풋살 2년차' 에디터가 무릎 꿇고 쓴 통렬한 반성문 (시즌1 결승에 부쳐)

”‘골 때리는 그녀들’ 만큼 해봤어?”

풋린이 도혜민| 퇴근 후엔 풋살을 하고 출근해선 풋살을 씁니다. 둘 다 좋습니다.

 나 풋린이 도혜민, ‘골 때리는 그녀들‘에게 빚을 졌다. 국내 최초 여자 축구 예능 프로그램 SBS ‘골 때리는 그녀들’에게 말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5:5 경기를 하는 ‘골때녀’는 축구보다는 풋살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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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골 때리는 그녀들' 박선영, 전미라와 사오리, 한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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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국대 패밀리의 남현희와 FC 구척장신의 한혜진.

‘골때녀’는 지난 2월 설 연휴에 파일럿 형식으로 방송했다가 6월부터 정규 편성됐다. 먹방과 눕방의 시대에 여자들이 축구를 하며 땀 흘리는 모습은 갈 곳 없는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라운드에 서는 선수와 심판이 모두 여성인 이 프로그램에는 38명의 선수들이 뛴다. 배우, 코미디언, 모델, 방송인 등 접점 없는 여성들은 팀을 나눠 토너먼트 경기를 치른다.

*FC 국대 패밀리(7명), FC 개벤져스(7명), FC 불나방(6명), FC 구척장신(6명), FC 액셔니스타(6명), FC 월드 클라쓰(6명) 등 6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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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불나방과 FC 개벤져스의 경기.

″취미가 축구이고 풋살이다”라고 말하면, ‘여자가 어떻게 해?’라는 질문을 지겹도록 듣게 된다. 그러나 ‘골때녀’ 이후 나는 그럴 일이 전혀 없다. 덕분이다. ‘골 때리는 그녀들’에게 내가 빚을 졌다고 하는 이유는 크게 작게 덕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코로나와 함께 시작된 나의 풋살 라이프는 어느덧 2년차가 됐다. 일주일에 한 번, 2시간씩 풋살 레슨을 받고 경기를 뛰는 나는 솔직히 ‘골때녀‘를 얕봤다. ‘에계계, 연예인들이 축구를 하면 얼마나 하겠어? 카메라 앞에서 흉내만 내는 거겠지.’ 방송을 챙겨보지도 않았다. (풋살 레슨 시간과 본방 시간이 겹치기도 한다.) 

″‘골 때리는 그녀들’ 방송 보고 혜민씨 생각났어요. 여자들이 축구하니까 진짜 끝내주던데요. 혜민씨도 그렇게 축구하는 거예요? 진짜 재미있을 것 같아요!”

‘골때녀’들의 결승이 가까워지면서 축구에 전혀 관심 없어 보이는 지인들까지 내게 ‘골때녀’ 이야기를 했다. ‘흉내 좀 내 나 보지?’ 싶어 유튜브로 영상 몇 개를 챙겨본 나는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그들의 경기를 다시 보면서 무릎 꿇고 반성했다. 더디게 느는 실력을 작은 키와 적지 않은 나이 탓으로 돌리며 ‘이 정도면 잘하는 거지’ 라고 자기 합리화하던 나는 그제서야 정신을 똑바로 차렸다. ‘골 때리는 그녀들’을 제대로 알기 전에 나처럼 그들에게 편견을 가진 이들에게 몇 가지 장면을 추천한다.

 

1. 작은 키는 단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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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국대패밀리 전미라와의 몸싸움에서도 밀리지 않는 FC 월드 클라쓰 사오리.

정규 편성이 되면서 두 팀이 추가 결성됐고, 그중 하나가 외국 출신 방송인들로 구성된 ‘FC 월드 클라쓰‘다. 다른 팀에 비해 낮은 인지도를 가진 ‘월드 클라쓰‘는 방송이 시작되고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는데 조별 예선 첫 경기 이후 판세가 뒤집어졌다. ‘월드 클라쓰’는 지난 시즌 우승팀 ‘FC 불나방‘을 상대로 선제골을 터뜨렸다. 주인공은 일본 출신 후지모토 사오리. 154cm 비교적 작은 키의 사오리는 절대자로 불리는 ‘불나방’ 에이스 박선영에게도 절대 기죽지 않는 모습.

사실 축구에서는 발재간만큼이나 피지컬이 꽤나 중요하다. 체격이 좋으면 슈팅을 할 때 킥력이 좋고, 수비수를 견제할 때도 유리하다. 때때로 단점으로 지적되는 작은 키를, 사오리는 장점으로 승화시켰다. 사오리는 날렵한 스피드로 상대 진영을 휘젓고 다니며 몸싸움에서도 밀리는 법이 절대 없다. 이날도 사오리는 골문 앞으로 빠르게 이동했고 혼전 속에서 주발이 아닌 왼발을 내밀었다. 빠르고 정확한 판단력은 첫 골을 만들었다. 이후에도 사오리의 활약은 이어지는데,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하려 했던 사오리는 시즌 후반부엔 팀원들과 합을 맞추는 ‘세트피스’에도 완벽 적응하며 팀 플레이어로 거듭났다. 

 

2. 축구하기 딱 좋은 나이는 따로 없다

31살에 풋살을 시작한 나는 죽을 때까지 오래오래 공을 차고 싶다는 꿈을 가지면서도 ‘언젠가는 못 하게 되겠지‘,  ‘나이를 먹으면 지금보다 실력이 떨어질 거야’ 같은 알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다. 그러나 ‘골때녀’의 박선영을 보며 이 쓸데없는 걱정을 가볍게 털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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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불나방의 박선영.

‘골때녀’ 선수들은 나이도 제각각이다. 평균 나이 48세인 ‘FC 불나방‘은 체력적인 한계를 실력으로 극복해 지난 시즌 우승을 차지했고, 이번에도 결승전에 올랐다. ‘불나방‘의 에이스 배우 박선영은 1970년생 올해 52살이다. 박선영은 국가대표 출신 ‘골때녀’ 감독들도 인정할 만큼 엄청난 실력자다. 사실 박선영은 체육학과 출신으로, 연예계 데뷔가 1년만 늦었어도 대학에 생긴 축구부에 들어갔을지도 몰랐다고 한다. 체육과 출신 중년 여성들만 축구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같은 팀 가수 신효범(56)은 ‘신효벽‘으로 불리는 막강한 수비수. 신효범은 ”무릎에 물이 차서 경기 전에 물을 빼고 왔다”라며 노장 투혼을 발휘한다. 상대가 찬 공을 얼굴로 막아낸 신효범은 공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란 때에도, 골을 먹히지 않아 다행이라며 웃어 보인다. 아래 영상은 박선영이 이름도 어려운 ‘마르세유 턴’ 동작으로 수비수를 뚫고 슈팅을 하는 모습. 2년차 풋린이가 매번 도전하지만 늘 실패하는 애증의 동작이다.

 

3.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

축구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체력? 팀워크? 기술? 정신력? 단언컨대 정신력이다. 체력이 전부라면 마라톤 선수가 축구를 가장 잘 하고, 팀워크라면 오래된 팀이 우월할 것이고, 기술이라면 전문 테크니션이 월드컵을 주름잡을 테지만 축구는 언제나 각본 없는 드라마를 쓴다. 어느 팀이 끝까지 집중하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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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구척장신의 한혜진.

‘골때녀’ 지난 시즌에서 전패를 기록한 ‘FC 구척장신’의 주장 모델 한혜진이 같은 팀원들에게 주문처럼 반복하는 말이 있다. 바로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라는 것. 전후반 10분씩, 총 20분을 뛰는 경기에서 공만 보고 사력을 다하다 보면 어느새 다리는 너덜너덜해진다. 내 몸이 내 말을 듣지 않는 바로 그때 버티는 팀이 승리하는 것이다. 

3회 ‘FC 구척장신’과 ‘FC 국대패밀리‘의 경기는 이 명제를 다시 한 번 입증하는 명승부였다. 그러나 조금 슬프게도 주인공은 시즌 내내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라고 소리치며 정신을 무장했던 ‘구척장신‘이 아닌 ‘국대패밀리‘였다. 1대0으로 ‘구척장신‘이 앞서는 경기에서 남은 시간은 겨우 30초인 상황. 모두가 ‘구척장신‘의 승리를 예상했지만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뒤 웃은 건 ’국대패밀리’였다. 박승희의 킥인을 무릎으로 받은 명서현이 공의 각도를 살짝 틀어 동점골을 만들어냈다.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국대패밀리’는 3대2로 역전승!

여성 연예인들의 축구는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유튜브 ‘골때녀’ 영상에는 호평이 쏟아진다. 여자들이 이를 악물고 축구하는 모습이 이렇게까지 재미있고 감동적이어도 되냐는 반응이 많다. 프로 축구 선수들이 보고 반성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FC 구척장신’ 감독을 맡았던 최용수는 중앙선데이 인터뷰에서 ”우리 K리그나 국가대표 선수들이 그런 간절함과 절박함을 가지고 경기를 하는지 묻고 싶었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2년차 풋린이 나 또한 과거의 나에게 다시 묻고 싶다. ”‘골 때리는 그녀들’ 만큼 해봤어?”  

P.S. ‘골 때리는 그녀들‘에게 빚을 졌다는 말은 금전적으로 일부 맞는 말이다. 운동화와 구두 모두 235 사이즈를 신는 나는 풋살화만큼은 235가 불편했는데, 큰마음 먹고 장만한 첫 번째 나이키 풋살화가 도무지 길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팔기로 결심하고 당근마켓에 올린 지 몇 달. 팔릴 생각을 않던 풋살화는 ‘골때녀’ 등장 이후 금방 팔렸다. 신어보고 구매할 수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묻던 우리 동네의 ‘그녀’는 풋살이 재미있어 보여서 시작한다고 했다. 

도혜민 에디터: hyemin.do@huff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