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여대생 혼자 사는 집에 이웃 남성이 무단 침입했다는 신고를 받고도 ‘원만한 해결’만 주문하고, 고소도 접수하지 않아 안이한 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한 빌라에 사는 대학생 김아무개(25·여)씨는 지난 6일 오전 9시께 낯선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눈을 떠 보니 한 남성이 집안에 들어와, 놀러온 친구 박아무개(23)씨에게 욕설을 하며 위협하고 있었다. 이 남성은 침대 옆에 놓인 김씨의 자동차 열쇠를 들고 내려간 뒤 김씨의 차량을 다른 장소에 옮겼다.
같은 날 오후 5시께 김씨는 아침에 집에 무단 침입한 남성이 이웃 권아무개씨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지난달에도 김씨와 주차 시비를 벌였다. 권씨는 김씨와의 통화에서 “내가 욕 했던 것도 맞고, 집에 들어간 것도 맞으니 제발 경찰서에 신고 좀 하라. 앞으로도 지켜보겠다”며 김씨를 협박했다. 통화를 마친 김씨는 곧바로 112에 신고를 했다. 그러나 신고를 받고 출동한 반포지구대 경찰관은 “원만하게 해결하고 나중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신고하라”는 말만 남기고 돌아갔다고 한다.
이웃의 협박이 무서워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던 김씨는 박씨와 함께 이틀 뒤인 8일 밤 11시께 권씨를 주거 침입 등의 혐의로 고소하려고 서울 서초경찰서를 찾았다. 그러나 이들은 또 경찰로부터 사건 접수를 거절당했다. 박씨는 “권씨를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경찰서에서는 ‘일이 더 커질 수 있으니 좋게 끝내라’고 했다. 형사가 그렇게 말하니 그냥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경찰이 김씨 사건 처리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은 수사의 기본 방법과 절차를 정하고 있는 ‘범죄수사규칙’에도 어긋난다. 이 규칙을 보면, 경찰관이 고소·고발의 접수를 제한하는 경우는 ‘범죄 사건이 아닐 경우’, ‘공소시효가 지났을 경우’ 등으로 극히 제한해두고 있다.
다른 경찰 관계자들도 서초서와 반포지구대의 대응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서울의 한 경찰서 소속 경찰관은 “사건 접수를 하는 형사들 입장에서는 범죄의 경중을 따지게 되는데, 사실 그것부터가 잘못이다. 고소장을 접수하러 온 사람이 있으면 접수를 하고 수사하는 것이 기본 절차다. 그냥 고소인을 돌려보낸 것은 징계사유에 해당한다”고 했다.
당시 고소장을 써온 이들을 돌려보낸 서초서 담당자는 9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우리 입장에선 정말 간단한 사건에 불과하다. 이웃이니 계속 얼굴을 봐야 할 거 아니냐. 무서워도 당당하게 집에 들어가라고 조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거 침입이라는 명백한 범죄를 왜 접수하지 않았냐는 질문에는 “지금이라도 접수해드리겠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