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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3월 25일 11시 54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3월 25일 11시 54분 KST

승리와 정준영의 단톡방이 남긴 것

단순한 '연예인 스캔들'이 아니다

여성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1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가진 클럽 '버닝썬' 공권력 유착 관련 기자회견에서 진상규명과 엄중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1월 28일 <MBC 뉴스데스크>에서는 강남에 위치한 한 유명 클럽에서 폭행사고가 있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클럽을 찾은 한 손님이 클럽의 이사와 보안요원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해 전치 4주의 상해를 입었다는 소식이었다. 2018년 11월 24일에 벌어진 사건의 정황이 2개월이 넘은 시점이 돼서야 보도된 것도 특이했지만 클럽을 찾은 손님들 간의 문제가 아니라 클럽 관계자가 폭행을 감행한 가해자로 지목됐다는 것도 조금 기이했다. 어쨌든 단순한 폭행 사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잘 알다시피 그 이후 상황은 일파만파였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자리한 클럽 버닝썬에서 벌어진 폭행 사건은 이후 클럽 운영자와 경찰의 유착 의혹으로 이어졌다. 동시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버닝썬에서 마약 유통과 투약이 빈번이 발생하고 있으며 소위 물뽕이라 일컫는 마약류 약물을 먹이고 항거불능 상태가 된 여성을 성폭행하는 범죄행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폭로가 이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클럽 관계자가 알고도 방조하거나 오히려 이를 VIP로 분류된 손님에게 알선하고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실제로 클럽 관계자가 ‘여성흥분제 판매를 중단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정황이 포착되면서 의혹이 실체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의 중심에 있는 인물로 지목된 것은 버닝썬의 사내이사로 재직했던 가수 승리였다. 

한류스타 빅뱅의 멤버인 승리는 최근 몇몇 방송을 통해 성공한 사업가로서의 이미지를 굳혀 나가고 있었다. 버닝썬 역시 승리가 운영하는 사업체 중 하나로 알려져 있었다. MBC의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하며 자신이 새롭게 오픈한 클럽이라며 직접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버닝썬과 관련된 각종 범죄 의혹이 불거지자 승리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대외적으로 클럽을 알리는 역할’이라며 ‘실질적인 클럽 경영과 운영은 제 역할이 아니었다’며 버닝썬과의 관계에 선을 그었다. 승리의 소속사인 YG 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 대표 역시 승리를 두둔하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리고 승리는 3월 군입대가 예정됐다는 이유로 버닝썬 사내이사직을 사임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버닝썬과 승리의 관계는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지난 2월 26일 <SBS 8 뉴스>에서는 승리가 해외투자자를 상대로 성접대를 주문했다는 내용이 담긴 카카오톡 대화를 입수했다며 그 내용을 공개했다. 내용에 따르면 승리가 동업자들에게 해외에서 온 투자자들에게 유명 클럽의 자리를 마련해주고 동시에 동석시킬 여자를 준비하라는 지시를 했다는 것. 그리고 메시지 대화상에서 ‘잘 주는 애들’이나 ‘창녀들’이라는 단어를 동원됐으며 이는 일종의 성접대를 알선했다는 혐의가 추정될 만한 사안이었다. YG엔터테인먼트 측에서는 이에 대해 ‘조작된 문자 메시지’라며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놓았으며 ‘가짜 뉴스를 비롯한 루머 확대 및 재생산 등 일체의 행위에 대해 법적으로 강경 대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승리가 포함된 해당 메신저 대화를 입수해 조사한 경찰 관계자는 해당 대화가 조작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했고 승리는 성매매 알선 혐의로 입건된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그 이후로 해외 원정 도박 및 외환관리법 위반 논란과 각종 탈세 의혹 등 승리를 둘러싼 다양한 범죄 의혹이 제기됐다. 그리고 3월 11일, <SBS 8 뉴스>를 통해 승리와 정준영이 포함된 단톡방에서 성행위 영상을 불법 촬영하고 공유됐다는 정황이 보도되면서 버닝썬 사건의 파장이 연예계로 이어졌다. 2016년에 성행위 과정을 불법 촬영한 혐의로 기소된 바 있었지만 고소인이 고소를 취하하고 검찰 수사 끝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던 정준영이 다시 한번 불법 영상 촬영을 했다는 정황이 알려지자 여론이 들끓었다. 동시에 단톡방에 연예인이 더 포함돼 있다는 것이 알려졌고, 결국 ‘하이라이트’의 용준형과 ‘FT 아일랜드’의 최종훈, ‘씨엔블루’의 이종현이 그 당사자라는 것이 드러나며 파문이 확산됐다. 이들은 각각 자신이 소속된 그룹에서 탈퇴한 뒤 연예계 은퇴를 선언했지만 실명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자신들의 행동을 부정하는 듯한 뉘앙스를 밝혀왔다.

승리와 정준영의 혐의에 대한 경찰 수사는 아직 진행 중이다. 아직 그들에게 씌워진 혐의가 유죄라는 판결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법적인 판결 여부를 떠나 승리와 정준영을 비롯한 그들만의 단톡방에서 벌어진 일련의 대화 양상을 봤을 때 그들이 과연 대중의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존재들이었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생긴다. 최근 몇몇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성공한 사업가라는 위상까지 얻었다. 방송에서는 승리가 사업가로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세계적인 인기를 가진 아이돌 스타를 넘어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사업가로서의 철학을 공유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승리의 새로운 사업체로서 버닝썬이 노출되기도 했다. 방송사가 승리에게 성공한 사업가라는 후광을 만들어주는데 일조한 공범이라 지목한다 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랄까. 물론 방송사가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모든 출연자의 일상을 검증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만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내용을 거창하게 부풀리는데 일조했다면 그 역시도 문제라는 것이다. 최소한 승리를 성공한 사업가로 보이게끔 일조한 방송계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를 각성의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동시에 멀끔한 이미지로 대중의 인기를 얻어온 남성 연예인들이 단톡방에 모여 여성을 오로지 성적인 대상으로 비하하는 듯한 발언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주고받은 정황은 그들 대부분이 여성 팬덤을 기반으로 지금의 입지를 다진 젊은 아이돌 멤버들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뒀을 때 더욱 충격적이다. 연예인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윤리적 요구를 하는 것에 동의하진 않지만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의 범죄 행위가 대중에게 미칠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이에 대한 엄중한 법적 판단을 요구하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번 사건은 젊은 남성 연예인들이 집단으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성관계를 불법 촬영한 영상을 서로에게 공유하며 암묵적인 범죄 카르텔 양상을 보여줬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 승리가 출연한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승리의 외장하드에 존재한다는 다량의 ‘야동’을 언급하며 이를 희화화한 바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가 남성들의 ‘야동’ 문화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며 비뚤어진 성의식을 만들어내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만한 계기처럼 보인다. 최소한 방송에서 ‘야동’이라는 단어가 일상적인 언어처럼 인식되지 않도록, 성의식을 왜곡할 수 있는 기회를 줘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가히 ‘승리 게이트’라 해도 과언이 아닌, 승리와 정준영을 비롯한 남성 연예인들의 왜곡된 성의식을 보여준 이번 사태는 한국 남성 사회의 한 단면을 축소판처럼 보여준 사건처럼 보인다. 최근 SNS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한 남성들의 인식을 묻는 영상이 공유되기도 했는데 ‘연예인이라서 너무 크게 이슈가 된 거 같다’거나 ‘남자라면 야동을 보고 싶어 하기 마련이고 친구와 돌려보고 싶기도 하다’는 답변을 서슴지 않고 내놓는 남성들의 태도를 대면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승리와 정준영을 비롯한 남성 연예인들이 단톡방에서 보여준 일련의 대화와 행위들은 현재 한국 남성들이 자연스럽게 소비하는 음성적인 성문화가 잘못된 성의식을 잉태하고 끝내 성범죄에 대한 인식까지 흐린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사례가 될 것 같다. 그만큼 이번 사건은 단순히 연예계의 스캔들이 아니라 범사회적인 문제를 진단하는 기회로 인식돼야 마땅하다. 동시에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성의식을 되짚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대중도, 미디어도, 이 사건을 주시하는 동시에 경계해야 한다. 이 사건을 단순히 승리와 정준영을 둘러싼 진실게임으로 소비하고, 그에 관한 가십으로 탐닉해선 안된다. 모두가 이미 잘 알다시피, 우리가 보고 있는 건 더 이상 ‘위대한 승츠비’에 관한 드라마가 아니니까.

* 매일신문에 기고한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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